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포스트 52호 (2021.03.22) / 구아정의 브랜드 이야기
*본 칼럼은 패션 전문 비즈니스 미디어 '패션포스트'에 기고한 글로 출처를 밝힌 후 공유 부탁 드립니다.
*출처 : 패션포스트 http://fpost.co.kr/board/bbs/board.php?bo_table=fsp43&wr_id=8
브랜드를 새롭게 론칭하거나 리뉴얼할 때, 흔히 ‘컨셉이 무엇인가요?’라는 질문을 한다. 브랜드 컨셉은 중요하다고 하지만, 막상 컨셉을 정하려고 하면 “그래서 ‘컨셉’이란 게 뭔데?” 하는 원초적인 질문에 봉착하게 된다.
‘컨셉’이란 무엇일까? 이 질문에 대한 답으로, 어원을 살펴보면 ‘컨셉’의 뜻과 역할을 모두 알 수 있다. 컨셉(concept)은 ‘con+cept’, 두 가지가 결합한 단어로 직역하자면 ‘함께+잡다’라는 뜻이다.
무엇을 함께 잡으라는 것일까? 컨셉의 정의보다도, 컨셉이 하는 역할을 이해하고 나면 이 용어가 의미하는 바가 더 크게 와 닿을 것이다. 컨셉을 이야기하기 위해서는 컨셉과 늘 함께 따라붙는 ‘철학, 미션, 비전’과 같은 용어들과 ‘네이밍, 슬로건’을 함께 이해하는 것이 필요하다.
‘철학, 미션, 비전’은 사내에서 공동의 목표를 갖기 위한 하나의 이정표와 같은 역할을 한다. 기업에서 바라보는 ‘업(業)’의 정의와, 왜 이 기업을 만들게 되었는지, 그리고 무엇을 이루고자 하는지 등 기업의 ‘존재가치’에 대한 것이다.
철학이나 미션은 허무맹랑한 이야기일 수도 있고, 굉장히 사적일 수도 있다. 그도 그럴 것이, 대다수의 기업은 한 사람의 사명감에서 시작했기 때문이다. 돈 때문에 만든 기업일지라도, 수많은 사업 중에서 이 업을 택한 이유는 존재한다.
파타고니아는 지구를 살리기 위해, 나이키는 운동하는 사람들을 위해 시작했다. 이 기업이 왜 만들어졌고,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지, 그리고 중단기적으로 무엇을 이루고자 하는지를 설명하는 것이 바로 ‘철학, 미션, 비전’이라 할 수 있다.
반면 ‘네이밍, 슬로건’은 사내보다는 대외 커뮤니케이션에 더 큰 목적을 둔다. 브랜드를 무엇이라고 부르게 할 것이며, 이를 어떻게 설명할 것인지, 경쟁사와 다르면서도 ‘브랜드다움’을 한 단어와 문장으로 표현해야 한다.
그래서 네이밍과 슬로건에는 창의성을 요구한다. (모두 그런 것은 아니지만) 평범하고 익숙한 표현들은 고객에게 강렬한 첫인상을 심기에는 어렵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너무 꼬거나, 수식이 많은 표현은 또 고객이 어렵게 느끼므로 그 간극을 잘 조절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렇다면 무엇이 우리에게 어울리는 네이밍과 슬로건인지 어떻게 판단할 수 있을까? 그리고 기업과 브랜드의 가치를 어떻게 한 번에, 제대로 전달할 수 있을까? 이때, 브랜드의 이야기를 함축적으로 표현하고, 또 커뮤니케이션 방향의 기준점이 되어주는 것이 바로 ‘컨셉’이다.
컨셉은 단순히 말뿐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그 몇 마디가 하는 역할은 생각보다 크다. 위에서 언급한 브랜드 방향의 기준점이 될 뿐 아니라, 사실상 브랜드 전체를 움직이게 하는 구심점이기도 하다.
브랜드 컨셉이 명확하지 않거나, 아예 없다고 생각해보자. 새로운 디자인을 개발해야 하는데 브랜드 전체를 아우르는 키워드가 없으니, 모호한 방향의 여러 가지 디자인 시안을 마주하게 된다.
‘브랜딩(branding)’, 즉 브랜드를 만드는 과정에서 컨셉이 없다면 각 부서의 담당자들은 저마다의 생각과 방식으로 브랜드를 전개하게 된다. 이때, 문제는 우리 브랜드를 마주할 소비자이다.
디자인뿐만 아니라 매장, 광고 등 접점에 따라 다른 메시지를 마주하게 된다. 결국 소비자마다 브랜드에 대한 이미지는 모두 달라진다. 브랜딩의 가장 큰 목적은 ‘일관된 브랜드 이미지를 형성’하기 위해서인데, 이를 방해할 뿐만 아니라 브랜드를 기억조차 못 하게 될 것이다.
브랜드 컨셉은 브랜드의 중심이자 모든 것이다. 브랜드가 가야 할 길을 명확히 하고, 의사 결정하는 시간을 줄여준다. 소비자가 언제, 어디서 브랜드를 만나더라도 브랜드에 대한 공통된 이미지를 형성하게 한다.
컨셉이라고 하면 디자인 아이덴티티나 비즈니스 카테고리를 떠올리고는 한다. 그래서 브랜드의 컨셉을 ‘Contemporary Brand’나 ‘SPA Brand’ 혹은 ‘Lifestyle Brand’라고 정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것이 브랜드 컨셉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이러한 단어들은 브랜드 업태나 디자인은 설명할 수 있지만 우리만의 것은 아니다. 우리를 라이프스타일 브랜드라고 소개할 수는 있지만, 고객의 머릿속에는 이미 수많은 라이프스타일 브랜드가 존재한다.
브랜드 컨셉은 자사만을 위해 존재하는 단어여야 하며, 브랜드의 정체성을 확실히 드러날 수 있어야 한다. 이는 브랜드 컨셉을 정의하는 단어가 독특해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너무 창의적인 단어는 공동의 생각을 갖게 하는 데 방해가 된다. 추상적인 단어는 개인마다 지니는 이미지가 다르기 때문이다. 브랜드 컨셉이 독특할 필요는 있지만, 표현하는 단어가 독특한 것은 피하는 것이 좋다.
이처럼 브랜드 컨셉을 만드는 일은 그리 만만하지 않다. 내부 임직원 모두가 공감할 수 있어야 하며, 또 타사와는 확연히 구분돼야 하고, 소비자가 직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서 브랜드 컨셉을 만들려고 하기보다 먼저 브랜드 전반을 살펴보고, 정체성을 확립해 나가는 것이 필요하다.
자사의 효능과 속성, 정체성, 타깃 등을 정립한 후 브랜드를 설명하는 문구를 적어보자. 이렇게 완성된 문장은 ‘브랜드 설명문(statement)’이 된다. 이 문장을 몇 가지 단어로, 혹은 짧은 문장으로 축약하면 바로 ‘컨셉’이 된다. 그리고 이 컨셉에 창의성을 더하면 캠페인 슬로건이나 광고 카피가 될 수 있으며, 브랜드가 전개하는 모든 접점에서 기준점이 된다.
다만 브랜드 컨셉의 첫 번째 대상은 고객이 아닌 사내 임직원이라는 것을 잊지 말자. 고객이 공감하기 위해서는 직원이 먼저 브랜드의 이해도가 높아야 한다. 브랜드에 진정으로 공감하고, 체화돼야 한다. 그래야만 거래처와 만날 때, 협업할 때, 그리고 고객에게 브랜드 가치를 정확하게 전달할 수 있다.
하나의 브랜드를 소비자가 제대로 이해하기까지 얼마나 많은 시간이 걸리겠는가. 시대가 흘러도 변함없이 자기다움을 유지하며, 고객에게 사랑받는 브랜드를 살펴보면 흔들림 없이 컨셉을 유지해온 것을 볼 수 있다.
나이키는 론칭부터 지금까지 늘 ‘운동하는 사람들을 위한 브랜드’로 존재해 왔고, 무인양품은 ‘No Brand Good Quality’라는 컨셉을 의류, 가구, 식품, 더 나아가 호텔에까지 일관되게 적용하며 보여준다.
‘무진장 신발 많은 사이트’로 시작한 무신사는 초기 컨셉에서 확장하여 지금은 ‘패션의 모든 것을 만날 수 있는 패션 플랫폼’이라는 컨셉으로, 초기 커뮤니티와 매거진의 사업모델을 지금까지도 유지하고 있다.
스포츠웨어 브랜드인 룰루레몬은 ‘#스웻라이프’라는 브랜드 컨셉을 전방위에서 꾸준히 커뮤니케이션하고 있다. 룰루레몬이 지향하는 ‘땀 흘리는 건강한 삶의 방식’을 ‘#스웻라이프’라고 명명하며, 임직원 스스로도 그런 삶을 지향하며 고객에게 브랜드 컨셉을 전하고 있다. 룰루레몬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스스로에게 #스웻라이프를 부여하며 룰루레몬의 활동에 기꺼이 참여한다.
위에서 언급한 브랜드는 모두 컨셉을 말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닌, 일관되게 실행해 왔다. 컨셉은 알리는 것이 아니라 소비자에게 영감을 주는 방식으로 작동해야 한다. 그들이 컨셉을 정확하게 말할 필요가 없다.
그저 브랜드의 컨셉을 느끼고 경험하게 하면 된다. 그렇기에 컨셉은 창의적인 문장일 필요도 없으며, 디자인처럼 시즌마다 새로울 필요가 없다. 브랜드 컨셉은 일관되게 유지하되, 컨셉을 표현하는 방식을 시즌과 트렌드에 맞게 수정하면 된다.
브랜드 컨셉을 유지하는 일은 지치는 일이기도 하다. 빠르게 변화하는 시대에, 우리의 컨셉이 맞는 것인지 의심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컨셉은 수단이 아니라는 점을 명시해야 한다.
컨셉은 커뮤니케이션의 도구가 아닌 브랜드의 존재가치이다. 컨셉은 브랜드 그 자체로 존재해야 한다. 그리고 우리는 끊임없이 컨셉을 소비자 접점에 심어 두어야 하며, 소비자가 경험하도록 만들어야 한다.
브랜드 컨셉을 만들고 유지하는 일은 어렵지만, 브랜드 컨셉을 명확히 하면 커뮤니케이션이 더 쉬워진다. 브랜드 컨셉에 맞는 비주얼(visual)과 버벌(verbal)의 톤&매너가 보다 명확해지고, 독특한 브랜드 컨셉은 그 자체로 브랜드 슬로건이 되기도 한다.
브랜드 컨셉은 특히 협업할 때 그 역할이 빛을 발한다. 단순 명료한 컨셉은 협력사에게 브랜드가 가야 할 관점을 제시하며 같은 출발선에서 일을 시작할 수 있도록 한다. 동료와 협업할 때도 마찬가지다. 사업부서가 달라도 브랜드가 방향성을 알고 있기에 브랜드가 다른 길로 새지 않도록 만들어준다.
서두에서 말했듯 컨셉이란 브랜드에 대해 ‘함께 잡는’ 단어이자 이미지다. 수식어가 붙지 않아도, 그림이 없어도, 모두가 같은 생각과 이미지를 그리게 한다. ‘스웻 라이프’라는 단어를 들으면 땀 흘리며 즐거워하는 사람들이 떠오르고, ‘No brand Good quality’를 이야기하면 단순하지만 좋은 품질의 상품이 떠오르듯이 말이다.
브랜드 컨셉을 그 어떤 독창적인 것이라고 생각하지 말자. 더욱 명확하게 함께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다면, 그리고 계속해서 실행하고 있다면 그보다 좋은 브랜드 컨셉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