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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위다혜 May 11. 2024

폐허 속 솟아오르는 버섯 같은 희망

세계 끝의 버섯(1/2) 독서 기록 

버섯은 솟아오른다. 다이소에서 바질 키우기 세트를 산 적이 있는데, 그 세트에 들어있는 흙은 무슨 일인지 버섯이 자라기로 유명했다. 내 바질 화분도 예외는 아니었다. 열심히 물을 주며 바질을 키우다 보니 어느 순간 버섯이 자라 있었다. 점처럼 작은 새싹부터 시작하는 다른 식물과 다르게, 버섯은 화분에서 흙을 비집고 솟아올라 어느 날 갑자기 생겨있다. 어찌나 빠르게 자라나는지, 버섯을 덮고 있던 흙이 그 주변에 내팽개쳐 있을 정도였다.

<세계 끝의 버섯>을 읽는 내내 그때 그 버섯의 독보적인 힘이 생각났다. 히로시마가 원자폭탄으로 파괴되어 생명의 흔적을 찾을 수 없었을 때, 그 자리에 가장 먼저 생겨난 송이버섯. 자본주의로 인해 황폐화된 숲에서 자라난 송이버섯. 하지만 인간이 억지로 재배하려고 하면 절대 순순히 자라주지 않는 그런 송이버섯. 이 버섯은 인간이 억지로 만들어낼 수 없는, 진정으로 오염된 생태계에서만 자란다. 자본주의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책은 많이 보아왔지만, 송이버섯을 소재로 하여 성장 만능 주의, 인간중심주의, 자본주의,  공급사슬, 상품화에 대해 이야기하는 책은 처음이라 굉장히 신선하게 다가왔다.

송이버섯 자체의 이야기로도 재밌었지만 이야기의 큰 줄기를 구성하는, 송이버섯을 채집하고 구매하고 유통하는 숲과 대지의 풍경 그리고 버섯을 사서 선물하기까지의 긴 여정도 흥미로웠다. 백인부터 동남아시아인까지 전쟁이나 난민, 이주 등의 각자 사연을 가지고, 자유를 추구하기 위해 숲에서 버섯을 따는 모습은 왠지 영화 <노매드랜드>의 한 풍경을 떠오르게 하기도 했다. 숲, 그와 연결된 너른 들판 그리고 그 위에 다양한 사람들이 텐트를 치고 지내며 연대하고 생존하는 풍경. 그 풍경에서 느껴진 이미지는 <노매드랜드>에서 받은 자유의 느낌과도 비슷했다. 그들은 "숲에 살면서 월세라는 것을 절대 지불하지 않는 것. 숲에서의 삶은 그가 심리적 위험에서 벗어나는 방식. 산에서 채집을 함께하면서 자신들이 온전해진다고 농담"할 정도이다. "강력한 이해관계와 불평등에 오염되지 않고 이루어지는 진정하고도 기본적인 자본주의 형식"이라고 볼 수 있는 송이버섯 구매 장면도 흥미로웠다. 글로만 읽어도 신선하고 어디서도 보지 못 한 장면이 다큐멘터리로 나오면 너무 좋겠다고 생각했다.

'자유'의 이름으로 채집되는 일종의 '트로피'였던 송이버섯이, 온전한 자본주의의 형식을 갖췄지만 일종의 대중 공연처럼 여겨지는 오픈티켓에서 팔리고, 유통과정에서는 '재고품'으로써 선별되고, 소비자에게 팔리고 나서는 관계 형성을 위한 '선물'의 특성을 갖추게 되는 그 여정을 통해 익숙했던 사고파는 행위에 대해 다시 한번 낯설게 보는 눈을 갖게 한다.

두 번째 인터루드에 등장한 곰팡이의 이야기는 지식적인 면에서 흥미로워서, 인문책을 읽는 즐거움을 더해주었다. 많은 사람들이 곰팡이는 식물이라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동물에 가깝고, 곰팡이의 섭식은 종종 너그러워서 다른 이들을 위한 세계를 만든다. 곰팡이는 나무와 나무, 서로 다른 생물종을 연결하고 도움을 주면서 하나의 큰 환경을 만들어내는 세계의 건설자라고 말한다. 우리가 '곰팡이'하면 떠올리는 부정적인 이미지는 인간의 이기적이고도 단편적인 시각이었다는 것을 다시 한번 깨닫는다. 곰팡이와 송이버섯 모두, 인간들이 중요시하는 자신만을 생각하는 단독적인 삶에 반하며 서로 상호작용하고 연결되고 우연한 마주침에 의존해 살아간다고 말한다.

이 책이 다루는 범위는 환경, 생태계, 비인간, 상품화부터 자본주의까지 너무나 방대해서 감히 한 문장으로 요약할 수 없다. 손 한 뼘 정도의 이렇게나 작은 존재인 '송이버섯'으로부터 이 거대한 지구 위 자연과 인간 사이 얽혀있는 다양한 문제들을 살펴볼 수 있는 큰 이야기를 써내려 간 작가의 위대함에 박수를 보낼 수밖에! 우리가 자연과 분리된 도시에 살면서, 자연은 이렇게나 신비롭고, 계획대로 진행되지 않으며, 서로가 서로를 오염시키고 침범하고 이어 붙이면서 더 다채로운 생태계를 만들어 나간다는 것을 잊고 살지 않기 위해서 우리에겐 이런 책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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