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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로 Sep 04. 2024

스트레스를 풀 줄 알아야 한다


Menu 32. 스트레스를 풀 줄 알아야 한다


서비스업은 불특정 다수를 상대로 한다. 그리고 세상은 넓고 정말 다양한 사람들이 많다는 사실을 체감한다. 일하는 과정에서 온갖 일들이 벌어질 수 있다는 얘기다(만약 당신이 술을 함께 팔고 있다면 더욱 그럴 것이다). 다행히도 우리 가게는 작은 동네에 위치해 있다. 몇 백 년이 넘은 동네다. 아버지의 고향이자 우리 집안이 수대에 걸쳐서 살아온 곳이다. 이런 곳에서는 한 다리 건너 모르는 사람이 없기 때문에 몸가짐을 조심해야 한다.      


그것이 손님일지라도 그렇다. 설사 언쟁이 생길 만한 문제도 다들 좋게 풀린다. 그래도 손님의 무리한 부탁이나 우격다짐은 피할 수 없다. 대개 이럴 때 생각하는 게 ‘어떤 경우에도 인간성을 믿자’는 것이다(만약 당신이 술을 판다면 이 좌우명은 빨리 머릿속에서 지워라). 바라는 것이 조금 지나칠 뿐 이들에게도 상식과 인간성이라는 것이 있으니 너무 예민하게 받아들이지 말자는 뜻이다. 이렇게 생각하면 표정도 이내 풀리고 난감한 일들도 그럭저럭 잘 해결된다.      


디즈니 애니메이션 <라이온 킹>에서 멧돼지 품바가 주인공 사자 심바에게 '하쿠나 마타타(Hakuna Matata)'라는 말을 가르치는 장면이 나온다. 스와힐리어로, 직역하면 “문제가 없다”, “잘 될 것이다”라는 뜻이다. 내게는 ‘인간성’이라는 단어가 하쿠나 마타타와 같다. 결국 모든 문제는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벌어지므로. 내게는 ‘다 잘 될 거야’라는 말보다 누구에게나 각자의 인간성이라는 게 있다고 믿는 게 더 확실한 기도다.     


하지만 나는 휴머니스트가 아니다. 인간성에 대한 믿음 덕에 늘 위기를 모면하지만, 동시에 이 인간성에 질려버리는 순간이 온다. 사람이 싫어진다. 사람이 많은 곳보다 적적한 곳이 좋아진다. 사람이 많은 곳에 10분만 서 있어도 ‘호모 사피엔스란’ 대체 왜 이런가 싶다. 그렇게 불특정 다수에 대한 혐오와도 가까워진다.   

   

일한 지 10년 차 부터는 감정조절이 뜻대로 되지 않았다. ‘매장에서 어떻게 저런 행동을 하지?’ 싶은 사람들. 죄송할 일이 없는데도 사과를 해야만 하는 순간. 겪고 나서는 괜찮다 여겼는데, 아니었나보다. 결국 아내의 권유로 몇 차례 심리상담을 받았다. 번아웃이란다. 두려움을 느끼는 수치는 100점 만점에 100점, 의욕을 나타내는 수치는 0점이었다. 상담사는 이 상태로 버텨온 게 신기하다고 했다.      


그때 깨달았다. 사람에게서 얻은 피로와 상처는 결코 쉽게 회복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당장은 툭툭 털고 나아가고 있고, 그렇게 느끼지만 그렇지 않다. 조용히 심연에 침전돼 있을 뿐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무거운 발걸음을 떼며 일터로 나선다. 그게 내 밥벌이니까. 일하지 않는 시간에 스트레스를 최대한 풀 수 있어야 한다. 물론 이는 근본적인 해결책은 아니다. 상담사 역시 지금의 노동이 계속 고통을 가중시킨다면 일을 관두는 것만이 유일한 해결책일 것이라고 했다.


서빙은 당신이 생각하는 것보다 꽤 전문적인 일이다. 하지만 이 일이 지속 가능하다고 말하지는 못하겠다. 조금이라도 직업 수명을 늘리기 위해서는 자신을 잘 돌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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