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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쨌든 Aug 13. 2020

햄, 강렬한 기억과 길지 않은 사연

고속 성장 시대 중산층 음식 자서전 16

실은 나는 지금 친구와 함께 이 글을 쓰고 있다. 무슨 말이냐 하면, 매주 목요일 밤 아홉시에 우리는 메신저로 만나 잠시 대화를 한 다음, 각자의 장소에서 글을 쓰기로 한 것이다. 한 시간 가량 쓰고 나서 서로 읽고 코멘트를 해주기로 했다. 


사실 그녀와 이런 모임을 시작한 지는 오래되었다. 이 과정에 대한 본격적 이야기는 아마 나중에, 나중에 쓰게 될 것 같지만, 오늘은 짧게라도 언급을 해두고 싶다. 


요즘 그녀와 나는 ‘음식’에 대한 추억을 떠올려보고 있다. 따로 또 같이 글을 써온 지도 꽤 되었고, 얼마전부터에는 특히나 같은 주제로 글을 쓰고 있기에, 서로 꽤 영향을 받을 것 같다. 아예 글감, 즉 소재가 되는 음식 자체가 일치하는 일이 생기면 금방 영향력을 깨달을 수 있을 것 같지만, 그런 일은 아직, 지난번의 ‘멸치’에 대한 글이 유일하다. 그녀가 ‘멸치’에 대해 쓰겠다고 말을 하는 순간, 내 머릿속에도 퍼뜩, 미처 생각 못했던 기억이 떠오르며 뭉클해졌다. 


그녀가 쓰는 글의 다른 소재들 역시 내가 늘 먹어온 것들이긴 하다. 그래서 그녀가 무말랭이, 카레, 요구르트, 하는 소재들을 내놓을 때마다 나도 곰곰 생각해보곤 했다. 그러나 대부분의 경우 나에게는 그 소재들로 글을 쓸 만한 추억이 존재하지 않다는 게, 어떻게 보면 신기하다. 왜 늘 누구나 먹는 음식들인데, 누구에게는 거기 얽힌 이야깃거리가 존재하고 누구에게는 없는 것일까. 


사실 누구에게나 특정 음식에 얽힌 기억과 사연은 공평하게 존재할 것이다. 다만 그것이 강렬한 기억이 아니거나, 긴 사연이 아닐 수는 있다. 오늘 쓰려는 ‘햄’에 대한 기억은 강렬하긴 했다. 하지만 너무 짧은 이야기가 될 것 같다. 


초등학교 때 내 짝이었던 무영이가 어느날 점심 시간에 네모나고 길쭉한 햄을 꺼내들었다. 엄마가 바빠서 도시락을 싸주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무영이는 “에휴, 에휴” 한숨을 쉬었다. 그리고 햄의 비닐 포장을 벗기더니 그대로 와그작, 이로 베어 물었다. 반 아이들 전체가 경악하여 그 모습을 쳐다보았다. 


담임 교사도 놀라서, “점심으로 그것만 먹어도 되니? 짜지 않니?” 하고 물었고 무영이는 “네, 괜찮아요.” 하고 덤덤하게 대답한 다음 계속 우적우적 햄을 먹었다. 우리 반 아이들은 점심으로 햄을 통째로 먹는 무영이를 부러워해야 하는 것인지, 불쌍해 해야 하는 것인지 갈피를 잡을 수 없었다.


나중에 무영이의 엄마가 화려하게 차려 입고  학교를 찾아왔다. 무영이의 엄마는 마치 드라마에서처럼 스카프를 휘날리며 교사에게 선물을 전달한 다음, 반아이들에게 활달하게 인사를 하고 돌아갔다. 저렇게 멋져 보이는 엄마라니, 그 점은 확실히 부러워해야 할 부분인 듯했다. 


그러고 보면 무영이는 능글능글하면서도 어른스러운 점이 많은 남자아이였다. 그 당시의 초등생 여자애들이 많이 그랬듯이, 내가 책상 위에 금을 긋고 넘어오지 말라고 표독스러운 척을 하면, 슬프면서도 침착한 말투로, “넌 왜 그런 걸 하니…” 하고 타이르던 아이였다. 나중에 동창 모임에서 얼핏 들은 바에 의하면 스무살 때 교통사고로 죽었다던데, 사실인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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