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차선의 작은 길과 8차선의 큰길이 합류하는 곳이 있다. 이 두 길은 합쳐져 10차선의 대로가 된다. 합류하기 직전에 두 개의 횡단보도가 있는데 나는 이 길을 매일 한두 번은 이용한다.
오늘도 나는 작은 길의 횡단보도를 건넜고 이어 큰길의 횡단보도도 건넜다. 잘 모르던 시절에는 작은 길을 건너면서 큰길의 횡단보도가 초록색인 걸 보고 뛰어갔더랬다. 그러나, 큰길의 횡단보도가 끊길까 시간이 모자랄까 열심히 뛰어서 건너도 큰길의 횡단보도는 한참은 더 있다가 빨간색으로 바뀌곤 했다.
‘아하! 작은 길의 횡단보도가 초록색으로 바뀔 때 큰길의 횡단보도도 초록색으로 바뀌는데, 큰길의 횡단보도는 초록색의 시간이 훨씬 길게 세팅되어 있구나!’
그리하여 이제는 작은 길을 건널 때 큰길의 횡단보도가 동시에 초록불로 바뀌어도 천천히 걸어간다. 으레 누군가는 내 옆을 지나 열심히 뛰어간다. ‘천천히 가셔도 됩니다, 이렇게 걸어가도 큰길을 건너고 시간이 남아요.’라고 말해 주고프다. 아는 자의 여유랄까.
돌아오는 길은 반대이거나 랜덤이다. 큰길의 초록불과 작은 길의 초록불이 동시에 켜지더라도 큰길을 다 건너고 나면 작은 길은 빨간불로 바뀌어져 있다. 혹은 큰길의 색과 관계없이 작은 길의 횡단보도는 빨간불이라 큰길을 건넌 후 기다리다 작은 길을 건너게 된다. 어떤 날은 큰길을 다 건너오면 작은 길도 초록불로 바뀌어 시간을 지체하지 않고 연속해서 건널 수 있다. 그러니까 작은 길에서 시작된 길 건너기는 큰길까지 한방으로 일사천리이지만, 큰길로부터 작은 길까지 건널 때는 뽑기를 하듯 랜덤인 셈이다.
오늘도 출근길에 작은 길과 큰길을 차례로 건너고 있었다. 큰길 쪽에서도 중년 부부가 건너오고 있었다. 좌우를 살피며 그렇게 여유롭게 큰길을 건너는데 중년 부인이 투덜거린다.
“아니, 이렇게 저쪽 횡단보도를 짧게 주면 어떡하라는 거야? 어떻게 한 번에 다 건너? 행정이 참!”
아주머니에게 원래 작은 길에서 큰길 쪽으로는 한 번에 건너는데 큰길에서 작은 길 쪽으로는 랜덤이라고 속으로 외치고 있었으나 들릴 리 만무하다. 그렇게 몇 번 길을 건너다보면 아주머니도 나처럼 깨닫지 않을까. 작은 길에서 큰길 쪽으로는 한 번에, 큰길에서 작은 길 쪽으로는 랜덤이라고.
오늘 일을 생각하다 ‘코끼리와 장님’ 이야기를 떠올리게 되었다. 전체를 보지 못하고 코끼리의 부분만 만져 본 장님들이 코끼리를 각자 다르게 묘사했다는 그 교훈 말이다. 우리는 종종 전체를 보지 못하고 부분만 보며 섣부른 결론에 도달하곤 한다.
교통체계는 나름의 빅데이터를 반영하여 선택되고 결정된다. 원활한 교통흐름, 보행자의 편리 등 여러 가지를 따져 시스템이 세팅된다. 우리는 그저 결정된 시스템에 의해 신호를 잘 지키며 길을 건너게 될 뿐.
과연 이곳의 횡단보도 시스템이 엉망일까. 작은 길에서 큰길 쪽으로 길을 건널 때는 지체 없이 건널 수 있어 참 편리하다. 큰길에서 작은 길로 건너갈 때도 작은 길의 횡단보도가 더 자주 초록불로 바뀌는 까닭에 조금의 기다림이 있을지언정 이내 건너곤 한다. 작은 길의 횡단보도가 더 자주 바뀐다는 사실을 아주머니는 알고 계셨을까.
오늘의 교훈이 아니더라도 자주 전체를 보지 못하고 일부만의 사실로 그릇된 선택을 하거나 섣부른 판단을 하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왜 지각했냐고 직원을 야단쳤는데 알고 보니 아파서 결근해도 될 정도인데 회사 걱정에 출근했다고 하여 오히려 무안했던 일, 왜 일을 이렇게 처리했냐고 핀잔을 줬다가 규정이 바뀌어 그렇게 처리한 것이 맞다고 하여 내가 말한 방법이 틀려 미안했던 일, 잠시 주차한 차량에게 빵빵거리며 차를 빨리 빼라고 했다가 알고 보니 차를 잠깐 세워도 법에 어긋나지 않는다 걸 알고 창피했던 일 등 그동안 짧은 지식으로 전체를 보지 못해 당황했던 일들이 떠오른다.
항상 전체를 보고 있지 못함을 유의하고 전체를 보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불평이나 불만을 말하기에 앞서 그 이면이나 이유, 전체를 들여다봐야 한다.
오늘도 혹여나 잘못 보고 잘못 판단한 것은 없는지 자신을 돌아본다. 무엇보다 본인의 정신 건강에 이로운 까닭이다. 세상만사 다 이유가 있는 것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