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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uabba Jun 29. 2022

구찌는 왜 ‘가옥’이라고 했을까?

패션포스트 60호 (2021.07.26) / 구아정의 브랜드 이야기

*본 칼럼은 패션 전문 비즈니스 미디어 '패션포스트'에 기고한 글로 출처를 밝힌 후 공유 부탁 드립니다.
*출처 : 패션포스트 http://fpost.co.kr/board/bbs/board.php?bo_table=fsp43&wr_id=12






현재 국내에서 가장 많이 회자되는 브랜드 하나를 꼽으라면 바로 ‘구찌’일 것이다. 올해 100주년을 맞이했고, 엑소 카이와 아이유를 앰버서더로 선정하고, 이태원에 국내 두 번째 플래그십 스토어를 열었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매장의 이름은 매우 한국적인 ‘가옥’이라 하였고, 이를 알리기 위해 ‘앰비규어스댄스컴퍼니×이날치 밴드’와 협업해 ‘Hello Gucci’라는 프로모션 영상을 선보이며 ‘온라인 고사’까지 치렀다.  


이쯤이면 한국에 진심인 듯한 구찌. 하우스나 메종도 아닌 왜 ‘가옥’이란 이름을 붙였을까? 

구찌 가옥을 둘러봤다. ‘가옥’이라는 말만 듣고는 굉장히 전통적인 모습일 줄 알았는데, 실제로 본 구찌 가옥은 오히려 정반대의 느낌이었다.  


파사드와 내부까지 스틸 소재를 사용한 구찌 가옥은 오히려 미래에 온 듯한 느낌이 들었다. 반짝이고 화려한 분위기는 마치 이태원의 한 클럽에 온 듯한 착각마저 들었다. 1층에 펼쳐진 고사상 화면이나 색동으로 디자인한 제품들이 구찌의 공간 속에 묻어 있었다.  



이태원에서 만나는 구찌 쇼룸 ‘구찌 가옥’


구찌는 ‘가옥’ 매장을 삼청동이나 북촌의 한옥마을에 두지 않았다. 서울 명품 거리인 청담도 아니었다. 서울에서 가장 이국적인 ‘이태원’을 선택했다. ‘이태원’이 ‘이탈리아’와 발음이 비슷하다는 이유로 고른 장소는 아닐 것이다.  


이태원은 ‘서울 속 외국’이라는 별명이 있을 정도로 다양성이 공존한다. 외국인의 밀집도가 가장 높은 곳이기도 하고, 가장 이국적인 음식과 문화를 볼 수 있는 곳이다. 이러한 특징을 가진 지역에 구찌는 28년 만에 두 번째 매장을 선보였다. 


가옥은 한국의 전통주택을 말하지만 구찌는 가옥의 형태보다는 그 의미를 담고자 했다. ‘한국의 집이 주는 고유한 환대문화’를 통해 방문객들이 편하게 쉬어갈 수 있는 장소이길 바라는 마음을 담았다고 한다.  


구찌는 이탈리아 정통성을 강조하면서도 현대적 감각을 잃지 않는다. 이 두 가지 감각을 조화롭게 표현하고 있는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인 알렉산드로 미켈레는 이태원이 한국과 구찌가 공존할 수 있는 최적의 장소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한국과 구찌, 두 가지의 대비되는 감각이 함께하며 시너지를 낼 수 있는 공간이 바로 이태원의 구찌 가옥으로 완성된 것이다. 이태원에 존재하는 수많은 다양한 사람들에게 이탈리아식이 아닌, 한국식으로 환대하며 구찌의 또 다른 새로운 면모를 보여주었다.  


그래서인지 구찌 가옥은 1층에서부터 제품만을 진열해 놓지 않고, 가옥 익스클루시브 제품을 인테리어 소품처럼 두고, 오히려 넓은 벽면에 직접 고사상을 차릴 수 있도록 큰 화면을 설치했다.  


이곳에서 사람들은 저마다의 고사상을 차리며 즐겁게 구찌 가옥의 환대를 받고, 반짝이는 스테인리스 스틸 타일을 배경으로 기념사진을 한 장씩 남긴다. 마치 유명 관광지에 온 것처럼 말이다. 


구찌 가옥에는 가옥 익스클루시브 라인이 있다. 한국 전통의 색동 문양에서 영감을 받은 디자인으로 가방, 옷, 신발 등을 포함한다. 하지만 구찌 가옥을 더욱 가옥답게 하는 것들은 비단 이 제품만이 아니다. 바로 구찌 가옥에서만 존재하는 ‘경험’이다. 





구찌 가옥을 더욱 ‘가옥’답게 하는 것 


구찌 가옥 1층에 들어서면 예약이나 가이드 등을 도와주는 직원이 있다. 직원에게 절로 눈이 가는데 그 이유는 ‘유니폼’ 때문이다. 마치 구찌 가옥을 ‘사람’으로 형상화한 듯, 색동문양의 깃을 덧댄 유니폼은 구찌 가옥의 디자인이자 공간의 중요한 요소가 되어준다.  


이 역시 알렉산드로 미켈레가 구찌 가옥을 위해 직접 디자인한 것으로, 구찌 가옥의 첫인상이 유니폼으로 강렬하게 남았다. 이 유니폼이 특별하다고 생각한 사람은 나만이 아니었다. 많은 방문객이 유니폼을 카메라로 찍는다고 한다. 


대부분은 공간의 요소로 인테리어나 소품만을 생각하는데, 사실 공간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는 다름 아닌 ‘직원’이다. 직원은 고객과 직접 대면하는 인물로 이들의 유니폼부터 말투, 눈빛, 손짓 하나하나 모두가 브랜드의 생각과 행동을 대변한다.  


구찌 가옥 유니폼이 일반 매장 직원처럼 평범한 정장 차림이었다면 구찌 가옥의 느낌은 반감됐을지도 모른다.  마치 두루마기 같은 가운 형태에 색동 디자인이 덧대어진 유니폼은 구찌가 만든 ‘가옥’이 어떤 것인지 그 느낌을 전하기에 충분했다. 


구찌 가옥에서만 볼 수 있는 또 다른 것으로 ‘포장 서비스’가 있다. 보자기와 전통 노리개를 활용해 한국 전통식으로 포장을 한다. 노리개를 활용한 ‘참(charm)’이 있어도 좋았겠다고 생각했는데, 그 노리개는 포장의 장식으로 쓰이고 있었다.  


이러한 포장 서비스는 오직 구찌 가옥에서만 경험할 수 있는 것으로, 어떤 제품을 사던 구찌 가옥의 ‘한정판’으로 변신 시켜 준다. 포장 때문이라도 일반 매장보다는 구찌 가옥을 찾아가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마지막을 장식하는 포장 시간은 구찌 가옥의 현대적 멋이 더욱 빛을 발하는 순간이었다. 




가옥에 담은 구찌의 전통


구찌 가옥은 한국 고유의 멋스러움을 표현하면서도 자신들만의 장인정신 또한 잊지 않았다. 전 세계에 딱 한 벌 뿐인 컬렉션이나 한정판 주얼리, 국내에서는 처음으로 매장에서 선보이는 테이블 웨어 등으로 구찌다운 명성을 곳곳에 배치해 두었다.  


편안한 분위기를 만들어내는 소파나 인테리어 소품 역시 모두 구찌의 제품으로 연출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피팅룸은 마치 구찌 가옥 안에서도 다른 공간인 듯, 새로운 씬(scene)을 연출한다. 구찌만의 과감한 멋을 제대로 보여주고 있다. 





‘헤리티지’를 파는 럭셔리 브랜드 


‘구찌 가옥’이란 이름은 어쩌면 국내 젊은 소비자를 유인하기 위한 미끼일지도 모른다. ‘가옥’으로 한국의 문화적 가치에 대한 존중을 보이며 국내 고객에게 기대감과 설렘을 안겨준다.  


그리고 한번 발들인 고객에게 구찌는 그들의 전통성을 가옥에서 제품으로 보여주고 있다. 구찌 가옥은 결국 ‘하우스 오브 구찌(House of Gucci)’의 국문 버전으로, 그들의 정통성과 본질적 가치를 전시하는 쇼룸이 된 것이다.  

한국의 전통을 반영하는 것으로 구찌 역시 그만한 역사, 헤리티지(Heritage)를 갖추고 있음을 방증한 셈이다. 


이렇듯 한국의 젊은이를 찾는 브랜드는 비단 구찌뿐만이 아니다. 지난 5월 에르메스는 성수동 디뮤지엄에서 ‘에르메스, 가방 이야기’라는 전시를 선보였고, 루이 비통은 재단의 소장품인 게르하르트 리히터의 작품을 루이 비통 메종 서울에서 전시 중이다.  

소위 ‘명품’이라 말하는 브랜드가 한국에서 각자의 헤리티지를 전시와 공간 등으로 선보이는 중이다. 


코로나19기간에도 여전한 상승세를 보여주고 있는 한국의 소비 시장에서 럭셔리 브랜드는 기회를 봤을 것이다. 또한 이제는 주류가 된 K-POP으로 한국 젊은 층의 감각과 팬덤 위력을 충분히 느꼈을 것이다.  


그렇기에 브랜드에서는 계속해서 성장하는 서울이라는 도시에서 제품 외에 브랜드가 가진 가치, 즉 헤리티지(Heritage)를 제대로 알려주는 일이 필요했을 것이다. 


‘명품’ 또는 ‘한정판’이라는 물성은 브랜드만의 고유 가치가 될 수 없다. 럭셔리 브랜드라면 누구나 팔 수 있다. 하지만 명품과 한정판이 갖는 의미와 이를 뒷받침할 역사는 누구나 가질 수 없으며 해당 브랜드만이 보여줄 수 있는 것이다. 럭셔리가 더욱 ‘있어 보이게’ 하는 요소들이다.  


특히 젊은 세대는 제품이 갖는 스토리와 가치를 중시한다. 럭셔리 시장에서 신입이라 할 수 있는 이들에게 자신들만의 고유한 역사를 보여주고 경험하게 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다. 그래서 이들 브랜드는 어느 때보다도 개방에 적극적이다.  


특히 계속해서 소비가 성장하는 이곳, 한국의 젊은이들을 자신들의 세계에 기꺼이 초대한다. 당신들이 소비하는 것은 비단 제품만이 아니며 한 브랜드의 역사를 소장하는 것이라고.  


오래된 것을 ‘뉴트로’라는 방식으로 즐길 줄 아는 한국의 젊은 소비자들 또한 이들 브랜드의 초대에 적극 응한다. 전통을 현대적 감각으로 재해석하고, 강남을 벗어나 그들이 좋아하는 곳에 공간을 마련하고, 쉽게 볼 수 없는 작품들을 선보이며 브랜드의 역사와 현재를 제대로 보여주며 브랜드와 교감하는 시간을 만들어 가는 중이다.  


브랜드의 헤리티지는 과거로부터 쌓아온 것이지만 지금부터 쌓아가는 미래가 되기도 한다. 럭셔리 브랜드가 계속해서 가치를 인정받는 것은 과거의 전통에 머무는 것이 아닌 지속적인 혁신이 있기 때문이다.  


이들은 새로운 흐름을 막지 않는다. 오히려 새로운 고객들을 반기며 현재와 미래의 중심세대들과 함께 새로운 헤리티지(Heritage)를 함께 쌓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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