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 한 줌의 햇살도 허용치 않겠다는 단호한 암막 커튼에 힘입어 새벽인지 아침인지 구분이 안되는 시각. "여보 나 오늘 좀 일찍 출근할께. 일이 많아 늦을 수 있어.. 오늘도 힘내요~" 아침에 귓가에 울린 아내의 소곤소곤한 목소리. 누군가 이 문장만 보면, 결혼 4년차에도 유지되는 달달한 신혼부부라 생각할 수 있으리라. 그러나 그녀와 나는 24개월 된 '남자'아기를 둔 부모를 감안한다면 저 문장은 이렇게 해석돼야 옳다. "여보 오늘 하루종일 예안이 잘 부탁해. 육아가 힘들겠지만 어쩌겠어. 힘내"
전날 밤 늦게까지 이어진 빨래와 집안 청소 그리고 설거지 숙취의 여파일까. 무의식중에 "으응.."에 가까운 소리가 입에서 나왔고, 그녀의 감출 수 없는 기쁨이 담긴 종종걸음을 인지할 때서야 눈을 떴으나 그녀는 벌써 방문을 잽싸게 닫고 나간 뒤였다. '잠이라도.. 더..' 라는 간절한 마음을 담아 눈을 감았으나, 침대 아래 24개월 예안이의 뒤척임이 감지됐다.
더 자야만 한다는 목적. 그렇다. 분명한 목적의식은 나로 하여금 침대 밑 예안이 곁으로 부드럽지만 재빠른 몸놀림으로 이어지게 만들었다. 후훗. 암막 커튼에 힘입은 어두움, 24개월 아빠경험, 좀 더 자야만 한다는 분명한 목적의식이면 내가 엄마인척 하는 것 쯤이야 라는 자신감으로 이어졌다. 여기에 유려한 손목스냅으로의 엉덩이 토닥임은 만점에 가까운 스킬이었다. 완벽했다. 그러나. 인생은 늘 그렇듯 내가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전개된다.
샤프란과 예안이 특유의 내음이 한 데 뒤섞여 만들어진 향기에 취해 잠드려는 그 때. 어두움 속 무언가 내 얼굴을 향해 올라오고 있었다. 천천히 그렇지만 느리지 않게 무언가를 찾고자 하는 손. 방향은 얼굴. 두렵진 않았다. 인간이란 무엇인가. 눈 코 입 갯수가 모두 동일하지 않은가. 이 어두움에 의지해 목소리만 안내면 엄마인 척 쯤이야. 후훗. 목덜미 즈음에 다다른 왼손이 고생스럽지 않게 얼굴을 내려주려 할 때 였다. 손은 갑자기 방향을 틀었다.
그리고 예안이 손은 정확히 옷과 내 몸 사이를 정확히 비짚고 들어왔다. "?". 그리고 이어지는 부드러운 탐색. "?". 한 번 쓰윽. 두 번 쓰윽. 그렇다. 그는 정확히 가슴을 탐색하고 있었다. 회차가 거듭될수록 탐색은 거칠어졌다. 마땅이 있어야 할 무언가가 없다는 당혹스러움을 느낀 예안이의 왼손. 어찌할 바를 모르겠고 마땅히 엄마인 척 할 묘책이 없던 나도 당황스러웠고. 그렇게 7차례의 탐색 후 예안이 손은 뇌에 이렇게 전달했으리라. "엄마가 아니다." 그리고 이어진 외침. "아빠 시어!!"
부리나케 일어난 그. 칠흑같은 어두움에 힘입어 다시 자길 바라는 마음에 다시금 포근히 안으려 시도. 그러나, 24개월 된 동공과 시신경은 문 틈으로 아주 좁디 좁은 햇살을 감지했고 정확히 문을 향해 그는 나아갔다. 문을 활짝 열며 "엄흐흐으마흐ㅡ" 울부짖음이 뒤섞인 그의 외마디에 나도 절규하며 외쳤다. "엄마 출근했어 예안아...더 잘까...?" 그는 대성통곡으로 답했고, 나는 잠에서 깨어야 했다. 육아가 시작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