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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꿈꾸는 고래 PD May 05. 2020

민주경찰 안병하
회사 인간에게 건네는 위로

5.18 발포명령을 거부한 안병하에게서 배우는 일의 기쁨과 슬픔 

다음 글은 

다큐멘터리 <민주경찰 안병하>

(2019 휴스턴 국제 영화제 

다큐부문 은상 수상) 제작 후기와


왜 안병하에 관한 증언록을 

쓰게 됐는지-에 대한 

기획 의도가 함께 수록돼 있습니다. 


심장이 뛴다. 몹시 불규칙적이다.

분침과 초침의 움직임에 반응하는 

속도가 빨라진다.

우울, 초조, 패배의 감정이 지배하고 

자존감이 낮아지면서 

공격적 분노가 표출된다.


토요일 밤부터 조짐을 보이더니 

일요일 저녁 6시 이후부턴 

걷잡을 수가 없다.     


직장인의 불치병, 월요병이라는 

무기력증을 앓은 지 올해로 15년.

안정적 직장이 제공하는 안락함과 

만족스러운 경제적 보상, 

나쁘지 않은 사회적 지위에 

늘 감사하지만 회사 밖 지옥이 

이보다 낫지 않을까 싶은 공황은 

때때로 찾아와 매일 매 순간 휴직과 

퇴사의 갈림길 위에 서게 한다. 

    


가장 견딜 수 없는 건, 

회사 인간으로 감내해야 할 

기계성이다. 개인의 소신과 철학을 

내려놓고 회사의 방침, 사용자의 

지시에 완벽하게 따르는 게

직장인의 최고 덕목이지만 

그게 잘 안됐다.   

 철이 덜 들어서, 뭘 몰라서 
    성격이 안 좋아서, 순진해서 
  

사람마다 다른 진단으로 

나를 어르고 달래고 가르쳤지만

회사의 이익이 공익과 배치된다는 

사실을 납득하기 어려웠다.

그런데 그 지시를 완벽히 거절할 

용기도 없었다. 

그렇다고 고분고분 따를 

자신도 없었다. 

둘의 간극 사이에서 방황하는 

우유부단한 직장인으로 살아갈 뿐.     


한편으론 압도적 실력으로 인정받아

높은 위치에 오르면 무언가를 바꿀 수 

있지 않을까 애써 현실을 긍정했고 

언젠가부터 일은 곧잘 한다는 말을 

듣게 됐다.      


하지만 그때부터 더 거절하기 힘들고 

강력한 지시들이 떨어졌다. 

그에 맞춰 물정 모르는 제안과 

타협안 제시가 빈번해졌고 

그로 인한 스트레스와 갈등도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커졌다.      


마흔에 들어서면서 이렇게 한두해 

지나면 이직,창업은 영영 어렵고 

정년퇴직이 더 합리적인 목표가 

되어 가겠단 위기의식을 느꼈다. 

더는 어정쩡한 태도로는 회사에 

버텨낼 수 없음을 깨닫게 됐다.      


이와 동시에 더 지체해선 

안 된다는 마음의 소리도 들렸다.


고민이 커질수록 

자주 떠오르는 얼굴들도 있었다.     

2018년도에 특집 다큐를 만들며 

깊이 알게 된  5.18 당시 발포 

명령을 거부한 고 안병하 치안감도 

그중 한 사람이다.               


직장인의 관점에서 살펴보면

안병하 국장은 어려운 가정 형편속에

자수성가해 경찰 고위직에 오른 

입지전적 인물이다. 


군에서 경찰로 이직에 성공한 그는 

섬세하고 온화한 리더십으로 동료와 

부하들에게 평판도 좋고 

훈장을 두 차례나 받은 고성과자였다. 


육사 8기 출신이란 타이틀은 

조직의 최고 자리를 노려볼만한 

강력한 배경이 되었다.


하지만, 

안병하는 서슬 퍼런 최고 권력자의 

발포 명령에 작업 거부권을 행사했다.


물론 공직자에겐 헌법상 공무담임권과 

부속 법률에 따라 불법적 지시를 

거부할 수 있지만

상명하복이 기본인 경찰 조직에선 

상상하기 힘든 大사건이었다.   


사건의 여파는 컸다. 

공익제보자로 찍혀 막대한 인사상 

불이익을 받고 해직당했고 

고문 후유증에 시달리다가 

합병증으로 사망했다. 


명백한 산재였고 

부당해고였지만 국가 유공자로 

지정되고 현충원에 안장된 건 

돌아가신 지 17년만인 

지난 2005년이었다.     

 


그 사이 가족들은 뿔뿔이 

흩어졌고 부인은 반지하 전세에 

살고 있다. 


강제 해직은 인정했으면서도 

정년까지의 기대 임금과 퇴직금은 

받지 못했지만 


5.18 보상금과 국가 유공자 연금을 

이중으로 받았단 이유로 

가압류 통지를 받았다. 


전재산 29만원인 전두환이

눈가리고 아웅하며 법망을 피해

호사를 누리며 사는 걸 생각하면

복창터질 일이다. 


이렇듯 조직의 뜻을 거스르는 

공익적, 윤리적 실천의 결말은 

대체로 비극적이다.   

  

심지어 안병하 국장의 숭고한 

희생으로 조직이 바뀌었다면 

좋았겠지만 그렇지도 못했다. 


안병하 국장과 뜻을 같이한 

이들은 인사상 불이익을 받았고 


80년대부터 2016년까지 

수많은 시민들이 경찰의 폭력적인 

진압에 피를 흘리고 

목숨을 잃었다.     


반면 안병하 국장의 경쟁자였던 

당시 서울시경국장은 신군부의 뜻에 

맞춰 5.18 간첩 사건을 조작했고


안병하 국장이 발포 명령을 

거부한 죄로 보안사에 압송된 

5월 26일 치안본부장에 올랐다. 


이후 서울시장과 올림픽 조직위 

부위원장을 맡으며 승승장구했다.     


어느 전도유망했던 한 고위 공직자의 

양심적 명령 거부와 공익제보를 통해 

직장인들은 어떤 교훈을 

얻을 수 있을까. 


상급자의 지시에 절대적으로 순응하는 

직장인의 숙명을 거부하면 안 된다는 

조금 비겁하지만 

어쩌면 당연한 깨달음일까. 


아니면 나는 승진하더라도 

부당한 명령에는 절대로 따르지 

않겠다는 조금 무모하지만 

어쩌면 실천하기 어려운 

결연한 다짐일까. 


아니면 직장인이라면 

한 번쯤 느꼈을 답답함과 

퇴사 욕구의 기저에 

인간답게 살고 싶다는 

최소한의 열망이 있었음을 

이해하는 계기가 될 것인가.

그 모두가 의미 있는 일일 것이다.


하지만 

그보다 더 관심가져야 하는 건 

한국 사회의 부조리와 

특히 직장에서의 병폐가 

부당한 명령을 거부하는 것이

원천적으로 불가능한 구조에서 

비롯됐음을 이해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무엇이 문제인지 아는 것으로도 

이미 문제 해결의 공감대는 

형성된 게 아닐까.          


나는 이 연재물을 통해 

사회적 가면을 써야 버텨낼 수 

있는 다수의 회사 인간들에게 

안병하 국장이라는 문제적 

인물의 진면목에 대해 

소개하고자 한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한 인간이자, 직장인으로서의 

안병하는 충분히  훌륭하고, 

충분히 따듯한 좋은 사람이었다. 


그에 대한 직장 동료, 후배, 

그리고 가족, 제3자인 전문가들의 

생생한 증언을 통해 우리 사회와 

회사에 필요한 리더의 모습을 

그려보거나 

발견할 수 있을 것으로 믿는다. 


더 나아가, 우리가 어떻게 살 것인가 

마음 깊이 숨겨둔 질문을 

자신에게 던져볼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해본다. 


설령 그가 경찰 영웅으로 

명예회복이 되지 않았더라도 

그는 참 멋진 삶을 살다가 갔다. 


특히 온화하고 소명의식이 강했던 

그의 성품은 악의 평범성을 거부한 

다수의 인물들이 보이는 전형성 

그러니까 카리스마있는 

다혈질 쎈캐가 아니었다는 점에서

 더욱 신선했다. 


임종 전까지 비망록을 남기고 

광주 사람들이 폭도가 아니었다고 

당당히 인터뷰한 그를 보면서 


굳이 부와 명예가 아니어도 

괜찮구나-라는 용기와 깨달음을 

얻었다.  


또 남편, 아버지를 자랑스러워하는 

가족들의 말씀은 위로로 다가왔다.


아무쪼록 이 글을 읽는 이들이 

안병하 국장을 알아가면서 

다시 일어설 용기, 더 잘 싸우고 

잘 이겨낼 힘을 얻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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