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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섬 Aug 23. 2015

하루에 한 문장 길어올리기

폴 오스터 <빵굽는 타자기>

인터뷰가 끝날 때면 늘 이런 질문이 따라왔다.

주인장이 앞으로 꿈꾸는 게 있다면요.

그놈의 꿈타령,

속으로 궁시렁거리면서도 뭐라도 대답은 해야 하니

늘 이런 대답으로 얼버무리곤 했다.


그저 '망하지 말자' 그게 가장 큰 꿈입니다.


인터뷰가 끝난 후 나중에 생각해보면 그건 정말이지

주인장으로서는 아주 큰 꿈이 아닐 수 없군,

하지만 내 노력으로 가능한 것도 아니지 

그런 생각으로 씁쓰레한 웃음을 짓곤 했다.


그럼 내 힘으로 할 수 있는, 

스스로 바라고 있는 건 뭘까,

그런 질문을 던져놓고 한참을 생각해보곤 했는데,

여러 가지가 떠올랐지만

그 무엇도 답은 아니었다.


글 쓰고자 하는 의욕이 완전히 사라진 시간을 보내다가

오랜만에 의욕을 살려볼 요령으로

애정 하던 폴 오스터의 <빵굽는 타자기>를 꺼내 들었다.

그러다 마주친 문장에서 

나는 내가 바라고 있던 것이 무엇인지를 깨달았다.


나는 벌컥벌컥 술잔을 비우듯 엄청나게 많은 책을 읽어 냈고,
책의 나라와 대륙을 모조리 섭렵했으며,
아무리 읽어도 늘 책에 허기져 있었다.
엘리자베스 시대의 극작가들, 소크라테스 이전의 철학자들,
러시아 소설가들, 초현실주의 시인들.

나는 두뇌에 불이라도 붙은 듯,
책을 읽지 않으면 목숨이 꺼지기라도 할 듯,
필사적으로 책을 읽었다.
한 작품은 다음 작품으로 이어졌고,
하나의 사상은 다른 사상으로 이어졌고,
세상사에 대한 생각은 다달이 바뀌었다. 


수많은 책에 둘러싸여있는 내게

정작 가장 부족한 것은 읽는 시간이었다.


읽는 인간이 되고 싶습니다.

그 문장을 중얼거렸을 때 비로소

내가 바라는 것이 무엇인지 확실해진 느낌이었다.


쓰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자연스럽게 이런 문장을 이어 중얼거렸다.

그렇습니다.

나는 읽고 쓰는 인간이 되고 싶습니다.

의사나 정치가가 되는 것은 하나의 진로결정 이지만,
작가가 되는 것은 다르다.
그것은 선택하는 것이기 보다  선택되는 것이다.
글 쓰는 것 말고는 어떤 일도 자기한테 어울리지 않는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면,
평생 동안 멀고도 험한 길을 걸어갈 각오를 해야 한다


브런치 작가 신청이 받아들여졌을 때 기뻐하며 

매주 한편의 이야기를 써내 보겠다는 결심을 했었다.

한 편의 글을 써 보고 난 뒤 알게 된 것은

완성된 한 편의 글이란 말이 주는 중압감과

내겐 아직 그럴 능력이 없다는 자괴감이었다.

그건 글에 대한 의욕마저 송두리째 앗아가 버려

한동안 아무것도 쓰지 않는 인간으로 살고 있었다.


가게가 유산처럼 남긴 수많은 책을

필사적으로 읽고 싶다.

읽는 동안 나라는 인간은 어떻게 바뀔지

심지어 아무것도 바뀌지 않을 수도 있지만

적어도 하루에 한 문장 정도는 내게 다가와줄 것이다.

그날 내게 온 하나의 문장을 옮겨두기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라고 나는 쓴다.

이제 나는 한 발자국 다시 걷기 시작했을 따름이니까.


출발선이 어디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어쨌거나 어딘가에서는 출발해야 한다.
원하는 만큼 빠르게 전진하지는 못했을지 모르나,
그래도 나는 조금씩 전진하고 있었다.
두 발을 딛고 일어나 원하는 만큼 빠르게 전진하지는 못했을지 모르나,
그래도 나는 조금씩 전진하고 있었다.
두 발을 딛고 일어나 앞으로 나아가고 있었다.
비틀거리며 한 걸음씩 내딛고 있었지만, 
아직은 달리는 법을 알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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