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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애송이 Feb 09. 2020

최악의 정신과 상담

환자, 그는 나를 상담 내내 그렇게 불렀다.

그동안 학교 상담센터, 집단 상담, 정신과 병원. 다수의 상담을 받으며 여러 명의 선생님들을 만났다. 아침방송 방청객 수준의 리액션으로 나의 온갖 잡소리에 폭풍 공감해주던 선생님, 단호박 멘트와 근엄한 표정으로 되는대로 흘러가던 내 정신줄을 붙잡아주던 선생님, 인자한 미소로 내 눈물을 가만히 지켜봐 주던 선생님. 모두 각자의 방식으로 내 상처를 어루만져줬다.


하지만 항상 좋은 선생님들만 만났던 건 아니다. 때는 2017년 12월 5일, 나는 인생 최악의 상담을 경험하게 된다.


도대체 왜 힘든 일들은 항상 세트로 몰려오는 걸까


2017년 겨울, 당시 나는 인생 최고로 혹독한 겨울을 지나고 있었다. 갑작스러운 해고 통보로 인해 하루아침에 실업자가 됐으며, 어느 날 엄마로부터 아빠에게 만나는 여자가 있다는 소식을 전해 듣고 있는 힘을 다해 아빠와 얼굴도 모르는 아줌마를 미워하던 중이었다.


지금 내게 닥친 폭풍우가 너무도 거대해 냅다 도망치고만 싶었던 시절. 나는 정처 없이 방황하는 내 마음을 누군가에게 진심으로 위로받기를 원했었다. 이렇게 작고 초라해진 나를 누군가에게 편하게 내맡기고 싶었다. 하지만 자꾸만 굳어져가는 몸과 마음에서 힘을 뺄 수가 없었다. 주변 사람들이 이런 내가 완전히 굳어 바스러지지 않도록 열심히 나를 두드리고 있다는 걸 알면서도 그랬다. 그때 문득 내가 잔뜩 얼어 있던 마음의 근육을 풀고 소리 내어 엉엉 울었던 곳이 떠올랐다. 학교 상담센터였다. 하지만 난 이미 학교를 졸업했고, 실업자에게 정신과 병원의 문턱은 높았다. 그렇다면 답은 하나였다. 실업자인 내가 무료로 이용할 수 있는 곳, 바로 시에서 운영하는 정신건강 복지센터였다.


나는 '환자'구나.


인터넷으로 상담 예약을 하고는 정신건강 복지센터로 향했다. 내게 주어진 상담 시간은 30분. 제한시간의 압박감 때문에 횡설수설하지 않기 위해 미리 그동안 써둔 일기를 읽어보고 그동안 내게 벌어진 일들을 머릿속으로 요약해보기도 했다. 그렇게 잠시 후 상담실로 들어갔고, 나는 이내 당황했다.



'환자.' 정신건강 복지센터의 센터장이라는 분은 30분 내내 나를 이렇게 불렀다. 그는 상담 처음부터 끝까지 취조하듯 노트북 너머로 나에게 질문했고 내 대답을 바쁘게 노트북에 옮겨 적었다. 진단은 단순했다. 나는 나보다 더 '퇴행' 상태에 있을 엄마를 위로해줘야 하고, 아직 집안 상황을 알지 못하는 동생에게는 나의 짐을 나눠지게 하는 것이 좋겠으며 아빠에 대한 나의 미움과 분노는 더 이상 억누르지 말고 표현해야 한다는 것이다.


나에게는 26년 인생을 뒤흔드는 천재지변이지만 내 앞에 앉은 정신과 의사라는 사람에게는 그저 수많은 사람들이 매일 같이 맞고 지나가는 찰나의 소나기 같은 이야기겠거니. 안경 너머로 예약 환자를 바라보는 센터장의 무표정을 나는 애써 합리화했다. 그렇게 나는 한순간에 불행한 환자로 전락해버리고 말았다.


상담을 마치고 건물 밖을 나서 핸드폰을 켜니 정확히 3시 반이었다. 역시 30분은 나도 알 수 없는 내 마음을 설명하고 이해받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시간이었다. 나는 복지센터에 들어가기 전보다 더 우울한 마음으로 버스에 올랐다.


내게 필요한 건 위로였는데.


내가 그 상담을 통해 진짜 얻고 싶었던 건 뭐였을까? 나는 그저 하소연할 타인이 필요했던 걸까? 아니면 지금 내 상황에 대한 전문가의 소견이 필요했던 걸까. 어쩌면 내가 그 당시 정말 필요로 했던 건 지금의 내 모습에 대한 위로가 아니었을까. 지금 당신에게 닥친 상황에서 여러 발자국 떨어져 있으려고 하는 것은 또 다른 상처로부터 자기 자신을 보호하려는 당연한 반응이다. 그러니 당신은 잘못한 게 없다. 당신은 나쁜 사람이 아니다. 괜찮다. 다 괜찮다. 결국 이 말이 듣고 싶었던 게 아닐까.


누군가를 어떤 마음으로 대해야 하는지에 대한 정답은 없는 것 같다. 그저 수많은 오답들 사이를 헤매는 우리에게 정말 필요한 건, 때로는 전문가의 명료한 진단이 아니라 당신이 틀린 게 아니라고, 그러니 혼자 아파하지 않아도 된다는 따뜻한 위로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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