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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섬 Jul 08. 2015

고독의 발명

동네책다방


꽤 오래전에 이발소 주인이 내게 
"머리카락에 딱히 흥미가 있는 것은 아니라네"라고 말한 적이 있다.
가위로 손님의 머리카락을 자를 뿐이지. 
아침에 가게 문을 열고 밤에 문을 닫을 때까지 
쉬지 않고 싹둑싹둑 가위질을 하는 거야. 
손님의 머리가 말쑥해지는 걸 보면 물론 기분이야 좋아지지만, 
딱히 머리카락을 만지는 게 좋아서 하는 일은 아니라는 소리네."
그는 그날로부터 닷새 뒤에 노상강도에게 배를 찔려 죽고 말았는데, 
물론 그런 말을 할 때만 해도 그는 자신의 죽음을 짐작조차 하지 못했을 터라 
목소리는 쾌활하고 생동적이었다.
"그런데 왜 이발소를 하는 거지?" 하고 되묻자, 
그는 쓴웃음을 지으며 이렇게 대답했다.
 "일이니까."
 그 대답이야말로 나의 생각과,
좀 거창하게 말하자면 나의 철학과 매우 일치한다.

<사신 치바> , 이사카 코타로

카페를 운영한다. 벌써 7년째, 북카페로는 5년이 넘었다. 

손님들로 북적이는 때도 있지만 대부분은 한적한 편으로,

적자는 아니니 다행이다 생각하며 버텨온 게 

벌써 이만큼 시간이 흘렀다. 


<사신 치바>의 첫 문단이 꽤나 마음에 들었다. 

이발사의 대답이 나의 생각과도 일치하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정말 그런지, 스스로에게 물어보았다. 

왜 카페를 하는 거지? 


일이니까. 


대답은 다르지 않았다. 

그 대답은 묘한 기운을 품고 있었다.

하루하루 성실히 일해가는 생활인으로서 묵묵한 사명감을 떠올리게 하는 한편

중요한 걸 잃어버렸다는 느낌도 들게 했다.

무언가 이룬 사람들은 한결같이 일을 즐거워하고 사랑하는 밝은 모습들인데

어쩌면, 나는 무언가, 크게 잘못된 게 아닐까, 불안감이 들기도 했다.  


한번 질문을 던지고 나자

나는 쉴세 없이 그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지고 있었다.

좋은 결론이 나기도 했다가, 나쁜 생각에 사로잡히기도 했고,

결국 무엇이 옳고 그른지 모르는 혼돈에 빠져들곤 했다.


그러다 문득 ,

이제 그만둘 때가 되었구나 그런 느낌이 왔다. 


가게를 정리했다. 

내게 남은 건 보증금과 두 마리의 고양이, 

산더미 같은 책이 전부였다.

많은 이들이 저 책 다  읽으셨어요?라는 질문을 던졌고,

망하고 나면 읽으려고 지금 열심히 모으고 있어요

그런 시답잖은 농담으로 툭툭 답하곤 했었다.

이제 읽을 때가 됐네, 

무겁기만 한 책더미 앞에서 나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강섬이란 이름으로 글도 쓰고, 

그동안 모아 온 책들도 읽는 시간을 오래도록 가지자 마음을 먹었지만

너무 오래 쉬지 않고 일을 해 왔기 때문인지 

일을 하지 않는 날들은 어쩐지 위태로운 느낌이었다.


집에서 책을 펼쳐도 한 시간쯤 지나면 알지 못할 불안감이 들었고,

글을 쓰려해도 텅 빈 화면 앞에서 우물쭈물하다 다시 책을 펼쳐 들곤 했다. 

불안한 마음을 진정시키고자 동네를 휘이휘이 걸어 다니다가

'임대 중'이라 써붙인 공간을 만났다.


작은 가게였다.

조용한 골목들 안쪽에 있어서 잘 눈에 띄지 않았으며,

전면 창으로는 거리에 심어져 있는 나무의 살랑거리는 잎들이 보였다.

무엇보다 월세가 저렴해 마음에 들었다.

혼자서 부담 갖지 않고 천천히 꾸려갈 수 있을 정도의 금액이었다.

월세에 늘 허덕이며 지내왔기 때문인지 

월세 걱정을 던 것만으로도 충분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쌓아둔 책을 읽고 글을 쓰고 조금씩 무언가를 만드는,

그런 시간을 보내기에 좋은 공간이란 느낌에 사로잡혔다.


결국 계약을 하고 다시 자영업자의 세계에 발을 들이밀고 말았다.  

열쇠로 문을 열고 텅 빈 공간 앞에 서자 어쩐지 가슴이 두근거렸다.

이 일이 이렇게 즐거운 것이었구나 

막막하지만 무언가 내 마음대로 만든다는 게 즐거운 일이라는 걸 

오래도록 잊고 있었다.

그 순간을 남기고 싶어 문 옆 선반에 자그맣게 글자를 새겨놓았다.

'두근두근 내 인생 2016.7.7'


이번에는 절대 자신을 지치게 만들지 말자 결심한 나는

소박하게 꾸미기로 결심했다.

쨍한 파란색으로 벽을 칠하고는

1인 테이블 4개와 2인 테이블 두 개를 들여놓았다.

주방과 가까운 1인 테이블 하나는 내 테이블이라고 미리 찜해두었다. 


메뉴도 간단하게 짜넣었고, 가능하면 계절별로 조금씩 바꿀 계획이었다.

작지만 조용한 공간으로 만들 생각에 

곳곳에 '다른 이의 고독을  존중해주세요'라는 문구를 붙여두었고,

음악 선곡은 예전 가게에서 쓰던 잔잔한 목록들로 가져다두었다.


한쪽 벽은 원목으로 책장을 크게 만들어 넣었다. 

책들은 읽은 책들만 들여놓을 것이고,

그중에서도 꼭 함께 읽었으면 좋을 책들만 놓을 생각이었으므로

아주 천천히 한 권씩 꽂아 넣을 계획이었다.

 

마지막으로 이 공간의 실질적인 주인장이라고 할

'오스터'와 '하루키' 두 마리 고양이가 들어섰다. 

길에서 태어나 새끼 때부터 책다방에서 살아온 녀석들은

그동안 지내던 곳에서 갑자기 좁은 집에 머물게 된 것 때문에

곧잘 투덜거리곤 했는데,

새로운 공간은 마음에 드는지 한동안 여기저기 킁킁거리며 탐색을 하다

마음에 드는 자리를 각자 찾아내고는 책을 펴들고 읽기 시작했다.

믿지 않겠지만, 읽은 책들 중 함께 읽고 싶은 책들만 꽂아두자는 건 

두 고양이의 조언이었다.

책다방에서 어릴 때부터 지내다 보니 어느 정도 크면서부터

두 마리 모두 자연스럽게 책을 읽기 시작했다.

실상 그 많은 책들은 저 두 마리를 위해서 사들이고 있었는지도 모를 만큼

두 고양이의 일상은 잠을 자거나 책을 읽거나 털을 손질하는 게 대부분이었다. 

나보다 훨씬 책을 많은 읽는 녀석들의 주특기는 잔소리라고나 할까.

'소크라테스의 변명'같은 책은 슬그머니 구석에 숨겨두었다.

소크라테스 화술까지 배운다면 그야말로 곤란하다 싶었는데

얼마전 '신해철의 쾌변독설'을 읽고있기에 어쩐지 식은땀이 흘렀다.


기본적인 것들로만 채워놓는데 한 달여가 걸렸다.

여백이 많은 이 공간에서 

나머지는 이곳을 찾는 사람들이 채워줄 것이고

아마도 나는 그런 이야기들이나 써볼 계획이다.  

아무도 오지 않는다면 고양이들과의 수다나 써보지, 뭐.


그렇게 나는 다시 새로운 공간의 주인장이 되었다. 

오늘은 문을 여는 첫 날,

조용하고 천천히 흘러가는 공간의 문을 열고

작은 나무판에 쓴 간판을 입구 옆에 세워두었다.


고독의 발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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