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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yle Park Sep 26. 2018

경주의 낮과 밤, 흐림과 맑음

모든 게 아름다웠던 3박 4일 경주여행

정말 뜨거웠던 여름이 어느새 지나갔다. 더위를 많이 타는 나는 여름휴가를 가는 것보다 출근하는 게 낫다는 생각이다.(물론 국내 한정) 가을이 되면 꼭 떠나야겠다고 생각해오다 여행을 재촉하듯 부는 찬바람에 경주로 여행을 떠나버렸다.


하루는 여행을 같이 떠나는 친구 할아버지 댁에서 지내기로 했기 때문에 경주행 고속버스와 이틀 동안 묵을 숙소만 예약하고 별다른 계획 없이 여행을 떠나버렸다.



경주 버스터미널에 도착하자마자 스타벅스로 달려갔다. 기와집 콘셉으로 만들어진 스타벅스에서 친근한 아이스 아메리카노 한 잔을 빠르게 마셨다.



근처 마트에서 저녁에 먹을 간식거리와 안주, 할아버지가 가장 좋아하시는 맥주 한 박스를 사서 할아버지 댁으로 갔다. 택시로 10분 남짓 달렸을까. 촉촉이 젖은 벼 사이를 걸어서 할아버지 집에 도착했다.



바리바리 싸온 짐을 꺼내는 동안, 할아버지는 금방 밥상을 차려주셨다. 김치 세 종류와 통 미꾸라지탕을 허겁지겁 먹어치운 뒤 시장에서 사 온 치킨과 함께 맥주를 마시고, 이른 잠을 청했다.


이튿날에도 비는 계속 내렸다. 그렇게 기도를 했지만 역시 난 비를 몰고 다니는 운명인가 보다. 경주역에 짐을 맡긴 뒤 우산을 들고 다니기 귀찮을 것 같아서 편의점에서 우비를 사 입었다. 경주역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대릉원'까지 걸었다. 비가 와서 더 축축해진 나무와 풀들은 진득한 초록색을 띄었다. 맑을 때의 대릉원 풍경을 본 지가 언 5년이 다 돼가서 기억은 안 나지만, 비가 오는 대릉원은 처음 보는 터라 크게 두 바퀴를 돌았다.


비가 와서 마냥 걸을 수는 없었지만, 더 운치 있었다.


대릉원 산책을 마치고 나서 추천받은 '교리 김밥'에 들렸다. 김밥은 계란지단이 듬뿍 들었다는 것 외에 특별한 게 없었지만 잔치국수는 정말 맛있었다.



교리김밥이 있는 '교촌마을'은 한반도 최초의 국립대학 '국학'이 있었던 곳이다. 한옥이 잘 보존되어 있어서 식사 후에 산책하기 좋은 공간이다.


저녁에는 대릉원 앞 흔히 '경주 황리단길'로 불리는 황남동 주변을 돌았다. 굳이 경주에서 0리단길이라는 표현을 써야 했냐는 생각이지만, 이 거리가 떠오르면서 경주 여행이 재조명되고 많은 사람들이 찾아온 것 같아 나쁘게만은 보이지 않는다. 사람들이 찾아오지 않는 다면 의미가 없어지는 공간이 돼버리니깐 말이다.


비오는 날엔 육전


비가 점점 많이 내리고 있어서 '전집' 간판을 따라 들어가서 김치전과 육전을 시켰다. 여행지에 와서 음식을 먹으면 꼭 특색 있지 않더라도 특별한 공간 속에 있으니 더 맛있게 느껴지는 것 같다.




저녁을 먹고 나와 동궁과 월지로 이동했다. "이걸 보려고 경주에 왔구나." 수많은 사람들의 감탄사 속을 걸었다. 야경이 정말 아름다웠다. '안압지'로 많이 알려져 있는 이곳은 신라시대 때 월지(月池)라고 불렸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정식 명칭도 '동궁과 월지'로 변경되었다. 신라 왕궁의 별궁 터로서 나라의 경사가 있을 때 연회를 베풀기도 하였던 곳이라고 한다.


월지는 신라 원지(苑池)를 대표하는 유적으로서 연못 가장자리에 굴곡을 주어 어느 곳에서 바라보아도 못 전체가 한눈에 들어올 수 없게 만들었다. 이는 좁은 연못을 넓은 바다처럼 느낄 수 있도록 고안한 것으로 신라인들의 예지가 돋보인다.

대한민국 구석구석, 경주 <동궁과 월지>



시간이 맞지 않아 낮에는 가보지 못했지만, 낮에는 또 다른 풍경을 보여준다고 한다. 다시 경주 여행을 오게 될 여지를 남겨두며, 2일 차 여행을 마무리했다.




친구와 나는 예전부터 '경주월드'에 꼭 가야겠다고 이야기했었는데, 이번 기회가 아니면 못 가볼 것 같았다. 최근 TV 프로그램에도 나오며 사람들에게 무시무시한 놀이기구들이 많다고 알려지게 되었다. 비가 오지 않는다는 예보를 믿고 아침부터 보문단지로 이동했다. 다행히도 하늘을 많이 흐렸지만, 비는 오지 않았다.



직각으로 하강하는 '드라켄'

우리나라의 롤러코스터 중에서 '드라켄'의 공포는 최고인 것 같다. 저 상태로 5초 동안 머무르는 것 같은데 정말 무서웠다. 3번 정도 탔는데도 적응이 안됐다. 예전에는 아침부터 저녁때까지 놀이기구를 타도 지치지 않았던 것 같은데, 점심을 먹고 나니 피곤이 몰려왔다. 그래도 언제 또 오겠어하는 생각으로 놀이공원에 있던 모든 놀이기구를 탔다.(...)


우비를 입어도 몽땅 젖었던 '섬머린 스플래쉬'
이 날도 어김없이 들렸던 스타벅스. 경주보문로DT점


피곤함이 몰려올 때면 역시 아이스 아메리카노. 나오자마자 보이는 스타벅스에서 잠시 숨을 돌렸다. 언제 이렇게 체력이 줄어든 걸까 슬퍼하며 홀짝 마셔댔다.



이틀 동안 쌀을 먹지 않아서 피곤한 걸까? 친구와 이야기하며 밥을 먹기로 했다. 그래서 찾아갔던 경주역 근처의 '대구갈비'



메뉴판에 볶음밥은 없지만, 따로 말하면 볶아주신다. 만족스러웠던 식사였다.



집으로 돌아가는 날 아침. 정말 거짓말처럼 파란 하늘을 보았다. 슬슬 나가서 해장국 한 그릇 먹고 올라갈 생각이었는데, 파란 하늘을 보자마자 대릉원이 보고 싶어 졌다. 역시나 좋았다. 이튿날에 만났던 축축이 젖은 대릉원만큼 새하얀 구름이 함께한 대릉원의 풍경은 아름다웠다. 찾지 못했던 천마총도 열심히 보았다. 며칠 만에 해가 떠서 그런지 삼삼오오 모여드는 사람들과 함께 걷는 풍경이 정말 아름다웠다. 봄이 되면 근처에 벚꽃이 즐비한다니 벚꽃 왕릉을 즐기러 꼭 다시 와야겠다.



대릉원을 나와 할아버지가 추천해주신 원조 '황남빵'집에 들러서 가족들과 먹을 황남빵을 샀다. 대릉원 바로 앞에 있으니 황남빵을 먹으며 대릉원을 구경해도 좋을 것 같다.





어렸을 때 수학여행으로 왔었을 때와 지금 느끼는 경주는 확연히 달랐다. 차가 있으면 더 좋겠지만 대릉원, 첨성대, 동궁과 월지 등 유적들이 가까이에 있어서 걸어서도 충분하다. 하루 걸음수 2만보씩을 채우며 도시에서는 느끼지 못했던 것들을 실컷 즐기고 왔다. 낮에도, 밤에도, 비가 와서, 비가 그쳐서 그저 모든 게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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