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뇌과학 박사 장동선 님의 콘텐츠들을 재밌게 보고 있는데, <서로가 서로를 외롭게 만드는 사회 | 외로움을 극복하는 가장 과학적인 방법>이라는 영상 콘텐츠의 결론 부분이 마음에 들어서 일기장에 적어두었다. 사람이 외로워지면 타인이 한 행동의 의도나 맥락을 판단하는 pSTS라는 영역이 활성화되지 않는다고 한다. 그래서 같은 행동을 보고도 외로운 사람은 더 왜곡된 쪽으로 판단을 하게 된다는 것. "사람이 왜 이렇게 꼬였어?", "꼬아서 생각하지 마"라는 말을 하는 사람들을 많이 보게 되는데, 사실 그 "꼬임"이 외로움에서 비롯됐을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하니 왠지 좀 측은함이 들기도 했다.
외로움에 대한 과학적인 이야기를 다룬 그 영상의 결론은 사람은 어차피 서로를 오해할 수밖에 없다는 것. 그렇기에 어차피 오해할 거라면 좀 더 좋은 방향으로 오해하자, 그랬을 때 우리는 외롭지 않게 서로 연결될 수 있다는 것이었다. 남이 나에게 하는 오해, 내가 남에 대해 하고 있을지 모르는 오해에 대해 자주 생각하던 때였기에 정말 좋은 사고의 전환이라 기록해두고 싶었다.
그 오해라는 것은 사적인 생활보다는 회사에서 자주 일어난다. 온전히 사적인 관계가 아니라 공적인 관계도 섞여있기에 그 오해는 더 자주 발생한다. 일로써의 관계와 개인적인 친분관계가 섞여, 일에 대한 피드백을 자신에 대한 공격으로 받아들이는 등의 일이 종종 발생한다. 일에서 시작된 부정적인 감정의 씨앗은 점차 그 사람 자체에 대한 부정적인 오해로 번져나가기도 하는 것 같다.
더불어, 회사라는 조직은 정말 말이 빠르게 퍼져나가는 곳이기에 오해는 더 커진다. 그냥 한 마디 던진 말이 일파만파 퍼져나가 저 멀리 있는 조직에서부터 나에게로 다시 돌아올 때, 말을 함부로 뱉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이 퍼뜩 든다. 말이 퍼져나가는 것의 가장 최악의 점은 그 말의 원본 유지가 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말을 전하려거든 원본 그대로 전하면 좋으련만, 다른 사람들은 내 말을 그렇게 성심성의껏 정확히 기억해주지 않는다. "그분이 ~하신다던데요?", "그분이 ~라고 했다던데요?" 말은 한 번 전달될 때마다 조금씩 왜곡되어 최종버전에서는 알아볼 수 없을 만큼 달라져있다. 이런 일을 자주 겪다 보면 자꾸만 말을 줄이게 된다. 특히 믿을만하다고 생각한 단 한 사람에게만 했던 말이 그렇게 퍼져나갔다는 것을 알게 되면, 그 번짐의 시작점은 그 사람일 수밖에 없으므로 실망이 더 크고, 마음의 문을 더 걸어 잠그게 된다.
처음에는 누군가 나에 대해 오해를 하고 있을 때, 찾아가 붙잡고 그런 게 아니라고 해명하고 싶었다. 하나하나 결백하게, 나에 대한 오해가 하나도 없도록 만들고 싶었다. 하지만 그렇게 모든 일을 바로 잡는 것을 불가능하며 이 사회는 필연적으로 오해를 만들어낼 수밖에 없는 메커니즘으로 짜여있다는 것을 깨닫고 나니, 지금은 그냥 포기하는 게 마음 편하겠다는 생각이다. 나를 그렇게 나쁘게 볼 사람은 언제든지 나를 나쁘게 봤을 것이다. 누군가를 오해하고 미워하는 일은 꽤나 에너지를 소비하는 일이기에, 나는 최대한 좋은 방향의 오해만 하려고 노력하고자 하는 길을 택하려고 한다. 쉽지는 않을 것 같다. 좋은 쪽을 공들여 열심히 발굴해 내는 것보다, 누군가를 부정적인 쪽으로 오해하는 편이 더 쉽고 편리한 길이니까. 하지만 그렇게 부정적인 생각으로 자신을 가득 채워봤자 그것은 자신의 손해일뿐이다. '네가 나에 대해 뭘 알아..!'라는 말이 턱끝까지 차올라도, 우리는 서로를 완벽하게 아는 것이 불가능함을 인정하고 굳이 굳이 좋은 쪽을 택해보자. 그럼 어느새 나에 대한 남의 오해도 풀려있을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