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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쨌든 Aug 22. 2024

내맘대로의 음식점

고속 성장 시대 중산층 음식 자서전 25


점심 약속 때 만나서 어딜 갈까 질문을 받으면, 간혹 나는 음식의 종류 대신 식당의 종류로 답을 한다. ‘사람 없는 식당’이라고 말이다. 가리는 음식이 없고 다양하게 먹는 걸 좋아하니까 딱히 뭘 먹어도 상관 없을 때가 많지만, 사람 많은 식당을 싫어 하는 취향은 확고한 편이라서다. 많은 사람들이 이른바 ‘맛집’에 가서 줄서서 먹기를 불사하지만 정말이지 나는 질색이다. 물론 맛이 좋으면 좋기야 하겠지만 거기서 얻는 만족보다는  쾌적한 식사로 인한 만족이 더 크니까.


또 한 가지 식당에 대한 남다른 취향이 있는데,  이건 지인들에게도 잘 밝히지 않는 편이지만, 그건 바로 ‘내 맘대로 먹는 것’이다. 그래서 식당 주인이 따로 적어놓은 식사법이나 이렇게 저렇게 먹어라 하는 조언을 따르기 싫어하고 간혹 약간의 조리 과정이 손님에게 넘어오는 불고기나 샤브샤브 등의 메뉴일 때는, 편한 자리라면, 그야말로 내멋대로 먹을 때가 많다. 밑반찬을 불판에 올리거나 국수부터 삶아버리거나…


그러다보니 차라리 샐러드바나 셀프 반찬 코너가 있는 식당을 선호하는 건 물론, 한동안은 뷔페 애호가로 지냈다. 그런 곳에 가서도 국수용 참기름을 가져와 회에 뿌려먹고 초밥용 간장을 가져다가 샐러드에 뿌려먹고, 저 구석 어딘가에 장식용으로 놓인 채소를 쓸어다가 뜨거운 된장국에 잠시 넣었다가 먹는다든가 하는 내맘대로 취향, 라는 명목의 민폐를 끼치곤 했다. 그러면서 뿌듯함과 만족감에 젖었고 말이다. 


속으론 그래도 겉으로 남에게 자랑스레 말하긴 어려운  그런 취향을 처음 자각했던 건, 무려 스무살 때 학교 식당에서였다. 내가 다니던 학교의 학생 식당은 당연히 대부분 저렴한 식판 식당이었지만, 그렇지 않은 특이한 곳, 꽤 비싼 곳이 한 군데 있었다. 거기는 밥을 비롯해 주메뉴와 밑반찬을 모두 따로 골라 각각 값을 계산하는 카페테리아였다. 비록 동그란 플라스틱 접시에 음식이 담겨 있을망정, 돈 없는 학생들 처지에선 큰맘먹고 데이트중인 커플들이나 가는 곳이었다. 


처음 부잣집 언니가 후배인 우리를 데리고 그 카페테리아에 갔을 때, 이것저것 신나서 고르면서도 약간의 눈치를 보아 자제했는데 엄청난 금액이 나오는 걸 보고 내심 쫄았더랬다. 물론 우리의 물주는 빨간색 장지갑을 척 열고 만원짜리를 척척척 꺼내 값을 치렀지만 말이다. 그후로 그곳은 내가 제일 좋아하는 학식이 되었다. 물론 자주 가진 못했고 가더라도 몰래 혼자 가곤 했다. 그런데 다른 학생들도 나처럼 그 식당을 동경하는 건 아니었다. ‘비싸기만 하고 맛은 다른 학식과 별다를 바 없다’고 생각하는 아이들도 많았다. 호응을 별로 얻지 못해서인지, 나 같은 소수팬에도 불구하고 그 카페테리아 식당은 오래 영업하지 못하고 문을 닫았다.


그럼에도 나는 참 그 식당의 찐팬이었던 것 같다. 학창 시절 잠시 다녔던 그 추억이 뭐라고, 이후로 오랜 세월을 살아오면서도 그런 방식의 식당을 보면 반드시 그때 그 식당 생각이 났다. 처음 나의 음식점 취향을 알려준 곳? 나에게 맘대로 먹을 자유를 허락해 주었던 곳? 아니면, 내맘대로 되는 게 그다지 많지 않은 세상에서, 자유(?) 짜릿함을 느끼게 해주었던 곳?


그런데 생각해보면 음식이란 게, (의식주 중에서) 다른 것들보다 나눔의 덕목이 중요한 거 아닐까? 왜 난 하필 일찍부터 이런 쪽에 꽂혔는지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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