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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로 Sep 23. 2024

답이 없는 사회, 외로운 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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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번 주에 서점에서 <아무튼, 하루키>라는 책을 읽었다. 아무튼 시리즈의 스물여섯 번째 작품이다. 짧게 설명하자면 저자의 취향과 취미를 책으로 엮은 시리즈 중 하나인데, 나는 주로 책의 서문을 읽는 걸 즐겼다. 그 많은 사람들의 취향에는 사실 관심 없다. 그러나 이들이 왜 그것에 꽂혔는지에 대한 이야기는 충분히 흥미롭더라(솔직히 말하면 서문만 읽은 경우도 많았다).              

       

그 많은 아무튼 시리즈 중에서 <아무튼, 하루키>가 기억에 남는 이유는, 무라카미 하루키에 빠지게 된 그 계기와 배경이 나와 비슷했기 때문이다. 10대 시절의 작가는 체벌이 심했던 학교에 다니고 있었단다. 교사들이 주먹으로 얼굴을 때리고 구둣발로 정강이를 걷어차는 게 자연스러웠던 곳이었다던데, (어느 학교가 안 그랬겠냐만) 내가 다니던 학교도 비슷했다. 뭘 잘못했는지 지적도 하지 않은 채 빗자루가 세 자루나 부러지도록 학생을 패도 그들은 거리낄 게 없었다. 그런 시대, 그런 세상이었다. 그런 공간에 강제로 열세 시간 동안 메여있다 보면 정신이 나갈 것 같았다. 현실은 늘 지긋지긋했고, 늘 자퇴를 생각했다.               

      

이런 억압 속에서 내게 해방구가 되어준 건 헤비메탈이었다. 내가 아는 한 헤비메탈 뮤지션들은 오만 인상을 쓰고 욕을 해도 환영받는 유일한 직군일 것이다. 무대 위의 뮤지션들은 단 한 사람의 예외 없이 잔뜩 화가 난 표정이었다. 가사 역시 그랬다. 더러운 세상! 가서 네 무덤을 파! 사람들은 다 똥이야! 우린 다 죽을 거라고! 놀라웠다. 세상을 향해서 이렇게까지 말할 수 있다니. 그게 내 세계관에 영향을 줬음을 물론이다.


내가 좋아하는 헤비메탈 뮤지션들 중에서는 정치적 이슈에 목소리를 내는 이들이 몇 있었다. 자연스럽게 나는 그들에게 영감을 준 말콤 엑스와 사파티스타, 마르크스와 체 게바라, 동남아시아 어디선가 벌어지고 있는 의류브랜드의 아동 착취에 대해서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온라인에서 만난 또래들과 이름만 거창한 체벌 반대 조직을 결성하기도 했다.                

      

물론 스트레스를 풀 취미가 하나 생겼을 뿐, 달라지는 건 없었다. 여전히 학교에서는 아침마다 매타작 소리가 들려왔고, 왜 배워야 되는지 모를 것들을 혼나지 않기 위해 외워야 했다. 친구들 또한 그냥 세상이 이런가 보다 하며 크게 문제 삼지 않았다.                     


사실 이러한 억압과 부조리가 묵인된 이유는 좋은 대학에 가면 인생의 상당 부분이 해결되리란 환상이 모두에게 먹혔기 때문이었다. 누군가는 그 환상을 따랐다. 다른 누군가는 끝까지 반항했다. 무엇을 택하든 그 환상은 우리의 기준점이었다. 그러나 그 기준점이 흔들리는 데에는 채 5년이 걸리지 않았다. 나도 친구들도 최악의 취업난이라고 명명된 시기를 정통으로 맞은 다음에야 그것이 어른들의 거짓말이었음을 깨달았다. 인생은 수능시험과 다르며, 단 한 번의 경쟁으로 탄탄대로가 깔리는 사회의 논리는 이제 과거의 유물이 됐음을. 그 거짓말은 신병교육대 앞에서 입대 장정들에게 싸구려 전자시계를 팔던 상인들과 정확히 같은 유형의 것이었다. 사기임을 알게 된 뒤에는 찾아가서 따지는 게 부질없다는 점에서.


수십 년간 지속된 고질적 취업난 때문일까. 더 이상 이런 유형의 사기는 통하지 않는다. 그렇게 젊은 세대들을 옥죄던 부조리들과 이를 정당화하던 환상들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제자 따귀를 후려치던 교사들은 교육청의 은사 찾기 서비스에서 자신의 이름을 지워달라는 요청을 남긴 채 은퇴했다. 그들에게 맞으며 자란 3, 40대는 치맛바람이란 비아냥을 들을지언정 학교에서 자기 자식이 체벌 당하는 상황을 더 이상 두고 보지 않는다. ‘내가 밀어줄게’ ‘내가 끌어줄게’ 따위의 말로 ‘똥군기’를 일삼던 대학 선후배 문화도 근절되다시피 했다. 이제는 초등학생들조차도 인생의 관문 하나를 통과했다는 것이 모든 것을 해결해 주지 않는다는 진실에 눈을 떴다.


근데 그다음은? 안타깝게도 이러한 진실이 새로운 길을 열어준 건 아니다. 오히려 많은 이들이 길을 잃었다고 느낀다. 경제는 이전만큼 성장하지 않는다. 빠르게 바뀌는 자본주의 생태계 탓에 ‘멘토’들의 조언은 큰 의미를 갖기 힘들어졌다. 기존의 질서는 더 이상 강력하게 작동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새 질서가 도래한 것도 아니다. 전근대적 억압이 일상에서 사라졌으니 저항을 내 정체성으로 삼을 수도 없다.


그러니까, 이제는 사회의 그 어떤 흐름에도 내 삶을 의탁할 수 없다. 이런 상황에서 각자는 무슨 답을 갖고 있는가? 그리고 나와 당신은 어느 방향으로 첫발을 디뎌야 할까? 만약 내가 지형지물 하나 없는 몽골 초원에 떨어졌다면? 거기서 나는 자유를 느낄까? 방황에 두려울까? 차라리 누군가가 거짓말이라도 해 주길 바라지 않을까? ‘여기서 조금만 가면 마을이 있어요!’ 그 말이 진실인지 아닌지는 그다음이다. 옛날이나 지금이나 광야에 선 개인이 거짓보다 무서워하는 건 ‘답이 없는 상태’다.


그간 ‘인생에 정답은 없다’란 말은 모두가 머리로만 알고 있던 명제였다. 지금은 상황이 다르다. 답이 없는 개인도, 답이 없는 사회도, 이제는 마음으로 받아들여야 할 시대적 현실이다. 당신에게 그 시대는 해방인가? 공포인가?                


아마 이것은 자신이 내린 답, 지금 향하는 길 앞에서 의연할 수 있는지에 달려 있을 것이다. 그럴 수 없다면 타인의 사탕발림이 거짓임을 알면서도 끝내 믿고 싶을 것이다. 어떤 길이 더 바람직하다고 감히 이야기하진 않겠다. 어차피 무엇을 택하든 답이 없는 세상 속 개인은 상상 이상으로 외로울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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