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수심이 파멸로 이끌다
한나라 건국자 유방과 항우가 천하를 다툰 이야기는 후대인들에게 많은 영감과 교훈을 주었다. 유방은 시쳇말로 건달 출신이었고 항우는 귀족 명문가 출신이었다. 양자의 군사력, 군사적 재능, 출신 배경 및 제후들에 대한 지배력 등에서 유방은 항우와 비교가 불가능할 정도로 열세에 있었다. 항우는 진나라가 멸망한 이후 권력의 공백 상태에서 최고 권력자의 지위에 올라 제후들의 분봉도 오로지 자신의 뜻에 따라 실시했다. 오죽하면 반란의 주요 공로자들을 ‘왕’으로 봉하면서 자신은 그들과 격이 다르다는 차원에서 ‘패왕’으로 자처했을 정도였다. 하지만 패권 투쟁의 결과 천하의 주인은 항우가 아닌 유방이 되었다.
유방이 천하를 얻은 뒤 연회를 베풀며 신하들에게 “여러분은 숨기지 말고 솔직하게 말하라. 내가 천하를 차지한 이유는 무엇이며, 항씨(항우)가 천하를 잃게 된 연유는 무엇인가?”라고 물었다. 몇몇 신하가 “폐하는 사람을 시켜 성을 공격하고 땅을 빼앗으면 그것을 그들에게 주었습니다. 항우는 그리하지 않고 공을 세운 자가 있으면 해치고, 현명한 자가 있으면 의심했습니다. 이것이 그가 천하를 잃은 연유입니다.”라고 말했다. 그러자 유방은 “그 대답은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 것이오. 군대의 일을 계책을 세워 1,000리 밖에서 승리하는 일은 내가 자방(장량)만 못하오. 국가를 안정시키고 백성을 어루만지고 군량을 공급함은 내가 소하만 못하오. 100만의 군사를 움직여 싸우면 반드시 이기고 공격하면 반드시 빼앗는 일은 내가 한신만 못하오. 이들 3인은 모두 인걸이오. 그러나 나는 이들을 능히 적재적소에 쓸 수 있었소. 이것이 내가 천하를 얻은 까닭이오. 항우에게는 오직 한 명의 범증이 있었으나 그조차 쓰지 못했소. 이것이 그가 나에게 패한 까닭이오.”라고 말하자 군신들이 모두 감탄했다. 역시 천하를 얻은 사람의 안목은 보통사람과는 차원이 다르다.
유방의 승패의 원인 분석이 지극히 타당하다. 조직 및 국가 발전에서 적재적소에 인재를 배치하는 일은 가장 중요한 경쟁력이다. 유방의 공신 집단에는 고향 사람들인 소하, 번쾌, 주발, 하우영 등이 주류를 이룬다. 유방이 위에서 말했듯 흔히 한나라 건국의 일등공신으로 장량, 소하, 한신을 꼽는데 이중 소하만 봉기 처음부터 함께한 고향 사람이고 장량과 한신은 천하 쟁패 과정에서 합류한 사람들이다. 다시 말해서 유방은 단지 가까운 고향 사람들에게만 중책을 맡기지 않고 유능한 외부 인사인 장량, 한신을 발굴하여 마음껏 재능을 발휘하도록 했다.
나는 유방과는 다른 관점에서 항우의 패인을 분석해 보겠다. 항우는 전국 칠웅 중의 하나인 초나라가 망할 때 장군으로서 죽음을 맞았던 항연의 손자이다. 항우는 숙부인 항량과 함께 봉기하여 서쪽으로 진군하다 숙부는 진나라 군대에게 패해 죽고 말았다. 항우의 할아버지와 숙부 둘 다 진나라 군대와 싸우다 죽었는데 특히 함께 봉기한 동지이자 숙부의 죽음은 항우에게 진나라에 대한 적개심과 분노를 쌓게 했을 것이다. 항우는 항량이 죽기 전의 양성 전투에서 수비가 견고하여 쉽사리 이기지 못하다가 간신히 함락시킨 뒤 진나라 군사를 모두 산 채로 매장했다. 또한 진나라의 마지막 주력군인 장한의 군대가 항복한 뒤 항우의 군대는 장한의 진나라 군대를 밤에 기습하여 20여만 명을 생매장했다. 칭기즈칸의 군대처럼 전투에서 적에게 공포감을 심어주고 항복을 유도하기 위해 군사지휘관들은 때로 무자비한 살육을 감행하기도 한다. 하지만 제한된 지역에서 강력한 라이벌과 패권을 다투는 국면에서는 무자비한 살육전이 정치적 우위를 상대에게 내주는 결과를 빚게 된다.
항우는 진나라 군대를 무자비하게 생매장하여 민심을 이반 하게 만들었지만 유방은 끊임없이 민심에 영합하는 정책을 펴고 다른 반군들과도 긴밀하게 연대하는 정책으로 일관했다. 항우와 유방의 천하 쟁패전은 명분과 민심의 향배에서 승부가 갈렸다. 유방은 민심을 얻었으며 항우는 민심을 잃었는데 이 차이를 극복하지 못하고 항우는 온몸이 다섯 조각으로 찢어져서 비참하게 죽었다.
항우는 어렸을 때 숙부인 항량이 글을 가르쳤으나 신통치 않아 포기했고, 검술도 배웠으나 높은 수준에 이르지 못했다. 그래서 병법을 가르쳤더니 항우는 열심히 배우려고 했으나 대략 알게 되자 또 끝까지 배우지 않고 포기했다. 항우의 배움에 대한 열의와 집요함의 부족이 이후 오만하고 독단적인 처사로 이어졌을 것이다. 또한 낮은 배움의 수준은 대국적으로 판단하지 못하여 진나라에 대한 편협한 복수심만 자극하였을 것이다. 결국 복수심은 한때 절대강자였던 항우를 패자로 만들어 버렸다.
쾌도난마 식의 복수가 일순간의 통쾌함을 줄지는 모르지만 스스로의 파멸로도 이끌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