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탕 다섯 스푼을 모르고 살아간다면

by 일로

언제 떠올려도 늘 선명하게 다가오는 시간들이 있다. 2009년 3월도 그중 하나다. 군 복무 시절 우리 부대가 휴전선 경계근무에 막 투입될 무렵이었는데, 그 오지에서 1년을 보낼 생각을 하니 밤마다 잠이 오질 않았다. 지금도 매사가 괴로운 마당에 그보다 더 외딴곳으로 투입되면 얼마나 끔찍할지 도무지 가늠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실제로 가보니 느낌은 정확했다. 면회, 외박, 외출만 안 되는 게 아니라 기상조건에 따라 휴가 취소도 빈번했고, 인터넷도 들어오지 않았다. 보안을 이유로 지인에게서 선물 받은 소형 라디오도 압수됐다. PX도 없어 일주일에 한 번 황금마차라 부르는 이동식 매점이 찾아오는데, 그마저도 장마철이나 혹한기가 되면 언제 찾아올지 기약이 없었다. 연병장조차 없는 막사 주위엔 지뢰밭임을 알리는 철조망만이 가득했다. 이곳에서 우리와 감정적으로 교감할 수 있는 존재라곤 매일 음식물 쓰레기를 먹으러 찾아오는 멧돼지 정도였다.


이런 곳에서 매일 돌아가는 일상이란 이렇다. 그저 눈을 감았다 뜬 정도에 불과한 잠을 한 시간쯤 자고 일어나 철조망을 점검한다. 그리고 초소에 들어가 몇 시간씩 북한 땅을 바라본다. 해가 뜨면 다시 내려와 아침밥을 먹고 철조망을 보수하고 진지를 보강하는 작업을 하다 다시 침대에 누워 세 시간 정도 눈을 감고 일어난다. 이땐 해가 훤하게 떠 있을 때라 눈을 감아봐야 큰 의미가 없다. 이처럼 두 달 정도를 보내고 나면 걸으면서도 잠을 자는 신비한 체험을 일상적으로 할 수 있는데, 이렇게 잠을 못 자서 고통스러울 바에는 전쟁이라도 터져서 하루빨리 하늘나라로 갔으면 하는 자조 섞인 농담을 서로 아무렇지도 않게 내뱉는 지경에 이른다. 이소룡은 예전에 자신이 쓴 책에서 "이 세상은 너 자신이 총동원될 만큼 길지도 험하지도 않다는 걸 명심해라."라고 얘기했지만, 다 뻥이다. 인간은 나약한 존재라 자지 않고 일하면 육체와 정신은 곧바로 총력전 체제로 돌입한다.


이런 휴전선 생활에서 겨울은 가장 가혹한 계절이다. 체감온도 영하 30도의 산골짜기에서 7시간 이상을 선 채로 있어야 하는데, 여름보다 밤이 훨씬 길기에 근무시간은 그만큼 더 늘어난다. 초소에 들어간 지 30분쯤 지나면 팔다리에 냉기가 스며들고, 신진대사가 떨어지면서 졸음이 몰려온다. 이 시간을 버티기 위해선 서로 끊임없이 말을 걸어줘야 한다. 다큐멘터리나 교양 프로그램을 보면 한겨울에 초소에서 내내 말없이 북한 땅만 노려보는 병사들이 나오는데, 그거 다 뻥… 까지는 아니고, 내가 아는 한 그렇게까지는 불가능하다. 냉동창고와 같은 기온의 산골에서 졸음이 찾아왔다면 경계소홀로 영창을 가더라도 일단 깨워야 하니까. 살기 위해 서로의 인생을 듣고 또 듣다 보면 영영 오지 않을 것만 같던 철수 시간이 찾아온다. 철수가 곧 휴식을 의미하는 건 아니지만, 일단 뜨거운 물로 샤워는 할 수 있으므로 다들 그것만을 생각하며 하산한다. 그때가 하루 중 전투력이 가장 강한 시간대라 할 수 있겠다. 철수를 방해하면 단언컨대 인민군도 무사치 못할 터였다.


그곳에서의 철수가 한 달 쯤 남은 날이었다. 평소대로 반쯤 동태가 된 채로 내려와 탄약을 창고에 넣고 있던 중, 갑자기 상황실에서 실제상황이라며 전원 대비태세 명령을 하달했다. 북쪽 동네에서 기어코 시비를 거나 싶어 긴장하고 있는데 바로 옆 부대에서 이등병 하나가 탈영해 이쪽 방향으로 오고 있다는 보고가 전파됐다. 무장 여부는 아직 파악되지 않은 상태였다. 소대장이 급하게 탄약과 수류탄을 다시 나눠줬다. '통제에 불응할 때에는 너희가 위험에 빠질 수도 있으니 그럴 때는 여차하면 사살해라'라는 말과 함께. 지금도 그렇지만 민간인 통제선 안에선 군의 통제에 응하지 않는 모든 인원을 향해 발포가 가능하도록 되어 있다. 군생활 내내 수 없이 사격훈련을 하면서 누군가를 쏘는 훈련을 했지만, 그게 적군이 아니라 아군이 되리란 생각은 한 번도 하지 못했다. 군대에서 벌어지는 모든 일이란 늘 그랬다. 예상치도 못한 일들이 생각지도 못한 크기로 다가와 서로의 밑바닥을 시험에 들게 했다.


그렇게 부랴부랴 진지로 달려가는 동안 들은 것은 "걸리면 가만두지 않겠다"는 동료들의 욕지기였다. 모두가 오늘 잠을 날려버린 탈영병에게 화가 나 있었다. 나 역시 다르지 않았다. 나는 눈이 쌓인 참호에 기대 탈영병을 사살하면 휴가가 며칠이 주어질지, 1계급 특진이면 월급이 어떻게 되는지 따위를 생각하며 이 길목에서 벌어질 수 있는 모든 일들을 상상했다. 이미 내 머릿속에서 탈영병은 죽고 없었다. 그가 죽은 뒤에, 정확히는 내가 그를 죽인 뒤에 누릴 수 있는 보상의 달콤함을 떠올리고 있었다. 이미 명령이 떨어졌으니 설사 죽어도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 탈영병이 겪었을 고통이 무엇이었는지, 왜 마을버스조차 다니지 않는 민간인 통제선에서 바보같이 탈영을 시도했는지는 굳이 알고 싶지 않았다.


그러기를 두 시간 쯤 지났을까. 뜬금없이 상황이 종료됐다는 소식이 무전기로 날아왔다. 뒤늦게 상황 파악이 됐는지 탈영병은 우리 쪽 길목으로 오기 전 헌병대의 설득에 저항 없이 자수했다. 경계령은 해제됐다. 부대는 다시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돌아갔다. 우리는 아침인지 점심인지 애매한 밥을 먹고 씻지도 못한 채 바로 삽을 들고 막사를 나섰다. 밥을 먹는 동안 여기저기서 "아깝다"라는 말이 들려왔다. 우리의 의식은 여전히 탈영병을 겨누고 있었다.


"살인은 간단해. 설탕의 맛을 잊어버리면 돼."


우라사와 나오키의 만화 <몬스터>에서 전직 청부살인업자 롯소는 자신에게 암살 훈련을 받으러 찾아온 주인공 니나 폴트너에게 이렇게 말한다. 그녀의 목적은 살인마가 된 자신의 쌍둥이 동생 요한을 죽이는 것이다. 사람들 마음속의 증오를 깨워내는 능력을 가진 요한을 제거하지 않으면 신나치가 대대적으로 부흥하리라 판단했기 때문이다. 롯소는 그녀에게 자신이 청부살인을 그만 둔 계기를 차분히 이야기한다. 자신이 죽인 이가 몇 명인지 다 꼽을 수 없음을 앞서 고백하면서. 그만큼 살인을 하는 데 감정적 동요를 느끼지 않던 그는, 어느 날 자신이 죽이려던 타깃이 커피에 설탕 다섯 스푼을 넣어 마시는 모습을 지켜본다. 그리고, 단지 그것만으로 그는 더 이상 사람을 죽일 수 없는 인간이 된다. 자신 역시 커피에 설탕 다섯 스푼을 타 먹기를 즐겼으므로. 커피를 달게 마시는 자신의 즐거움을 타인도 똑같이 누리고 있음을 깨달으면서 그의 삶은 전혀 다른 길로 향한다.


롯소가 설탕의 맛을 이야기하는 장면을 볼 때마다 스스로 괴물이 됐는지조차 모른 채 살았던 시간들을 떠올린다. 일상에서 오는 소소한 즐거움. 그게 박탈된 순간 저마다의 마음 속에서 괴물은 기지개를 켠다. 우리가 설탕의 맛을 잊지 않고 살아야 하는 건 그 때문이리라. 그 맛을 잊지 않는 한, 우리는 타인의 기쁨과 슬픔이 나의 그것과 다르지 않음을 느낄 수 있다. 그게 인간다움의 전부임을 8년 전 겨울에 알았더라면 어땠을까? 이제서 말해 봐야 그저 비겁한 변명임을 안다. 너무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그에게 진심으로 사과의 말을 전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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