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절에 관하여
예전에는 슬펐다. 나이가 든다는 생각에 늙기 싫다고, 싫다고 억울해한 적도 있었다.
그런데, 나이가 빨리 들었으면 좋겠다 생각한 때도 있었다. 10대 때도, 20대 때도, 30대 때도, 나이가 어느 정도 들어야 제대로 된 사회생활을 할 수 있다 여겼다.
그렇다. 사실 나이는 아무 관계가 없다. 사람이 성숙했느냐, 철학이 단단하냐, 지식이 쌓였느냐, 마음이 넓어졌느냐 등 나이가 들어감에 조금씩 늘기도 하겠지만, 어린 나이에도 굉장히 잘 갖춰진 사람들도 만나게 된다.
내면을 채우려고 하지 않고, 겉으로 나이만 들어간다고 되는 게 아닌데, 헛꿈을 꾼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근래는 나이가 들어간다는 게 이런 거구나를 실감하고 있다. 더욱이 몸이 아프니 저절로 체득되는 것들이 있다. 생생하던 젊은 시절에는 감히 생각지도 못했던 것들, 이를 테면 여유, 관조, 너그러움, 친절 따위의 미덕들이다.
나는 얼마나 친절한 사람이었던가.
20대 때는 줄곧 겸손을 강조했다. 가슴속에 품고 살기 위해 핸드폰을 사면 메인 화면에 'modesty'를 써놓고 살았다. 꽤 오랜 시간, 5-6년은 그렇게 살았던 것 같다. modesty라는 단어가 너무 내면에 집중되어 있고 스스로를 억누르는 것 같아, 언젠가는 '존경(respect)'를 미덕으로 추구하기도 했다.
그러다가 이제는 '친절'에 다다르게 되었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나는 친절한 사람이 아니었고 지금도 아니다. 강한 사람, 확실한 사람, 맺고 끊음이 명확한 사람, 믿고 맡길 수 있는 사람, 신용이 있는 사람이 될 수는 있을지언정, 포근하다던지, 푸근하다던지, 여유롭다던지, 너그럽다던지, 친절하다던지! 이런 평가와는 거리가 많이 먼 삶을 살았던 것 같다.
그런데, 왜 요즘은 친절을 떠올릴까. 친절이라는 미덕을 채우고 싶다. 친절하기 위한 넓은 마음, 내면의 여유, 수용성을 가지고 싶다. 내 마음속 정원이랄까. 나 혼자만이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함께 놀 수 있는 마음의 정원을 넓게 가지고 싶다.
어쩌다 한 번은 친절할 수 있어도 항상 친절하기는 쉽지 않다. 강하면서도 친절한 사람들. 이런 사람들이 위대한 리더들이라 생각을 한다.
(글을 쓰다 보니 이상해지는데) 꼭 내가 위대한 리더가 되고 싶다, 그런 건 아니다. 그 먼발치에서나마 쫓아가고 싶은 마음이다.
나이가 든다는 것. 슬프기도 하고 기분이 좋기도 하고, 남은 시간이 아쉬워 더 잘 살고 싶기도 한, 개운한 듯 개운하지 않은 주제이다. 그러니 나이가 들어가는 것에도 친절해질 필요가 있겠다.
세상에 관대하고 친절하다는 것은 곧 나에게 친절하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글을 쓰는 지금 이 순간! 그걸 깨닫게 되었다. 나는 그동안 나에게 얼마나 친절했던가.
나에게 친절한 사람이 상대에게도 친절할 수 있다는 지극히 단순한 명제를 하나 얻게 된다.
2020. 5. 25. 썩 기분 좋은 깨달음의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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