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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애송이 Feb 28. 2020

외삼촌의 철학원

1992년 4월 1일 정해진 운명에 대하여

'운명'이라는 것을 믿었던 적이 있었던가. 그저 사랑의 절정기에 이른 연인들이 서로를 정의하는 단어 또는 원하던 것을 운 좋게 이룬 자들이 성취를 극대화하기 위해 내세우는 거대한 포장, 정도가 내게 '운명'이라는 것이 가진 함의였다. 물론 내가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것은 그 함의에 한 가지가 더 추가됐음을 의미한다. 


나의 외삼촌, 즉 나의 엄마의 친오빠는 40여 년의 직장생활을 마무리한 후 10년 간 역학을 공부해 철학원을 차리신 인물이다. 이후 일 년에 한두 번 명절에 외삼촌을 뵐 때마다 몇 번이고 엄마 몰래 내 생년월일을 들이밀고 싶었지만 번번이 실패하며 외삼촌과 그의 철학원은 내 기억 속에서 사라졌다. 그랬던 내가 외삼촌의 철학원 문을 두드리게 된 건 여러 번의 예기치 못한 크고 작은 상실을 경험한 후였다. 


외삼촌의 철학원은 어느 아파트 단지 내 작은 상가 지하 1층에 자리 잡고 있었다. 집에서 버스 1번, 지하철 1번, 또 버스 1번을 타고 장장 2시간을 길 위에서 보낸 끝에 외삼촌을 만날 수 있었다. 두 평 남짓한 작은 공간에는 한자로 쓰인 책들이 가득한 책장과 미니 냉장고, 책상과 그 앞에 놓인 의자 두 개가 전부였다. 방 안을 가득 채운 향 냄새는 마치 동남아 어느 사원에 온 듯한 느낌을 주며 묘한 안도감을 불러일으켰다. 



외삼촌과 단둘이 마주 앉아있는 건 (내 기억 상) 인생 처음이었다. 나이도 어린 게 뭐가 그렇게 궁금해서 왔냐며 웃으시는 외삼촌께 멋쩍은 미소를 지으며 나의 생년월일과 태어난 시를 말씀드렸다. 1992년 4월 1일 오전 6시 5분. 곧이어 나의 탄생과 함께 정해진 운명이 검은색 진한 한자로 프린트되어 나왔다. 정말 저 한자들 안에 나의 지난 고통의 이유와 새로운 미래가 담겨있는 걸까. 외삼촌이 심각한 표정으로 어떤 한자에 동그라미를 연신 치고 무언가 알 수 없는 글자들을 휘갈겨 쓸 때마다 긴장감이 밀려왔다. 얼마의 시간이 지나 종이에서 고개를 드신 외삼촌이 드디어 내게 물었다. "그래, 뭐가 제일 궁금해?" 순간 머릿속이 수만 가지 생각들로 꽉 들어찼다. 물론 답은 하나였다. 


"엄마한테는 절대 말하지 마세요...!!! 사실.. 제가 최근에 진짜 호되게 차였거든요..."  


과연 내가 앞으로 다시 누군가를 만날 수 있을지, 그놈의 결혼이라는 게 내 인생에 있기나 한 건지 알고 싶었다. 그러다 문득 괜히 결혼 못해 안달 난 20대 후반 여자처럼 보일까 노파심에 이직 성공 여부를 황급히 덧붙이는 것도 잊지 않았다. 외삼촌은 내 얘기를 다 듣고 난 후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아까 종이 위에 휘갈기셨던 글자 하나를 조용히 가리켰다. 


'기러기'


무슨 뜻이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ㅇ_ㅇ 정말 이 표정으로) 외삼촌을 보자 그의 입에서 전혀 예상치 못한 말이 흘러나왔다. "올해는 누구를 만나도 다 너를 떠났을 거다."


아. 결국 그럴 운명이었단다. 내가 아무리 더 노력하려고 울고불고 발버둥 쳤어도, 그게 설령 그가 아닌 다른 사람이었다 해도, 결국에는 기러기처럼 다 나를 떠나버릴 운명이었단다. 순간 허무함과 묘한 안도감이 동시에 밀려왔다. 이렇게 되어버릴 줄 미리 알았다면 시작조차 하지 않았을 텐데. 아냐, 어차피 누굴 만나도 다 이렇게 될 내 운명이었던 거야. 깊은 생각에 잠겨 말없이 고개만 연신 끄덕이던 내게 외삼촌이 내 머릿속 말풍선을 읽으신 듯 무심하게 한마디를 툭 던지셨다. 


"네가 뭘 잘못해서가 아니야. 그냥 올해 네 운이 그랬던 거지."


신기했다. 그건 주변 친구들, 정신과 병원 선생님, 좋은 음악과 영화에서 얻었던 것과는 또 다른 결의 위로였다. 이후 나는 핸드폰 녹음기까지 켠 채 낯선 한자들이 품은 나의 운명에 귀 기울였다. 내 사주팔자에 그려진 내 '진짜' 정인의 모습과 결혼하게 될 시기, 심지어 자녀 수까지. 나에게 '진짜'가 다가오고 있으니 '진짜'가 아니었던 것들에 너무 마음 쓰지 말라는 말도 함께였다. 가족이라고 일부러 좋은 말만 해주시는 건가 싶어 질 때쯤, 특출 난 창의력은 없으니 좋은 글을 쓰려면 부단히 노력해야 한다는 팩폭과 정신적인 병을 앓게 될 확률이 높으니 마음에 쌓인 것들을 밖으로 표현해내는 연습을 하라는 날카로운 조언이 이어졌다. 그렇게 나는 한 시간이 넘도록 외삼촌과 마주 앉아 그동안 어디에도 하지 못했던 이야기를 가만가만 펼쳐 보였다. 

 

보너스로 손금도 봐주셨다!


외삼촌의 철학원에 다녀온 지 몇 달이 지났지만 일상 속 크고 작은 순간 철학원의 은은한 향 냄새를, 흰 종이에 새겨진 검은 한자들을, 그 안에 담긴 운명들을 떠올린다. 정말 내가 30대 초반에 속이 깊은 남자와 결혼이라는 걸 하게 될지, 새로운 공부를 위해 해외로 떠나게 될지는 모르겠다. 


아니, 어쩌면 그건 그렇게 중요하지 않을 수도 있다. 그저 인생을 살다 보면 나의 노력만으로는 도저히 이뤄지지 않는 무언가가 있음을, 그 높고 단단한 벽을 마주쳤을 때는 절망하며 주저앉아 우는 대신 '운명'이라는 이름에게 그 탓을 돌려도 괜찮음을, 그리고 또 다른 운명을 따라 발걸음을 옮기면 그만임을 알았기 때문이다. 


이제 나의 운명이 나를 또 어디로 이끌지, 내가 이 운명을 어떻게 이끌어갈지 두고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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