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범신 작가님 소설 원작 영화 '은교' 재해석 리뷰
속된 말로 ‘남자를 꼬시는’ 스킬이 고단수다. 현실인지 판타지인지 구분하기 힘들 정도로 혼란스럽게 만든다. 퇴폐적이지도 않게 그렇다고 순수하지도 않게, 마치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하는 듯한 긴장감을 준다. 남자들이 그릴 수 있는 어리고, 깨끗하면서도 어딘지 모르게 발칙해 보이는 ‘은교’. 늙은 시인 이적요와 그의 제자 서지우 두 남자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꿔버리고, 두 남자의 마음을 쥐락펴락하는 이 시대의 진정한 능력자. ‘나 아무것도 몰라요’ 얼굴로 순수한 척, 착한 척, 모르는 척 온갖 ‘척척척’ 하는 스킬이 한 수 배우고 싶을 정도(?)다. 그 속내는 셀 수 없는 꼬리를 감춘 발칙한 여우 중에 ‘상여우.’
손가락이 어쩜 그렇게 가늘까. 팔목은 겨우 손가락보다 조금 더 굵다. 가는 허리는 고혹적이고 일자 쇄골은 물 한 모금 담길 듯 깊다. 투명하게 빛나는 피부와 새하얀 솜털을 가진 17세의 고등학생. 젊음, 싱그러움 그 자체다. 그런 그녀가 이적요 집안 마당이 자기 세상인 듯 잠들어 있다. 쌔근쌔근 코까지 골며. 낯선 곳 낯선 사람에게 경계심도 없다. 어떻게 집에 들어왔냐는 이적요의 물음에 팔걸이의자에 한 번 누워보고 싶어서 사다리를 타고 담장을 넘어 들어왔단다. 이적요는 자고 있던 은교의 몸을 흘끗 보았다. 어떠한 이유도 들리지 않는다. 후줄근한 흰색 티셔츠 사이로 가슴이 보일 듯 말 듯하고, 큰 반바지 사이로 드러난 길고 곧게 뻗은 다리와 가는 발목만이 그의 머리를 채웠다. 은교의 천진난만한 태도와 모습이 기름통과 같은 이적요의 몸에 성냥을 그어댔다. 눈도장 제대로 찍은 은교는 그렇게 아르바이트로 이적요의 집안일을 하러 오게 된다. 그리고 함께 지내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자연스레 정이 든다. 사랑보다 더 진한 ‘정’이. 은교는 그에게 애틋한 감정을 느끼며 점점 고단수 스킬을 사용한다.
연신 싱글벙글한 은교, 눈빛은 그윽하다. 유리창을 닦는 척하면서 여체의 은밀한 부위를 슬쩍슬쩍 내보이는 수법으로 이적요의 마음을 휘어잡는다. 굳이 손이 안 닿는 유리창의 높은 곳을 닦으며, 흰 티셔츠 사이로 잘록한 허리를 보였다 감췄다 보였다 감췄다를 연신 반복한다. 은교는 타이밍도 잘 안다. 감수성이 깊어질 때로 깊어진 야심한 시각. 그것도 비가 세차게 내리는 늦은 밤에 갑자기 은교가 이적요의 집에 찾아간다. 엄마에게 맞아서 집에 못 들어간다는 핑계를 대며 비를 홀딱 맞아 젖은 교복을 입고 서성인다. 그런 그녀에게 입을 옷을 내주고 이적요는 젖은 교복을 드라이기로 말린다. 그때 은교는 침대에 누워 교태를 부리기 시작한다. 무릎을 세우고 누워 큰 반바지 사이로 아무렇지 않게 속살과 팬티를 드러낸다. 마치 젖은 몸을 말리듯 이불에 몸을 비비며 살짝살짝 감칠맛 나게 속살을 보여준다. 이적요는 은교의 아름답고 앳된 몸을 눈으로 힐끔힐끔 더듬는다. 마치 죄라도 짓는 듯이. 은교의 계획된 시나리오라는 것도 모른 채.
아침에 일어나 보니 시인의 침대에, 한 이불속에 들어와 자고 있는 은교. 이적요는 새근새근 자고 있는 그녀의 목에 가슴에 눈이 가고, 가슴 위에 그려진 헤나에 시선을 멈춘다. 다음날 은교에게 헤나에 대해 묻는다. 그때 은교는 자기와 같은 문양의 헤나를 새겨주겠다고 한다. “여기 누우세요. 셔츠 단추 몇 개만 풀면 돼요. 하나 두울 셋.” 이적요는 은교가 시키는 대로 그녀의 가슴팍이 느껴지는 허벅지를 베고 눕는다. 은교는 남자들이 시각만큼 민감한 게 후각이라는 것을 잘 안다. 은교의 향긋한 체취는 이적요를 녹인다. 그리고 “가슴팍이 반질반질하세요”라는 멘트로 치명타를 입힌다. 거부할 수 없는 홀림이다. 은교는 이적요의 집을 드나들면서 교복 치마를 짧게 올리고 블라우스 허리를 날씬하게 줄이기까지 한다. 이적요가 갈망하는 젊음으로의 정신적 상상과 침범을 허용하면서 육체적 한계는 분명히 구분 짓는다. 치명적이다. 17세 소녀의 껍데기를 한 여우다.
은교는 젊음을 이용한 젊음을 갈망하는 늙음에 애달픈 비극만 남긴다. 어려서 아무것도 모른다고 생각하면 큰 오산이다. 은교가 마지막으로 말한다. “여고생이 남자와 자는 이유가 뭔지 아세요? 외로워서.” 그렇다. 은교는 이런 여자다. 거부할 수 없는 묘한 매력과 아름다움을 이용해 남자 주인공의 운명을 예기치 않은 나락으로 빠뜨려 헤어날 수 없게 만드는 치명적이 여자, 은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