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과 함께 52주 프로젝트
한동안 일기를 게을리 한 자의 반성문. 근래에는 일도 많았다. 이직한 이래로 나름 회사 적응한다고 바쁘기도 했고. 좋은 점이 있었던 것은 한동안 덜 우울했다는 점이다. 어쩜 우울할 땐 글도 그렇게 잘 써지는지 어이가 없을 정도다. 그래서 내 일기가 온통 우울감에 젖어 있는 걸까.라고 주절주절 거려도 결국에는 게으른 나에 대한 자기 합리화일 뿐이다. 매일 같이 두 시간씩 지옥철 타고 출퇴근하면 집에 와서는 녹초가 되는 게 일상이고, 건강을 위해 러닝을 하자는 포부도 더워지면서 주춤거리게 되었다. (사실 9월에 마라톤 신청해놨는데 이게 오픈할지도 사실 잘 모르겠다.) 새벽에는 집 앞에 공사 소리 때문에 알람 소리가 울리기도 전에 잠에서 깨버렸다. 여름이 가까워오니까 모든 의욕도 녹아 없어져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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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이 되면 여름이 어찌나 그리웠던지. 시원한 빗소리, 맑고 푸른 하늘과 보기만 해도 눈 시릴 만큼 하얀 구름들, 네모나게 잘라서 먹는 물 많은 수박 같이 여름날 환상을 품은… 뭐 그런 것들 말이다. 물론 전부 환상일 뿐. 대한민국 여름에 그런 걸 바라는 것은 사치인 것을. 에어프라이어 같은 바람이 스쳐 지나갔다가 장마가 오고, 찜통더위가 슬금슬금 다가오는 중이다. 한층 습해진 공기, 살갗에 진득하니 달라붙는 불쾌감에 정신을 못 차리고 있다. 더워지니 기력도 없어지도 우울함도 다시 같이 오는 중. 추울 때 우울하면 그나마 이불로 스스로를 김밥말이 해서 위로할 수 있는 공간이라도 만들어주는 건데 덥고 습할 때 우울하면 짜증만 늘어가고 이걸 어찌해야 좋을지 모르겠다.
서랍 속에 처박아 두었던 노이로민을 다시 꺼냈다. 의사 처방 없이도 살 수 있는 약이라던데 먹고 나면 그나마 좀 잘 수 있다. 그래도 일어나면 코 끝까지 늘어난 다크서클 때문에 주변 사람들이 괜찮냐고 물어보지만. 출근해서도 영 에너지가 차오르는 느낌이 없다. (출근하는 거라 그런가?) 그래서 오후에는 회사 건물 어디 구석에 짱 박혀서 15분 정도 졸고 있는 게 일상이 되었다. 안 그래도 더위도 많이 타는 사람이 우울증 콤보까지 맞으니 올여름 정신 놓고 살겠구나 싶어서 요즘 바짝 긴장하는 중이다. 심리적으로 불안정할 때 스스로를 놓아버리지 않으려고 항상 노력하고 있다. 올해는 자주 우울해지는데 이게 왜 그럴까 싶기도 하고. 이쯤 되면 전 세계적으로 2020년을 새로고침 해야 할 판이다. (F5를 눌러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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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8월에 바다 가기로 약속도 했고, 또 서핑 배우러 강원도 가려고 친구와 이야기하고 있는 중. 갇혀 살고 있었더니 더 우울해지는 것 같다. 나를 우울하게 만드는 이런저런 요소들이 많지만 나를 보살펴 줄 사람은 나 밖에 없기 때문에 힘내는 걸로. 우울할 때는 글을 감정의 쓰레기통처럼 쓰는 것도 나쁘지 않다. 두서없이 쭉 써 내려가다 보면 기분이 조금은 나아진다. 다시 일기 꼬박꼬박 잘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