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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위다혜 Sep 04. 2024

인스타그램 안 해도 안 망해!

두 달동안의 디지털 디톡스 후기 

올해 초, 인스타그램 어플을 지웠았다. 인스타그램에서의 타인을 의식하는 모든 활동들이 지긋지긋해졌다는 것이 큰 이유였다. 나는 친구들과 연결된 본 계정 그리고 업무적으로 쓰는 부계정 이렇게 두 가지의 계정을 가지고 있는데, 부계정의 경우 특히 더 타인에 기준이 맞춰져 있다. 내가 업무적으로 어떤 성취를 이뤘는지, 요즘 어떤 분야에 관심이 있는지, 일을 위해 어떤 노력을 하고 있는지 알리기 위함이 주목적이 된다. SNS에 올리지 않으면 내가 이뤄낸 다양한 성취와 노력들이 이 세상에서 없었던 일이 되는 것 같았다. 

또한 나는 성취를 올리는 사람이기도 하지만, 남의 성취를 인스타그램을 통해 판단하는 사람이 되기도 한다. 콜라보할 아티스트를 찾다보면 가장 흔하게 찾아보는 것이 작가의 인스타그램이다. 본인만의 별도 홈페이지가 있는 게 아닌 이상, 가장 간단하게 본인을 압축해서 소개하고 어필할 수 있는 플랫폼이 인스타그램이기 때문일 것이다. 이 곳에 쌓인 사진과 글이 그 사람의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알면서도, 화면에 쌓여있는 네모난 사진들을 기준으로 자연스레 판단하고 평가하게 된다. 

이런 경험들 때문에 인스타그램을 안 할 수 있는(그 정도로 어필을 안 해도 당당히 인정받고 모두가 불러주는) 사람이 되지 않고서는, 포트폴리오로써 인스타그램을 어느정도 가꾸는 일은 마땅히 해야 하는 일 중 하나라고 생각했다. 그러다보니 어느 순간 내 삶의 방향이 타인쪽으로 조금씩 기울기 시작했다. '트렌드 파악'이라는 업무 이름 아래 타인의 삶을 너무 들여다본 나머지, 내 삶에서 비롯된 내 생각을 하는 게 아니라 타인의 생각으로 내 머릿속을 채우게 되기도 했다. 이 외에도 영감 수집류의 포스팅, 자기계발 릴스 중독, 친구의 전시된 삶을 보며 부러워하고 비교하기, 트렌드를 쫓아가야 한다는 피곤함, 친구가 나와 보낸 시간을 SNS에 업로드하지 않았을 때의 미묘한 서운함 등 내가 인스타그램을 지워야 할 이유는 많았다.

인스타그램 어플을 두 달 동안 없앴었다. 놀랍게도 친구들이 걱정했던 만큼의 금단현상은 전혀 없었다. 인스타그램으로 주로 공지를 하는 가게의 휴무일을 확인하기 위해 PC로 종종 접속하는 순간은 있었지만, 미친듯이 누군가의 피드가 보고 싶거나 뭔가를 자랑하고 싶어서 인스타그램에 접속하는 순간은 없었다. 애초에 남의 일상을 낱낱이 보고자 하는 욕구는 인스타그램이 만들어낸 가짜 욕구가 아니었을까하는 생각도 들었다. 

다만, 인스타그램의 포트폴리오적인 기능은 여전히 마음에 걸렸다. 요즘 입사 지원 프로세스에는 SNS주소를 넣는 란이 따로 있을 정도로 SNS가 꽤나 중요한 평가 수단 중 하나로 이용된다. 친구들의 스토리는 보지 않더라도, 분기에 한 번은 인스타에 내 성취들을 업데이트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계속 맴돌았다. 결국, 인스타그램 덕분에 새로운 기회를 얻게 되면서 나는 다시 인스타그램 어플을 설치하고 말았다. 

SNS를 완전히 거부해버리거나, 하루 종일 사용하는 극단적인 두 방향 사이에서 나에게 가장 최선인 버전의 SNS사용법을 만들어낼 날이 올 때까지 나는 여러번 인스타그램 설치하고 삭제하고 또 설치하고 삭제할 것이다. 인스타그램을 업데이트하지 않는다고 해서 큰 일이 나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온라인 세상의 마케터로 살아가는 한 이 강박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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