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하루는 놀랍도록 단조로웠다.
최근 코로나 19 사태로 인해 무려 3주 동안이나 재택근무를 했다. 나의 3주 간의 칩거생활은 우리 집에도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쌀과 밑반찬이 무서운 속도로 줄어들었고, 각종 군것질거리가 쌓여갔으며, 집 앞에는 날마다 택배 박스가 도착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엄마의 일상이 바뀌었다.
엄마는 매일 새벽 출근길 지하철역까지 나를 태워다 주곤 하셨다. 집에서 역까지는 버스로 20분이 넘게 걸리는 거리. 피곤한 출근길 차에서 몇 분이라도 눈 붙이고 가라는 마음이셨으리라. 최근 직장을 여의도로 옮기면서 나의 출근 시간은 더욱 앞당겨졌다. 바뀐 나의 출근 시간에 맞게 엄마의 하루도 덩달아 더욱 일찍 시작됐다. 그녀는 새벽같이 일어나 가족들의 아침 식사를 준비하고 나를 출근시킨 후에야 본인의 일터로 나섰다.
하지만 재택근무를 시작하면서 매일 아침 엄마의 출근길을 지켜보는 것은 내 몫이 됐다. 그동안 단 한 번도 보지 못했던 엄마의 아침 출근 풍경, 그리고 퇴근 후의 일상. 나는 그렇게 처음으로 온전히 그녀의 하루를 지켜봤다.
06:20 - 08:20 기상 및 아침 식사 준비
그녀의 하루는 늘 누구보다 일찍 시작됐다. 식구들보다 먼저 일어나 부지런히 아침 식사 준비를 해야 하며 5분이라도 더 자겠다고 몸부림치는 내일모레 서른인 딸(=나)을 몇 번이나 깨워야 한다. 남편의 손수건을 챙겨주고 구두를 깨끗하게 닦아놓는 것도 일과 중 하나. 남편을 배웅하고 세상 게으른 딸(=나)에게 아침과 점심으로 먹을 것들을 알려주고 설거지까지 깔끔하게 마친 후에야 서둘러 출근 준비를 하고 집을 나선다.
08:20 - 15:00 직장
그녀의 직장은 집에서 차로 10분 정도 떨어진 곳에 있는 복지 센터다. 센터를 찾아온 이들을 위한 음식을 만드는 것이 그녀의 일이다. 페이도 많지 않고 꽤나 고된 일이지만 하루 종일 집에만 있는 것보다 훨씬 좋다. 4년 전 20년 가까이 살던 도시를 떠나 새로운 곳으로 이사 온 후 그녀는 한동안 매우 우울해했다. 학교를 가거나 출퇴근을 하며 끊임없이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고 움직이는 우리와는 달리 아는 사람 하나 없는 곳에서 하루 종일 가족들이 집으로 돌아오기만을 기다리는 일상은 그녀의 몸과 마음을 병들게 했다. 그녀는 그때를 생각하면 지금의 힘든 일도 감사한 기회처럼 느껴진다.
15:00 - 19:00 퇴근 후 운동 및 집안일
그녀가 퇴근 후 집에 돌아와 가장 먼저 하는 일은 러닝머신을 뛰는 일이다. 일평생을 마른 체형으로 살아온 그녀지만 나잇살은 어쩔 수 없었다. 체중이 조금만 늘어도 불편해하는 그녀는 매일 30분씩 땀이 날 정도로 높은 강도로 운동을 한다. 운동을 하고 나면 샤워를 한 후 쌓여있는 집안일을 시작한다. 내일모레 서른인 딸(=나)이 아직까지 매일 같이 끌어안고 자는 애착 이불을 빨고, 바싹 마른빨래를 개고, 청소기를 돌리고, 남편이 좋아하는 생태탕을 끓인다.
19:00 - 24:00 남은 집안일과 짧은 휴식
저녁식사를 마친 후에도 집안일은 이어진다. 설거지를 하고, 행주를 삶고, 내일 아침 재료를 미리 준비해둔다. 그날의 집안일이 끝나고 나서야 자신만의 짧은 휴식시간이 주어진다. 제일 먼저 하는 일은 소파 앞의 탁상에 앉아 뒤늦게 신문을 보는 일. 내가 어릴 때부터 아무리 바빠도 세상 돌아가는 일은 알아야 한다고 입버릇처럼 말하곤 했던 그녀다. 점점 노안이 오기 시작하면서 이제 안경 없이는 신문을 보기 힘들지만, 몇십 년간 그러했듯 천천히 신문을 읽는다. 혹 가족들이 늦게 들어오는 날에는 신문을 다 읽고 TV를 틀어놓은 후 소파에 누워 선잠이 든다. 새벽 2시든, 3시든 가족들이 모두 집에 들어온 것을 확인한 후에야 그녀의 하루가 끝난다.
곁에서 지켜본 엄마의 하루는 생각보다 훨씬 분주했지만 놀랍도록 단조로웠다. 친구들과의 맛집 탐방, 요즘 재밌다는 영화 관람, 기분전환을 위한 쇼핑, 취미 생활을 위한 악기 배우기. 나에게는 당연한 일상인 즐거움들이 엄마의 일상에는 그 어디에도 없었다. 이른 새벽부터 그다음 날 새벽까지 엄마의 하루는 자신이 아닌 오로지 가족들을 위해 흘러갔다.
재택근무의 마지막 날 저녁, 술을 마시느라 귀가가 늦는 아빠를 기다리며 소파에 누워 선잠이 든 엄마를 바라봤다. 작은 몸 위로 TV 화면의 불빛이 어지럽게 아른거리는 모습을 보며 자신보다는 가족들을 위해 채워져 왔을 엄마의 수많은 시간들을 생각했다. 내가 일을 하고, 사람들을 만나고, 취미생활을 즐기며 온전히 나만을 위해 살아올 수 있었던 건 그런 나를 위해 쓰인 엄마의 시간들 덕분이었다. 그걸 어렴풋이 알고 있었으면서도 외면했던 순간들이 떠오르자 가슴이 저릿해졌다. 엄마는 그동안 얼마나 많은 낮과 밤을 이렇게 혼자 보냈던 걸까. 그 깊이와 무게가 너무도 아득했다.
그 주 주말, 나는 영화 '작은 아씨들'을 예매했다. "영화 보러 갈 건데 같이 갈래?" 무뚝뚝하게 건넨 나의 말에 엄마는 "무슨 영화인데?" 묻고는 대답도 듣지 않고 들뜬 표정으로 옷을 갈아입을 채비를 했다.
코로나 19로 텅 빈 상영관에는 우리와 친구 사이로 보이는 4명의 할머니들, 혼자 온 여자 관객 몇 명이 전부였다. 영화 시작 전 별 감흥 없이 광고를 보고 있던 나와 달리 엄마는 내내 들떠보였다. 그리고는 갑자기 같이 사진을 찍자며 바꾼 지 얼마 안 된 나의 최신 핸드폰을 가리켰다. 친구들과는 몇 십장을 잘도 찍는 셀카 건만, 엄마와 한 프레임 안에 들어와 있는 그림이 너무도 어색하게 느껴졌다. 엄마는 찍은 사진 모두를 바로 카톡으로 보내달라고 했고, 사진을 보내자 곧 조명이 꺼지며 영화가 시작됐다.
영화를 보는 내내 곁눈질로 엄마의 반응을 살폈다. 아름다운 색감과 따뜻한 이야기로 가득한 영화였지만 한글 자막과 긴 러닝타임이 불편한 건 아닌지 신경이 쓰였다. 하지만 영화가 끝난 후 엄마는 "재밌다"는 짧은 평을 남겼다. (중간에 20분이나 조는 거 다 봤다는 얘기는 굳이 하지 않았다.)
생각보다 크지 않은 엄마의 반응에 '역시 이 정도로는 부족한 건가.' 싶어 조금은 시무룩해진 마음으로 카톡창을 켰다. 그리고 열린 카톡창을 본 순간 누군가 돌을 던진 듯 마음이 '쿵'하고 울렸다. 사진을 보내느라 가장 위쪽에 있던 엄마와의 카톡방을 열자 엄마의 프로필 사진이 좀 전에 영화관에서 함께 찍은 셀카로 바뀌어 있었던 것이다. 이런 카톡 상태명과 함께.
코로나 19가 잠잠해지면 연남동으로 맛집 탐방을 가볼 생각이다. 엄마가 더 자주 더 예쁜 사진으로 카톡 프로필을 바꿀 수 있도록, 단조로웠던 엄마의 시간들이 조금씩 다른 색으로 채워질 수 있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