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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편채원 Mar 21. 2022

1. 인생 첫 시골땅 임장기

시골땅 매매, 대체 뭐부터 시작해야 할까?

그렇다면 어디에 보금자리를 틀 것인가. 연고가 있는 지역도, 땅을 매매해 본 경험도 없다. 일단은 유튜브에 나와 있는 토지 매물들을 참고해 우리에게 맞는 기준부터 세워보기로 했다.


잠실에서 1시간 내외의 거리 (가평 or 양평 or 춘천)

면적은 200-300평

금액은 1억-1억 5천

토목공사가 완료된 곳

단지형 전원주택 부지 No

뒷편이 산 또는 숲으로 되어 있으며 개발의 여지가 없는 곳 (어느 정도 프라이버시가 보장되는 위치)

아늑한 분위기

디귿(ㄷ)자 형태의 집을 앉힐 수 있는 모양의 땅

집의 방향은 남향, 남서향, 남동향 정도까지

공동묘지, 하수처리장, 쓰레기매립장, 축사, 사격장, 공장, 고압 전신주 등의 기피시설에서 떨어진 곳


땅을 좀 볼 줄 안다는 사람이라면, 위 기준이 말이 안 된다는 걸 알 수 있다. 가평, 양평, 춘천에 토목공사가 완료된 1억 초중반대 토지라니. 도로도, 전기도 없는 산 속 오지를 말하는 게 아니라면 이건 뭐 도둑놈 심보라고 밖에 할 수 없다. 그렇지만 너무 막연하게 돌아다니기 보다는 앞뒤가 좀 안 맞더라도 대충이나마 조건을 써 거기에 맞춰 알아보 는 것이 문제점을 찾아내기 쉬울 거라 생각했다. 몇 번의 임장을 경험하고 발견한 우리의 문제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듯) '가격'이었다.


토지 가격은 최대 2억까지, 거리도 최대 2시간까지로 수정했다. 토목공사는 되어 있으면 좋지만, 안 되어 있어도 상관없는 걸로. 대신 면적은 500평 내외로 넓혔다. 실제로 임장을 다녀 보니 내가 생각하는 민박집을 짓기에 2, 300평은 아무래도 빠듯해 보였기 때문이다.




첫 임장을 갔던 날이 아직도 생생하다. 2020년 11월의 어느 주말이었다. 뭐부터 시작해야 할 지 몰라 침대에 누워 유튜브에 올라오는 토지 매물만 뒤적거리고 있었다. 그러다 문득 날씨도 화창한데 왜 집구석에서만 이러고 있는 건지, 도저히 답답해서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멀리 있는 남편(당시 남친) 대신 안방에서 비몽사몽하고 있던 엄마를 꼬셔 청평으로 향했다.


내가 지금 살고 있는 경기도 광주도 나름 시골이라고 생각했는데, 청평에 비하니 완전 도시였다. 우리의 첫 목적지는 호명리에 위치한 200평 크기의 땅이었다. 부동산 중개인이 알려 준 주소를 따라가니 2차선 도로를 끝으로 좁은 비포장도로를 따라 한참을 더 들어갔다. 상점은 둘째치고 작은 슈퍼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그렇게 10분 정도를 달리자 작은 마을 하나가 나타났다. 영상에서 설명한 그대로였다. 토지 앞을 흐르는 개울도, 토지 뒤쪽으로 펜션처럼 보이는 알록달록한 건물이 있는 것도 같았다. 그런데 음, 뭐랄까. 상상과 현실은 확실이 달랐다. 아, 시골 가면 이런 곳에서 살게 되는 거구나. 아무래도 첫 임장이었으니, 막연히 상상만 하다 실제로 만나는 시골의 모습은 꽤나 큰 충격(?)으로 다가올 수밖에 없었다.


'나 여기서 살 수 있을까? 귀촌 그거, 잘한 결정 맞아?'


밀려오는 걱정을 잠시 접어두고, 두 번째 임장지를 향해 출발했다. 같은 청평면이지만 이곳은 '삼회리'라는 마을이었다. 그런데 웬걸, 가는 길부터가 다르다. 북한강을 옆에 끼고 도로를 달리니 이제서야 여행을 떠나는 기분이다. 강을 바라보고 지어진 멋진 카페들도 드문드문 보인다. 그래, 내가 생각했던 청평은 이런 곳이지! 가는 길부터 흥이 나는 걸 보니 이번 땅은 왠지 느낌이 좋다.


아니나다를까. 목적지에 도착하자마자 마치 고향을 찾은 양 아늑한 기분이 든다. 첫 번째 땅과는 달리 마음이 편안해지는 것이 이제야 인연을 만난 것 같다. 무엇보다 마을 입구쪽에 강을 끼고 자리한 커다란 펜션 겸 카페가 내 마음을 사로잡았다. 잘 가꿔진 넓은 정원도 모자라, 영하의 날씨에도 모락모락 김이 피어오르는 북한강 뷰(view)의 온수풀까지. 첫 땅을 보고 찾아왔던 심란함이 조금씩 가라앉는 것이 느껴졌다. 귀촌을 결심했을지언정, 아직은 도시 생활에 더 익숙한 나였다. 하여, 도시와 시골의 어느 경계쯤 애매하게 위치한 마을 분위기가 안정감을 주었던 것 같다. 코 끝을 스치는 차갑고 상쾌한 겨울의 공기, 고요한 가운데 간간이 퍼지는 새소리, 때마침 예쁜 주황빛으로 물들어가는 하늘까지. 남서향의 네모 반듯한 200평의 토지를 보며 내 머릿 속은 이미 건물 설계와 인테리어까지 끝내고 있었다.


'보통 시골땅 사려면 임장만 해도 1년 가까이를 다닌다는데, 첫 임장에 벌써 인연을 만나다니!'


아무것도 모르는 초보 임장자의 완벽한 김칫국 드링킹이었다.





관련영상 | Youtube [영월부부] 시골 토지 매매를 위해 30대 신혼부부가 생각해 본 5가지 기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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