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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들국화 Jan 28. 2023

영화 <멋진 세계>

멋진 세계로 편입하기 위한 한 사내의 분투기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진부한 제목이라 생각했다. 영화를 보기 전 일별한 줄거리에서 받은 인상도 새로울 게 없었다. 다 보고 나서야 반어적인 제목이라는 걸 알았다.


우리나라로 치면 안성기쯤 되는 일본의 유명 배우 야쿠쇼 코지의 주름지고 마른 얼굴이 크게 들어왔다.

13년의 수감생활을 마치고 세상에 나온 중년의 사내, 미카미 역에 충실한 얼굴이었다. 나이 든 그의 얼굴에 내 얼굴이 얹혔다. 삶은 별거 아니다. 태어나서 늙어가는 일일 뿐. 그 과정이 어떤가 하는 데는 운(運)이라는 것이 많은 부분을 차지한다. 그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는 사생아로 태어나 유년기에 친모로부터 버림받았다. 그의 머릿속에는 친모와 마지막 헤어질 때의 장면이 인장처럼 새겨져 있다. 미카미는 엄마가 사정이 있어 자신을 보육원에 잠시 맡겼을 뿐이라고, 그리고 사정이 있어 데리러 오는 때를 놓쳤을 뿐이라고, 한순간도 아들을 잊지 않았을 뿐 아니라 지금도 찾고 있을 거라고 믿는다. 아니, 믿고 싶다. 그 생각을 너무 오래 쌓아 올린 나머지, 시간이 지날수록 확신이 되었다. 스스로가 짓고 쌓은 확신이었다.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을 평생 놓지 못한 그는 어릴 때부터 소년원을 들락거리다가 결국 야쿠자 조직원이 되었고 그의 이름 뒤에 수많은 전과 기록이 달렸다. 마지막 죄명은 살인죄였다. 그는 억울했다. 아내와 자신을 지키기 위한 정당방위에 가까운 행위였으나 그렇게 보기에는 흉기를 과도하게 휘둘렀다는 게 문제였다. 미카미에게는 본성인지 성장 과정의 문제인지 모르나 분노조절 장애가 있었다.

불공평한 신은 그에게 애초에 너무 적은 양의 운을 주었다.



눈 쌓인 감옥 밖, 싸한 공기가 그를 에워쌌다. 그에게는 특유의 씩씩하고 긍정적인 에너지가 있었는데, 교도관들의 배웅을 받으며 버스에 올랐을 때도 그 에너지 때문인지 덜 위태로워 보였다. 그러나 세상은 결코 만만하지 않다.

이제 만만치 않은 세상에서 고난도의 적응기가 펼쳐지겠군, 하고 생각하는 한편으로 그가 가진 특유의 에너지를 믿고 싶어졌다.     


일본의 복지제도는 우리와 비슷해 보인다. 그는 수급 대상자가 되었고, 담당 사회복지사가 정기적으로 방문해서 그의 생활을 살피고 취업 등에 관한 조언을 해준다. 그러나 그는 국가의 지원을 받고 싶지 않다. 소득이 생겨 지원 조건에서 탈락하는 일이 있더라도, 정직하게 일을 해서 돈을 벌고 싶다. 그의 생활 태도에는 십수 년간 교도소 생활에서 비롯된 절도가 배어 있다. 정리 정돈하는 습관이 몸에 어서 방은 항상 정갈하다. 커튼도 손수 만들어 단다. 교도소에서 배운 재봉, 목공 같은 기능이 있으나 그걸 수단으로 돈을 버는 길은 쉽게 주어지지 않는다. 탐색 끝에 마음에 드는 일을 찾았다. 화물차 운전이나 배송 기사 일이다. 그러나 운전면허는 정지된 지 오래고 새로 면허를 취득하기 위해서는 그가 감당하기에 벅찬 비용이 든다. 절박해진 그는 서랍을 뒤져 수급에 관한 안내서를 찾는다. 직업을 얻기 위한 자격증 취득에 한해서 지원을 해준다는 조항을 발견하고 사회복지사에게 달려가지만, 문서 조항과 현실은 별개이다.      



그러나 만만찮은 현실과 직면하는 사이사이 선의를 가진 사람들이 다가온다. 일본 사회도 우리만큼 각박한 면이 있다. 복지 혜택을 받는 서민들을 향한 못마땅한 시선, 그와 같은 전과자나 장애인을 향한 편견과 적의가 공기처럼 만연해 있다. 그러나 한편에선 미카미를 한 인간으로 존중하고 기꺼이 도움을 주는 이들도 있다. 다행스러운 일이다. 그런 풍경만으로 세상은 살 만한 곳으로 보인다. 그의 신원보증인이 되어 준 부부가 있고, 한때 그를 도둑으로 의심했지만 그의 정직성을 알아보고 도움을 주는 마트 사장이 있고, 그의 극적인 삶을 이용한 다큐를 만들어 사회적, 경제적 이득을 볼 생각으로 접근했으나 어느새 누구보다 그를 깊이 이해하게 된 소설가 츠노다가 있다.


앞서 말했듯이 미카미에게는 불뚝 성질이 있다. 츠노다는 미카미가 분노조절 장애를 갖고 있음을 일찌감치 알아차리고, 그것이 유년기 부모의 학대의 결과일 수 있음을 그에게 말한다. 미카미는 받아들일 수 없다. 그의 어머니는 마땅히 자신을 사랑해야 했으므로. 그거 하나를 붙잡고 힘들고 외로운 세상을 살아왔으니까. 그걸 부정하라는 건 그에게 너무 잔인한 일이었다.

다만 그의 분노는 마땅히 향해야 하는 곳을 향했다. 간간이 뉴스로 접하는 묻지 마 사건처럼 약한 자가 더 약한 자들을 가해하는 형태가 아니다. 그와 반대로 미카미는 약한 이를 괴롭히는 사람을 보면 참지 못하고 분노를 분출하고 마구잡이로 폭력을 행사하곤 했다.     



미카미의 생의 마지막은 코스모스 향기와 함께였다. 그의 일터인 요양 시설에서 가장 친하게 지냈던 발달장애인 동료가 건넨 코스모스였다. 태풍 예보가 있던 밤, 거센 바람을 온몸으로 맞으며 그에게 주기 위해 따로 갈무리했던 꽃다발이다. (미카미가 근무했던 요양 시설은 사회적 약자들을 적극적으로 채용하는 곳이었다. 사회적 기업이나 공공시설일 수도 있고, 국가의 지원을 노린 채용일 수도 있다.) 코를 스치는 코스모스 향처럼 그의 마지막만은 자신을 아끼는 사람들을 떠올리며 행복했을 거라고 믿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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