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포스트 / 2022년 08월 2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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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패션포스트 http://fpost.co.kr/board/bbs/board.php?bo_table=fsp43&wr_id=19
작년 3월, 샤오미는 ‘2021 봄 신제품 발표회’에서 향후 10년 동안의 주요 계획과 새로운 로고를 선보였다. 언뜻 보고, 자세히 보아도, 사각형에서 둥근 사각형으로 바꾼 것 말고는 큰 변화가 없다.
이 정도의 변화도 ‘리뉴얼’이라고 해야 할지 서로가 머쓱한 상황이다. 샤오미의 창업주이자 CEO인 레이쥔 역시 반응을 예상했는지 “많이 실망했는가?”라는 말로 시작하며 새로운 로고를 소개했다.
샤오미의 새 로고를 작업한 인물은 일본의 디자인 거장 ‘하라 켄야’다. 그는 일본디자인센터 회장이자 라이프스타일 브랜드 ‘무인양품’의 아트디렉터이기도 하다. 샤오미는 ‘IT계의 무인양품’을 목표로 하기에 로고 리뉴얼을 하라 켄야에게 맡긴 것은 더없이 훌륭한 선택이었다.
반응은 뜨거웠다. 로고 발표 전까지만 해도 샤오미와 하라 켄야의 협업에 모두가 큰 기대를 가졌다. 하지만 새 로고를 발표한 후, 부정 여론 일색으로 돌변했다.
게다가 중국 브랜드를 일본 디자이너에게 맡겼다는 이유로 중국에서의 비난이 거셌다. ‘사기를 당한 것’이라며 로고와 관련한 개그 밈(meme)까지 만들어 냈다. 하지만 이 덕분에 샤오미는 여론의 중심에 있을 수 있었다. 심지어 ‘계속 보다 보니 괜찮다’는 반응까지 이끌어냈다.
디자인 비용이 마케팅 예산에 포함된다면, 엄청난 바이럴을 일으켰으니 3억 원의 비용이 비싸게 느껴지지 않는다.
샤오미 입장에서는 오히려 이득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새롭게 탄생한 샤오미의 로고는 역경을 딛고 자리를 잡았고, 현재 샤오미의 얼굴이자 미래가 되었다.
디자인의 결과물과 3억 4천만 원이란 비용을 두고 보면 놀랄 수밖에 없다. ‘겨우’ 이 정도의 변화로 억 단위를 줘야 하는 건지, 로고를 바꾸려 했던 기업이라면 프로젝트를 취소할 수도 있겠다.
누군가는 하라 켄야의 이름값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른다(개인적으로는 하라 켄야에게 의뢰한 비용 치고 싸다고 느껴지기는 한다). 하지만, 생각해보자. 로고 리뉴얼에 ‘디자인’만 포함이 되는지.
하라 켄야는 영상을 통해 샤오미의 새 로고 작업 과정을 설명했다. 무려 3년이란 시간 동안 샤오미의 로고를 만들었다고 한다. 3년 동안 만든 결과물이라니 여러모로 더 놀랍기만 하다.
어찌되었건 영상을 보면 3년이라는 시간 동안 3억 4천만 원 어치의 작업은 그리 만만한 것은 아니었다. 일단, 3억 4천만 원의 값어치는 둥근 네모형의 심볼만 포함하지는 않았다. 하라 켄야가 설명하는 영상을 보면 다음의 내용들<표1>도 포함하고 있다.
공식적으로 발표한 영상만 봐도 무려 여덟 가지이다. 실제로는 더 많은 내용들이 포함되어 있을 것이다. 하라 켄야는 단순히 ‘디자인’만 하지 않았다.
즉, 예쁘고 좋아 보이는 그림을 그린 것이 아니라 샤오미의 콘셉트를 새롭게 정의하고 그에 맞는 최적의 심볼, 타이포그래피, 로고타입을 제안했다. 그리고 브랜드 핵심 컬러와 보조 컬러를 선정해 활용 가이드까지 제시한다. 추상적인 콘셉트를 영상 비주얼로 제작하여 듣는 이들의 이해를 돕고 있다.
이 모든 작업을 하기 위해서는 그림을 그리는 일 외에 눈에 보이지 않는 ‘기획’이라는 시간과 공이 필요하다.
우리는 ‘디자인’이라고 하면 단순히 그림을 그린다고 생각하지만, 브랜드에 있어 디자인은 오히려 ‘기획’에 가깝다. 디자인을 시작할 때는 일단 브랜드를 살펴본다.
브랜드 전체를 관통하는, 여태껏 정리하지 못했던 정체성이나 키워드를 퍼즐 맞추듯 정리한다. 하라 켄야가 샤오미의 철학에서 ‘Alive’라는 콘셉트를 이끌어 낸 것처럼 말이다.
그 다음부터가 난관의 시작이다. 대표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그게 아니라면 왜 이것이어야만 하는지 설득이 필요하다.
설득은 한 번으로 끝나지 않는다. 보고가 몇 차례 진행된다. 그 가운데 임직원들이 바라는 점도 담아서 대표에게 전달해 본다. 이전에 통과되지 않은 것들을 전문가의 입을 빌어 전달하기를 원하기 때문이다.
하라 켄야라면 단번에 통과가 될 수도 있겠다. 그럼에도 로고 선정이 단번에 끝나는 일은 드물다.
하라 켄야가 디자인 보고는 한 번만 했을지언정, 위 이미지처럼 최적의 비율을 찾기 위해 몇 십 개의 심볼을 그렸다. 보통의 경우라면 3개의 최종 시안을 위해 100개가 넘는 초안을 만들어 낸다.
의뢰를 받은 대행사 내부에서 한 번, 실무자 선에서 한번, 그리고 최종 보스 대표를 만나기까지 무수히 많은 퀘스트가 존재한다. 그 퀘스트를 다 깨고 간택당한 시안은 다시 한 번 수정 요청을 받는다. 아쉬워 말라고 보너스 게임까지 준비해 둔다.
브랜드의 콘셉트부터 로고, 폰트, 컬러 등을 제안하고 수정하는 작업을 거치며 로고는 완성이 된다. 때때로 디자인 프로젝트 명칭에 ‘기획’이나 ‘개발’이란 단어가 붙는 이유가 바로 이러한 과정을 거치기 때문이다.
디자인은 새로운 브랜드가 아니라면 기존의 것에서 변주할 수 있는 범위가 넓지 않다. ‘완전히 새롭게’라는 요청도 있겠지만, 기업에서 미리 그어 둔 ‘선’을 따라야 한다.
레이쥔 샤오미 CEO 역시 이전의 로고를 10년 동안 사용했기에 너무나 친숙하고, 그래서 더욱이 바꾸기 어렵다고 말했다.
이전과는 다르지만 익숙함은 있어야 하고 또, 익숙하지만 새로운 느낌을 만들어야 했을 것이다. 기업에서 그어 놓은 ‘선’이라는 것이 바로 이러한 부분이다.
이 가이드를 지키기 위해 기획자, 디자이너는 무엇을 가져가고 버려야 할지 고민의 시간이 필요하다. 디자인 프로젝트이지만 브랜드의 정체성, 기업의 철학에서부터 시작하는 이유이다.
이 모든 작업이 당연히 한 달 사이에 이루어지지 않는다. 하라 켄야는 샤오미 로고를 3년 동안 작업했다고 한다. 당연히 디자인만을 3년 동안 작업한 것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 역시 샤오미 본질에서부터 고민하며 콘셉트를 재정의했다.
샤오미는 표면적으로는 디자이너를 고용한 것이지만, 내면적으로는 무인양품 아트 디렉터의 사고방식에 대한 비용을 지불한 것일지도 모른다(사실, 3억 4천만 원이란 비용에 무엇 무엇이 포함되는지 아무도 모르는 일이다).
이러한 과정은 비단 디자인에만 해당되는 것은 아니다. 브랜드가 가진 요소들을 리뉴얼하거나 새롭게 개발할 때에도 비슷한 과정을 거친다.
그리고 비슷한 종류의 퀘스트들이 존재한다. 그것을 깨고 기업에 합당한 결과물을 가져가기까지 고민의 시간들에 대한 비용이 결코 저렴할 수 없는 이유다.
요즘에는 디자인을 ‘가성비’있게 빠르게 뽑아내는 플랫폼도 생겨나고 있다. 그렇기에 로고 디자인에 3억 원이란 비용은 더욱 이해하기 어렵다.
하지만 본래 브랜드에서의 디자인이란 브랜드의 정체성을 표현하는 것이고 그렇기에 디자인의 시작점은 브랜드 자체에 대한 고민에서부터 시작한다.
이 고민과 시간에 대한 비용은 생략한 채 표면적으로만 보이는 결과물로만 값을 환산하니 당연히 비용이 맞지 않는다.
물론 모두가 그렇게 비싼 돈을 디자인에 투자하라는 것은 아니다. 사업의 규모에 맞게 빠르게 만들어내는 디자인도 분명 필요하다.
하지만 디자인이 단순히 이미지라고는 생각하지 말자. 하나의 로고를 만들기까지, 기획자와 디자이너는 무수히 많은 밤을 새우며 최적의 결과물을 만들기 위해 누구보다 브랜드를 오래 동안 보며 깊게 고민한다.
그 시간과 고민을 거쳐 완성하는 것이 바로 우리가 보고 있는 브랜드의 로고이자 디자인이다.
하라 켄야가 완성한 샤오미 로고가 이전과 비록 큰 차이가 없어 보일지라도, 그 이면에는 브랜드에 대한 진정성 있는 고민과 소통이라는 3년의 시간이 있었다.
이 시간을 곱씹어 보면 3억 원이 조금 넘는 비용이 마냥 비싸다고만 이야기할 수는 없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