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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부코치 May 30. 2020

고기만두

병원에서 나와 약국을 들르고 떡을 사러 갈 참이었다. 엊그제 아버지가 사다 놓으신 인절미, 시루떡, 흑깨떡이 나쁘지 않았던 까닭이다. 아버지가 "떡 사놨으니 떡 가져다 먹어라." 할 때는 으레 대답하듯 "네"라고 했는데 막상 그 떡들을 봉지에 싸서 일하는 중에 먹으니 곧잘 넘어갔더랬다. 흑깨를 먼저 먹을까, 시루를 먼저 먹을까 고민까지 하면서 말이다.


그 떡집이 병원 건너 편에 있었다. 10차선 대로변 횡단보도를 건너면 바로 그 떡집이다. 떡집으로 가기 위해 신호를 기다리는데 "위~옹~위~옹~" 응급차가 들어온다. 응급차에게 길을 내어주기 위해 사람들이 비켜서는 사이 신호는 바뀌었고 한 무리의 사람들과 길을 건너갔다. 그런데 아까부터 모락모락 김을 내뿜으며 날 유혹하는 집이 있다. 떡집을 가려고 했는데 계속 눈길이 떡집 옆 만두집을 향하고 있었다. 만두집을 지나 떡집에 가니 떡이 몇 개 없다. 송편 몇 개와 약밥 몇 개. 떡이 다 팔렸거나 오늘은 이 정도 메뉴만 팔거나, 그 사정은 주인만 알 뿐 알 길이 없다.


"이거 오늘 만든 떡 맞죠?"


덩치가 산만한 젊은 주인은 "그런 말 제일 듣기 싫다"며 모든 떡은 당일에 만들어 당일에 판다고 핀잔하듯 말을 한다. 미안하다고 했다. 생전 미안하다 말을 잘 안 하는데-특히나 상점 주인들의 서비스 마인드를 중요시 여기는 나인데- 요 며칠 아프고 나서는 마음이 너그러워진 까닭인지 그리도 차분하게 사과의 말이 나왔다. 뭐, 주인의 덩치에 이미 게임에서 졌다고 판단했을지도.


2500원을 주고 송편 한 팩을 사고는 떡집에서의 거래를 마치고 돌아가는 길, 아무래도 손이 심심하고 뭔가 2% 부족한 쇼핑을 달래기라도 하듯 나는 만두집에 서있다. "아저씨, 주문 어떻게 해요?"


주문을 어떻게 하긴 뭘 어떻게 하나. 그냥 만두달라고 말하면 돼지, 뭐가 어려워 만두 주문하는 법을 물어보나. 이미 메뉴에 왕만두는 5개 4000원, 통만두는 8개 4000원이라고 써있는데. 주문을 어떻게 하냐는 물음에 우문현답이다.


"네, 주문하세요."


다시 생각해도 어이가 좀 없다. 그런 엉터리 질문에도 사장님은 고객을 적당히 응대해 준다. 통만두로 고기만두 2개를 주문했다. 이내 또 김치만두 2개를 주문했다. 왠지 고기 하나, 김치 하나를 묶어 팀원들에게 한 봉지씩 나눠주면 구색도 맞고 맛있게 먹어줄 것만 같았다. 사장님이 고맙다고, 더 사라고,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지만 나는 또 찐빵도 5개 달라며 주문을 넣는다. 합이 2만 원. 이제 뭔가 쇼핑을 한 것 같은 걸까. 뭔가 모를 기분 좋음에 만두 찌는 시간을 기다린다.


옛날에, 그러니까 30년도 더 전에, 국민학교 시절, 엄마가 요리학원을 다녀오는 날이면 실습을 한다고 우리들에게 그날 배운 음식을 해줬다. 양손에 장을 보고 온 엄마는 그 날의 레시피에 따라 피자며, 양장피며 양식, 중식을 가리지 않고 평소에 하지 않던 요리를 우리에게 선보였다. 꼭 그날이 아니더라도 양손에 봉지 가득 장을 보고 오는 엄마의 모습은 보기가 좋다. 곧 내 배도 든든해 진다는 뜻이니까.


굳이 엄마를 흉내내려고 한 것은 아니지만, 나는 떡봉지와 만두봉지를 양손에 가득 든 것 마냥 초여름 우거진 가로수길을 파워워킹했다. 어깨에 힘이 좀 더 들어 가고 사람들은 나의 봉지를 쳐다보는 것만 같았다. '우리 직원들에게 줄 만두가 들어 있어요~'라고 말을 한 것은 아니지만, 내 표정을 누구 한 명은 읽었을까. 그렇게 뿌듯한 마음으로 만두 봉지를 들고 회사로 향했다.


나는 요즘 피부염을 앓는지라 고기만두를 먹지 못한다. 가려야할 음식도 많고 양도 조절하고 있다. 막상 사온 떡봉지도 지금 그냥 그대로 있다. 살 때는 다 먹을 것처럼 샀지만 땀을 흘리며 걷고 나니 식욕은 뒷전이고 목만 탄다. 시원한 차를 들이키며 고기만두 먹는 직원들을 상상한다. 사실 먹으라고 줬건만 아직까지 아무도 먹지도 않고 맛있다고 고맙다고 말해주는 사람 한 명도 없다. 그 옛날 나도 그랬다. 그렇게 배부르게 먹고는 엄마에게 맛있다고, 잘 먹었다고 센스있는 표현을 했던가. 정없고 눈치없는 막내아들 짓만 했나 싶다.


그렇게 만두는 식어가고 추억은 무뎌진다. 그래도 양 손 가득 넉넉함은 잊지말고 살자 다짐해 본다.


2020. 5. 30. 횡단보도 건너 만두집 연기가 그렇게 모락모락 피어나던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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