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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쨌든 Jul 12. 2024

구내식당과 식판의 추억

고속 성장 시대 중산층 음식 자서전 24

학생 식당이나 직원 식당은 대체로 요철로 된 네모난 식판에 밥과 국, 반찬들을 한꺼번에 담아서 먹는 곳이다. 영어로는 canteen이라고 하고 우리말로는 아무래도 ‘학식’이라는 용어가 통용되는 것 같은데, ‘학식’이라고 부르게 되면 직원 식당은 포함시킬 수가 없다. 참 군대 식당도 있구나. 직식, 군식이라는 줄임말도 있을까?


아예 ‘식판 식당’이라는 용어를 만드는 건 어떨까? 식판에 식사를 담아서 내주는 만국 공통? 어쨌든 특유의 식당을 통칭하는 용어가 꼭 존재해야만 한다. 다른 나라는 잘 모르겠지만 우리나라의 식판은 네모난 밥 칸, 둥그런 국 자리, 그리고 반찬 칸 세 곳으로, 획일적으로 구성되어 있다.


요즘에는 아무리 식판 식당이라고 해도 반찬에 ‘주요리’ 하나쯤은 크게 마련하고 자잘한 반찬 세 개를 더해 내놓는다. 그래서 원래 국그릇이 들어가야 할 자리를 주요리가 대체하고 이용자는 한 손엔 식판을, 다른 손엔 국그릇을 조심스레 받아들고 자리로 이동해야 한다. 아니면 밥과 주요리 사이 어정쩡한 공간에 국그릇을 아슬아슬하게 세워두거나.


시대가 풍요로워졌기 때문인지 식판 식당들의 반찬 가짓수가 늘어났으니, 식판 모양을 변형시킬 만도 하건만, 어쩐 일인지 식판의 모양 자체는 절대 변하질 않는다. 아마도 상다리가 휘어져라 차리는 대접의 관습의 연장선일, 식판 구멍이 넘쳐나라 양손에 바리바리 받아들고 가는 모양새가 주는 입장에서도 생색내기 좋고 받는 입장에서도 뿌듯해져서 좋기 떄문인 것 같다.


옛날에 내가 다닌 학교에서 처음 식판 식당을 경험했다. 거기엔 학생 식당이 두 곳이 있었는데 2층은 비싼 식당, 1층은 싼 식당으로 구별되었다. 2층의 비싼 식당은 식판을 사용하지 않았고 1층의 싼 식당만 식판에 음식을 담아주었다. 아마 천원 정도의 차이였을 것이다. 그리고 1층의 저급 식당은 정말 질이 좋지 못해서 돈 없는 학생들도 잘 가지 않던 곳이었지만 그럼에도 사람은 늘 북적이는 이유가 있었다. 선배들이 후배들을 사줄 때 가는 곳이었기 때문이다.


그때의 우리에게는 길에서 점심시간에 후배가 선배를 만나면  무조건 밥을 사줘야 하는 희한한 풍습이 있었다. 그래서 선배들은 피해다니기도 했고 그러다가 붙잡히면 어쩔 수 없이 사주기도 했지만, 간혹 선배 중에는 후배들 강의실 앞에 일부러 척 나타나서 한 무리를 이끌고 개선 장군 같은 표정으로 1층 식당으로 향하는 경우도 있었다. 재미있기는 했지만 좋아하는 식당은 아니었다.


영원히 끝날 것 같지 않던 그 시절이 당연히 오래 가지는 않았고 졸업하고 취직한 다음부터는 식판 식당에 갈 일이 별로 없었다. 나는 직원 식당이 없는 중소기업에 주로 다녔기 때문이다. 하지만 휴일이나, 외근을 나가거나, 퇴사하고 다른 직장을 구할 때까지 백수 기간 등에는 도서관이나 관공서의 식판 식당을 가끔 가며 특별한 추억에 젖곤 했다. 심지어 어느 직장에 근무할 때는 근처 다른 기업체의 친구에게 식권을 받아서 거기 직원 식당을 이용한 적도 있었다.


그러면서 나는 학생 때와 달리 식판 식당을 좋아하게 되었다. 어쩌면 직원 식당이 있는 대기업에 다니지 못하는 보상 심리가 작동한 건지도 모르겠다. 식판 식당을 적극 찾아다니며 장점을 설파하게 됐다. 다른 직원이나 친구들에게도 권하면서 말이다. 무엇보다 식판 식당은 식품을 전공한 영양사가 따로 있기 마련이고, 따라서 일반 식당보다는 영양 균형을 고려해서 식단을 짜준다. 간편한 식기 형태와 셀프 서비스도 내가 선호하는 유형이다. 값이 싸다는 건, 진짜, 솔직히, 나의 선호 이유가 아니긴 하다. 변명처럼 들리겠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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