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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부코치 May 24. 2020

글 쓰는 사람이 되었다

재능일까 발견일까 노력일까

내가 3000자 원고지를 술술 채워 넣는 사람이 될 거라 상상이나 했을까. 수필을 쓰고 책을 내는 저자가 될 거라 꿈이나 꿨을까. 글쓰기에 너무 자신이 없던 과거의 내 모습이 아직도 생생하다.


ᆞᆞᆞ


나는 독서를 좋아하지 않았다. 대학을 와서도 마찬가지였는데, 강의 중 교수님의 말씀에 충격을 받을 정도였다.

"이 책이 너무 재미가 있는 거예요. 읽다 보니 어젯밤에 단숨에 다 읽어버렸어요. 적극 추천합니다."

대략 이런 내용이었는데,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아니, 어떻게 하룻밤만에 책 한 권을 다 읽는다는 거지? 뻥을 쳐도 너무 심하게 치는 거 아닌가?'

그러니까 내 사전에 책 한 권을 단숨에, 짧은 시간에 끝낸다는 프로토콜은 없었다. 책이란 나누어서 오랜 시간 동안 겨우 한 권 읽는다는 게 내 머릿속 정석이었던 것이다.

고3 때도 그랬다. 수시, 정시 등 대학 갈 방법은 다양했고 하나의 방안으로 담임은 나에게 논술을 준비해 보라고 했다. 책 읽기도 자신 없지만 글쓰기는 더더욱 자신이 없는 분야였다. 논술 모의고사를 학교에서 단체로 보자고 하여 반강제 다시피 고사장으로 들어갔는데, 제한시간 동안 1000자도 못 쓰고 얼굴이 벌게져 나온 기억이 있다. 아주 창피했다. 자존감도 떨어지고 글쓰기 자신감도 바닥을 향했던 추억 아닌 추억이다. 그 이후로 난 논술을 준비한 적이 없다. 특차라는 제도를 통해 대학을 가게 되었는데 그만큼 글쓰기와 책 읽기는 나에게 아픈 곳이요, 단점이자 숨기고픈 대화거리이기도 했다.


그런 내가 지금은 글을 쓰고 있다. 3000자 정도의 글은 마음먹고 써 내려가기 시작하면 30분 혹은 1시간 만에 끝을 내곤 한다. 무엇이 사람을 이렇게 변화시켰을까. 변한 걸까, 원래 가지고 있던 능력이 발현된 것일까. 노력일까, 발견일까. 오늘도 나는 글을 쓰고 있는 나를 찬찬히 들여다본다.


ᆞᆞᆞ


나의 첫 번째 책은 <고3 수능 100점 올리기>라는 수험생 대상의 동기부여 내지 자기 계발서였다. 고3 시절 성적을 극적으로 끌어올린 나의 이야기이기도 했고 나와 함께 공부했던 학생들의 이야기이기도 했다. 매년 나의 작은 학원에서는 수능 역전을 이룬 아이들이 탄생한다. 워낙에 공부를 안 했던 탓에 올라갈 성적이 많기도 했지만, 설사 그렇더라도 원점수 400점을 기준으로 100점가량을 끌어올린다는 것은 절대적인 노력 없이는 불가능한 이야기이기도 했다. 나와 우리 아이들이 어떻게 수능 역전에 성공했는지 이야기했고 출간 당시 반응은 꽤 좋았다.

그때도 참 신기했다. 내가 어떻게 책을 쓰게 되었을까. 어떻게 그렇게 능력이 발전하게 되었을까. 스스로에 대한 고찰을 했다. 좀 더 시간을 거슬러 가 본다면, 군생활이 나의 독서 생활에 터닝포인트를 제공한 것이 아닐까 깨닫게 된다.

공군 장교로 군생활을 한 나는 그곳에서 수많은 인재들을 만나게 되었다. 사관후보생 동기들도 훌륭했고 공군본부에서 만난 여러 리더들도 뛰어난 능력을 가진 인재들이었다. 그들의 해박한 지식의 원천이 독서라는 것은 두말할 필요가 없었다. 그동안 나는 얼마나 독서 없이 자유롭게 살았는지 반성 아닌 반성도 했다. 그리고 군 복무 기간을 사고 체계나 신념을 리빌딩하는 계기로 삼았다.

그렇게 독서량이 늘다 보니, 나도 모르는 사이 나 또한 책 한 권을 1~2시간이면 다 읽는 수준이 되었다. 그 날의 깨우침이 생생한데, 나는 용산역에서 계룡역으로 가는 기차를 타고 있었고 손에는 미래에셋 박현주 회장의 자서전이 쥐어져 있었다. 책을 재밌게 읽다 보니 용산에서 계룡까지 가는 1시간 좀 더 되는 시간에 책을 거의 다 읽게 되었는데, 그때 대학 교수님의 그 말씀이 불현듯 오버랩되었다.

'아, 나도 책 한 권을 단숨에 다 읽을 수 있구나!'


ᆞᆞᆞ


내가 못한다고 해서 세상의 모든 일이 뻥은 아닌 법이다. 세상은 나 중심으로 돌아가는 게 아닌데, 우리는 종종 세상의 중심이 나라고 착각하며 사는 경우가 많다. 책 읽기든 글쓰기든 평생 못하라는 법이 없는데, 나 스스로 자신을 폄하하고 옥죄며 선을 그어버렸던 것은 아닌지 반성을 하기도 했다.

종종 이런 한계의 돌파는 자신감을 주고 또 다른 도전을 심어준다. 글쓰기에 어느덧 취미가 붙다 보니 매일 글 하나씩은 쓰고 싶은 욕구 내지 재미가 생기게 되었다. 그리고 오늘도 이렇게 글을 쓰고 있다. 여기까지 쓰는데 얼마나 걸렸을까. 30분? 1시간?

1500자 논술 한 장도 못 채우던 내가 어떻게 글쓰기 능력을 키우게 되었는지 아직도 아리송하지만, 일단 시도해 보는 것, 될 때까지 써 보는 것, 부족해도 도전해 보는 것이 성취를 준다는 건 확실하다는 생각이 든다.

비가 오는 일요일 오전이다. 글쓰기 딱 좋은 날이다. 내일은 해가 뜨니 글쓰기 좋은 날이 될까. 글을 다 쓰고 나니 뭔가 모를 흐뭇함에 웃음이 번지며 오늘 하루도 시작하게 된다.

2020. 5.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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