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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들국화 Apr 29. 2023

오토라는 남자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영화를 다 보고 나서야 이 영화가 스웨덴 영화 <오베라는 남자>의 리메이크라는 걸 알았다. <오베라는 남자>는 몇 년 전 베스트셀러 코너를 화려하게 장식했던 동명의 소설(프레드릭 배크만 저)을 영화화한 것이다.

소설 내용을 비교적 충실하게 옮겨놓은 영화 <오베라는 남자>에 비해, <오토라는 남자>는 큰 줄거리는 가져오면서도 다분히 미국스러운 데가 있었다. 할리우드 영화의 짜 맞춘 듯한 기승전결에다가 휴머니즘을 내세우고 있다는 점이 그런 인상을 주었다.

머리로는 그런 것들을 판단하면서 다른 한편으로 가슴 한쪽이 뜨듯해져 오는 걸 막지 못했다. 자, 감동을 받아봐,라고 외쳐대는 영화는 뻔하지만, 뻔하게도 나는 감동을 받고 있었다. 

    



까칠한 노년의 남자가 있다. 오토(톰 행크스)라는 이름을 가진 그는 40년 동안 일한 회사에서 밀려나듯 막 퇴직한 참이다. 그는 결혼한 이래로 오래 살아온 동네에 대한 애정이 크다. 주택 단지에 가끔씩 출몰하는 부동산 회사 차량이 보일 때마다 오토가 특히 분노하는 이유이다. 부동산 회사에서 나온 사람들은 그 오래된 단지의 주택을 헐값에 사들여 개발할 불순한 의도로 주변을 탐색한다. 

이상한 건 그가 아무리 까칠하게 굴어도 이웃 사람들이 그를 싫어하지 않는 눈치라는 것. 반려견을 데리고 다니는 끝 집 여자를 제외하고. 그에게 뭔가 특별한 게 있겠군, 생각하게 하는 지점이다.     


오토는 몇 차례에 걸쳐 자살 시도를 하고 매번 실패한다. 그때마다 방해꾼이 나타났기 때문이다.

그는 혼자 살지만, 특별히 외롭거나 우울해 보이지 않는다. 항상 짜증이 나 있다는 것 외에 다른 표정이 없다. 자기만의 원칙을 가지고 매일의 루틴을 과업처럼 진지하게 수행하는 그의 하루는 이른 아침 주택 단지를 순찰하는 일로 시작된다. 자신이 세운 원칙을 어기는 사람에게는 잔소리를 퍼부으며 참견한다. 그는 프로불평러다. 모든 게 마음에 들지 않는다. 쓰레기 분리배출을 제대로 안 하는 주민들이 불만이고, 함부로 드나드는 외부인과 외부 차량도 불만이다. 주차 구역이 아닌 곳에 주차하거나, 단지 내 주행 금지 팻말을 보고도 무시하는 외부 차량을 단속하느라 바쁘다. 참견도, 잔소리도 삶의 의욕이 있을 때 하는 건데. 그는 꼭 처리해야 할 다른 일들을 수행하듯 자살을 결행한다. 그에게 삶에 대한 회한이나 미련은 한 톨도 없어 보인다.      


그가 어떤 계기를 만나 변화해 가리라는 예상은 영화 초반부터 가능한 것이었다. 그리고 이야기가 전개됨에 따라 그가 까칠한 사람이 될 수밖에 없었던 과거가 하나씩 드러날 것이었다. 그런 걸 짐작하면서도 나는 이상하게 영화에 빠져들고 있었다.     



의도치 않게 그의 자살 시도를 막은 사람은 마리솔(마리아나 트레비노)이다. 오토의 앞집에 이사 온 마리솔 가족은 멕시코 출신 이민자이다. 마리솔과 그녀의 가족들은 타인에 대한 경계라는 걸 모르는 사람들이다. 심성이 착하고 생활 면에서 무능해 보이나 사실은 유능한 IT업계 종사자인 마리솔의 남편, 귀여운 딸 둘과 뱃속의 아들까지 참 보기 좋은 가족이다. 밝은 에너지를 사방에 분출하는 마리솔은 오토의 삶에 거침없이 발을 들여놓는다. 관계 맺는 데 서툰 오토는 혼자가 편한데, 자꾸 경계를 침범하는 마리솔 가족과 이웃들이 성가시다. 유독 오토 주변만을 맴도는 길고양이도 그가 계획하는 일에 방해만 될 뿐이어서 외면한다. 마리솔은 그의 비밀스러운 계획을 알기라도 하는 듯 끊임없이 무언가를 부탁해 온다. 오토는 툴툴거리면서도 결국 마리솔의 부탁을 들어주고 고양이를 집안으로 들인다. 

오토의 선행은 거기서 그치지 않는다. 기차선로에 떨어진 사람을 구해주는가 하면, 아내의 제자였던 말콤을 거두어들이고 애지중지하던 자동차를 선물한다. 그리고 과거의 절친이자 오랜 이웃인 루네를 요양원으로 보내려는 부동산 회사 사람들의 계획을 이웃 사람들과 함께 보기 좋게 좌절시킨다.     


예상대로 영화가 진행됨에 따라 오토의 과거 퍼즐은 점점 형태를 갖추어 간다. 그가 자살하려고 했던 이유도 드러난다. 그와 동시에 마리솔을 비롯한 이웃이 그를 어떻게 변화시켜 가는지도 그려진다.

감동을 주는 스토리의 중심에는 사람이 있다. 마리솔은 까칠한 오토를 처음 대면했을 때부터 그를 알아봤는지 모른다. 퉁명스러운 표정과 말투 너머에 있는 따뜻한 심성을.      


영화 속 인물들의 면면을 살펴보면 유의미한 것을 발견할 수 있다. 

주인공 오토는 급변하는 사회에서 쓸모없어진 구식 노인이다. 영어 발음이 서툰 마리솔의 가족은 이민자이다. 부모에게서 쫓겨난 성전환자 말콤, 먹는 걸 좋아하고 집안에서만 지내던 지미(그는 걷기 운동을 시작했는데 오토가 퉁명스럽게 대하든 말든 밝게 인사 건네는 걸 잊지 않는다. ) 사고로 신체장애를 갖게 된 소냐, 뇌졸중과 파킨슨병을 앓는 루네와 아니타, 그리고 공격받아 상처 입고 눈 속에서 얼어 죽을 뻔한 길고양이까지, 어떻게 보면 모두 사회의 소수자들이다. 

늙지 않는 사람은 없다. 누구든 언제 병들거나 불의의 사고를 당할지 모른다. 알고 보면 우리 모두가 어떤 면에서는 소수자이거나 앞으로 소수자가 될 사람들이다. 

이 영화에서는 다양한 처지에 있는 사람들이 서로 도움을 주고받으며 사람 사는 풍경을 연출한다.



오토는 일찍 부모를 여의고 만만치 않은 젊은 시기를 보내던 중 한 줄기 빛처럼 나타난 소냐를 만나 결혼한다. 사고 이후 사람들을 믿지 않는 괴팍한 사람이 되었지만, 소냐와 함께 하는 동안 나름대로 행복한 삶을 살았다. 소냐가 세상을 떠나고 그녀를 따라 삶을 끝내려고 마음먹는 순간, 인생의 또 다른 국면이 그의 앞에 펼쳐진다. 인간은 타인에게 기대 살 수밖에 없다. 나와 다르면서도 닮은 존재인 타인과의 만남은 그 자체로 이미 기적인지도 모른다.     

그가 처음 본 순간 사랑에 빠진 소냐는 그들의 첫아이를 임신한 몸으로 교통사고를 당해 아이를 잃고 하반신 마비가 되었다. 버스회사의 과실이 확실했는데 제대로 된 법적인 처벌을 받지 않았다. 소냐는 절망에 빠지지 않았고 몸이 불편하다는 걸 빼면 너무도 평범한 삶을 오토와 함께 했다. 소냐는 오토의 반대편에 있는 사람이었다. 매사를 긍정적인 시선으로 보고 잘 웃는 사람이었다. 말이 많은 편이고 사람들과 동물을 좋아했다. 문제아 학급을 맡아 애정과 열정으로 학생들을 변화시킨 좋은 교사였다. 그녀는 오토가 불평을 늘어놓을 때마다 그를 설득하고 어떻게 행동하는 게 나은지 말해 주었다. 오토에게 둘도 없는 동반자이자 삶의 지주였던 소냐는 6개월 전 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평생 일한 직장에서 잘리다시피 퇴직하고 아내도 없는 세상에 미련이 남아 있지 않아 몇 번씩이나 자살 시도를 했던 그였다. 오토는 결국 사랑하는 아내 곁으로 갔다. 자기 소유의 재산을 그동안 자신에게 고맙게 대해줬던 이웃들에게 나눠주고.      


그는 자살에 여러 번 실패했지만, 마지막에는 자신이 그렇게 원했던 죽음을 가장 자연스러운 방식으로 맞이한다. 그에게는 지병이 있었다. 자살 시도를 포기한 후 이웃들의 도움으로 가랑비에 옷 젖는 줄 모르게 본래의 심성을 찾은 오토. 그는 언제 찾아올지 모를 죽음에 대비해 모든 걸 준비해 놓은 상태였다. 

먼 친척보다 이웃사촌이 낫다는 말이 아니어도, 우리는 때로 주변의 타인들이 베푸는 따뜻한 친절과 위로를 선물처럼 받기도 한다. 오토는 2층 자기 침실에서 홀로 숨을 거두었으나 외롭지 않았다. 그의 마지막은 이웃들의 품에서 따뜻했다.      


사랑하는 아내를 잃고 부조리한 사회와 불화하며 남은 삶은 의미가 없다고 믿었던 자가, 자신의 삶에 틈입한 이웃에 의해 도움을 받고, 단단히 잠가 놓은 마음의 빗장을 푼다. 이웃들의 온기가 그의 삶에 서서히 스며든 것이다. 그 고마움의 표현으로 죽기 전에 자신이 가진 것을 이웃에게 베푼 오토. 그는 참으로 흡족한 삶을 살았다.     




사람들이 뻔한 감동에 설득되는 이유에 대해 생각해 본다.

클리셰로 범벅된 뻔한 이야기로 보인다고 할지라도, 나아가 말도 안 되는 이야기라 할지라도, 영화라는 가상의 세계 속에서 디테일과 개연성만 갖추어지면 관객은 감동할 준비가 되어 있다. 사람들은 내심 마리솔이나 소냐 같은 사람을 원하고, 상처받은 사람들과 연대하기를 원한다. 현실에서 그렇게 하지 못하니까 영화나 드라마나 소설에서 그런 이야기가 나올 때 쉽게 빠져든다. 인간을 좋게 만드는 서사가 있었으면 하고 바라는 마음이, 뻔하지만 잘 만들어진 콘텐츠에 감동하게 만드는 게 아닐까.         




* 덧붙여...

<오토라는 남자>의 주인공 오토는,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감독하고 열연했던, 나의 인생 영화 <그랜 토리노>의 주인공 월트 코왈스키를 떠올리게 한다. 두 영화 모두 완고한 노년의 주인공이 삶의 막바지에 이르러 이웃에 의해 마음을 열고 변화되는 이야기로, 주인공들은 주변에 선한 영향력을 미치고 떠난다. 할리우드를 대표하는 노련한 두 배우가 마침맞은 배역을 맡아 잊지 못할 연기를 선보인 영화였다. 두 배우 모두 해당 영화 제작에 참여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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