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일영 Jul 22. 2021

"세상이란 홀로 조용히 영혼을 피우는 곳이  아닐까."

나는 나를 데리고 산다







깜박이는 등대. 출렁이는 불빛이 눈동자에

각인되었다.


바다에 젖은 머리, 바람에 물든 원피스, 흩날리는 밤하늘이 고요히 그저 고요하게 제자리 걸음을 했다.


아무런 소음도 노래도 들리지 않는 그 곳 한 가운데에서 나는 잠시 안개 낀 어둠을 바라봤다.


당장 앞이 절벽이라 해도 모를만큼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눈에 닿았다 떨어지는 건 등대 불빛, 그마저도 깜박이는 불 뿐이었다.


소금기를 잔뜩 머금은 나는 까맣게 마구잡이로

칠한 세상에 떨어진 듯 했고


그것은 고립감보다는 묘한 감각을 일으켰다.


어쩌면 세상이란

무수히 많은 외로움들이 홀로 조용히 영혼을 피우는 곳이 아닐까.



이어진 것처럼 보였던 것들 사이의 당연한 단절,

그래서 끝끝내 홀로 타오르는 곳이 아닐까.


그것을 깨닫는 여정이겠지, 생각했다.











군중 속의 고독이란 말은 인간의 삶 그 자체를 표현하고 있는 게 아닐까?



모두가 한데 엉겨붙어 이리 치이고 저리 치여가며

살지만 각기 다른 영혼과 각기 다른 시선 높이로

결국은 저 혼자 태어나 저 혼자 느끼며

저만의 세상에서 사는 것이다.



지하철 칸 속에서 출렁이는 사람들,

여행지에서 부딪히는 사람들,

복합 쇼핑몰을 가로지르는 사람들.


그 뜨겁거나 시원한 타인의 피부는 닿아도 내 것이 아니다. 아무리 가까이 서도 느낄 수 없다.



나는 그것을 때때로 간과한다.

나를 누군가 이해할 수 있을 것이라,

내가 타인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라 착각한다.



하지만 잠에서 깨 이불을 개키고 음식을 입 안으로 밀어넣고

따분한 시간을 불편한 자세로 보내는 것,


시선이 닿는 곳곳에 대해 남몰래 상상하는 것

그 전부가


그 누구와도 공유할 수 없다는 것을

새벽 하늘을 올려다 볼 때 통감하고 만다.




그럼에도 분명하게 전하고 싶은 생각이 있다.


sns에 남겨도

말과 동작으로 전해도 알 수 없는 세상과

사람에 섞여 살지만.



태어나 처음 빛을 본 순간부터 죽기 직전까지

우리는 자기 자신과 함께 하며, 자신만이 자신을

이해할 수 밖에 없다.



부부, 가족, 친구.



이 단어들이 가진 맥락과 자리에 어쩌면 '나'가

더 잘 어울리는 게 아닐까 생각하곤 한다.


'나'야 말로 이해할 수 없지만 끝내 공감이 통하는

가깝기도 멀기도 한 존재이니까.


마치 남들이 말하는 부부, 가족, 친구처럼.





'나'는 나를 데리고 평생 이곳저곳을 누비며

당연한 외로움을 끌어안고 적절히 살아갈 수 밖에 없는 셈이다.








결국 이 복잡하고도 단순한 생각 또한

남에게 전하기 어려워, 가까운 타인 앞에서도

망설여진다.



맞지 않는 주파수 속에서

끊임없이 채널을 돌리고 홀로 떠드는 것이

결국 삶이라고 생각하고 치워 버릴 따름이다.







데자뷰처럼 얇은 막에 싸인

의문스러운 감정이 터지고

인파로 가득 찬 텅 빈 공간에 홀로 떨어진다.


시끄러운 목소리 탓일까

나를 향하는 매서운 등대 불 때문일까.

바다의 그림자가 있는 곳까지 천천히 밀려난다.



by 일영




















매거진의 이전글 靑 : 환상을 쓴다는 것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