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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우은우 Nov 19. 2019

내 원고는 죄가 없는데...

어느 초보작가의 출간미수기

   이게 얼마만에 적어보는 브런치 글인지. 오늘은 오랜만에 근황도 알릴 겸 또 신세 한탄(?)도 한번 해볼 겸 컴퓨터 앞에 앉았다. 지난 몇달간 참으로 많은 일들이 있었다. 오늘은 그 이야기들을 좀 늘어놓아 볼까 한다.


   지난 2016년 봄부터 2017년 가을까지 약 1년 반 동안 우리 가족은 남편의 유학 문제로 도쿄에서 생활했다. 외고를 나와 대학에서도 영어를 전공했고 평생(?) 영어로 밥벌어먹는 일을 해온 나에게 일본이란 참으로 낯선 세상이었다. 영어 하나 잘하면 전세계 어디를 나가도 고생하지 않고 잘 살 수 있을거라 생각했었는데 일본에서는 정말 택도 없는 소리였다. 일본어 한마디 하지 못했던 나는 맨땅에 헤딩하는 기분으로 수많은 난관들을 하나하나 헤쳐나가야 했고 그 과정 속에서 일본어도 배우고 또 일본이라는 나라에 대해서도 많이 배울 수 있었다. 그 중 특히나 압권은 아이들을 보냈었던 일본의 한 구립유치원이었다. 내가 생각했던 것과는 너무도 달랐던 그 유치원에서 하루하루를 보내며 나도 남편도 아이들도 잊지 못할 추억들을 수없이 만들었다.


   한국으로 돌아온 나는 그 유치원에서의 추억들에 대해 글을 써보고 싶어졌다. 그냥 끄적끄적대는 수준이 아니라 정말 제대로 된 글을. 그래서 브런치에도 가입했다. 진지한 마음으로 써보고 싶어서. 또 출판의 기회를 제공해주는 브런치 프로젝트에도 도전해 보고 싶어서. 차곡차곡 한편한편 글을 써내려가며 그때의 추억들을 다시 한번 돌아볼 수 있어 제법 즐거운 시간이었다. 그 중 몇편은 브런치 메인에 오르기도 해서 엄청난 조회수를 경험해 보기도 하고 또 꽤나 많은 수의 독자를 확보하기도 했다.


   물론 기다리고 기다렸던 브런치 프로젝트에도 응모했다. 그해의 브런치 프로젝트는 다른 해와 달리 유독 심사기간이 길어 석달이 넘어가던 그 긴긴 시간을 가슴 졸이며 기다려야 했던 기억이 난다. 결과는 물론 낙방! 하긴 그 쟁쟁한 작품들 중에서 혹여라도 내 작품이 선택될 수도 있다는 기대를 한 것 자체가 무리였을 수도.


   실망은 잠시 뒤로 하고 곧 나의 출판사 투고 전쟁이 시작되었다. 이 출판사 저 출판사 가리지 않고 원고와 기획서를 넣기 시작했다. 첫책을 낼 때와 달리 (사실 나는 이전에 책을 한권 낸 경험이 있다. 투고를 하다하다 지쳐 결국은 자비로 내고 말았지만.) 꽤 많은 출판사들로부터 좋은 평을 들었다. 상당히 흥미롭고 완성도도 높은 원고라고. 그냥 두루뭉술하게 좋다는 게 아니라 좋은 점들을 콕콕 집어 설명까지 해주었던 것을 보면 그냥 형식적으로 던진 말들은 아니었던 것 같다. 하지만 그 뒤에는 항상 이런 말이 따라왔다. 그렇지만 우리 출판사에서는 출간이 어려울 것 같다고, 더 좋은 출판사를 만나 멋진 책으로 출간되기를 바란다고.


   한 50개 정도의 출판사에 기획서를 보내고 계속되는 거절 메일에 지쳐가고 있던 어느 날이었다. 밤 9시쯤 한참 아이들을 재울 준비를 하고 있는데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걸려왔다. 이 시간에 도대체 누구일까 하는 마음으로 전화를 받았는데 놀랍게도 어느 한 출판사의 대표님이셨다. 그분은 나와 몇마디 인사정도만 나눈 뒤 다짜고짜 이렇게 말씀하셨다. '원고가 맘에 들어요. 저희랑 하시죠.' 순간 머리속이 멍해졌다. 뭐랄까 좀 비현실적으로 느껴지기도 하고 또 너무 다짜고짜 바로 계약을 하자고 하시니 당황스럽기도 하고 말이다.


   그 전화를 받고 며칠 뒤 강남의 한 카페에서 그 대표님을 만났다. 규모는 크지 않지만 탄탄한 출판사였다. 무엇보다 이름을 대면 다들 알만한 아주 유명한 육아서를 출간하는 곳이었다. 대표님은 내 원고를 아주 맘에 들어하셨고 아니나 다를까 그날 그 자리에 바로 계약서를 들고 나오셨다.


   공교롭게도 그 날은 내 생일이었다. 그것도 만으로 마흔살이 되는 생일. 하던 일들을 다 그만 두고 전업주부이자 엄마로 살아온지 10년 가까이 되는 시간이 흘렀는데 마흔이라는 문턱에 들어서던 바로 그 날 마법처럼 이렇게 새로운 기회가 찾아오다니 참으로 묘한 기분이 들었다. 그렇게 나는 설레는 마음으로 계약서에 도장을 찍고 계약금까지 입금받은 후 본격적인 출간 준비에 들어갔다.


   작은 출판사였기에 대표님이 직접 내 원고의 편집자가 되어주셨다. 프로 편집자, 그것도 베테랑 편집자분과 함께 작업한다는 것은 꽤나 많은 것들을 배울 수 있던 시간이었다. 사실 나는 처음에 브런치에 글을 쓸 때부터 책을 내는 것을 목표로 하여 내딴에는 무척이나 진지하게 글을 썼기 때문에 내 원고 자체가 이미 완성된 상태라고 생각했다. 더 이상 손볼 것 없이 완벽한 원고라고. 이 상태로 출간하면 될거라고. 하지만 편집자분의 의견과 조언을 들어가며 다시 글을 쓰다 보니 생각지도 못했던 새로운 원고들이 줄줄이 이어졌고, 기존의 원고들도 훨씬 더 짜임새있게 수정되었다. 점점 더 탄탄하고 매력적으로 변해가는 내 원고를 보며 출간에 대한 설레임도 점점 더 커져가고 있었다.


   그런데 세상일 모른다고 했던가. 정말 상상도 하지 못한 복병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한참 원고 수정작업이 진행되고 있던 그때 일본의 수출규제 사건이 터진 것이다. 한일관계는 끝을 모를 정도로 바닥으로 치닫기 시작했고 내 책의 출간에도 당연히 빨간불이 켜졌다. 이런 분위기에서 일본 유치원에서 보낸 아름다웠던 추억들에 대한 이야기라니 내가 생각해도 안될 말이었다.


   원래 10월 출간을 목표로 했었지만 도무지 언제 책을 낼 수 있을지 알 수 없는 상황이 되었다. 몇달간 대표님과 걱정의 말을 주고받는 메일들이 계속 오고가던 중, 결국 얼마전 나는 이런 메일을 받게 되었다. 정말 미안하지만 계약을 취소했으면 한다고. 출간이 쉽지 않을 것이라 예상은 했지만 그래도 그저 출간일이 미뤄지는 정도로만 생각했지 계약이 해지될 거라고는 진심 조금도 상상하지 못한 일이었다. 하지만 출판사의 사정도 이해 못하는건 아니기에 나는 결국 현실을 받아들일 수 밖에 없었다.


   상황이 이렇게 되고 보니 마음이 참 복잡하다. 이제 내 원고는 어떻게 해야 하는걸까? 지금 이 상황에서 새로운 출판사를 찾는다는 것이 과연 의미가 있을까? (실제로도 관심을 보이는 또다른 출판사가 있지만 이곳 역시 출간시기에 대해서는 전혀 예측을 하지 못하고 있다.) 일본에서의 좋았던 기억들을 담은 책은 언제쯤 되면 출간이 가능해질까? 가능해지기는 할까? 이대로 내 원고는 그냥 영영 묻어둬야 하는 것일까?


   내 원고는 죄가 없는데...

   어쩌다가 계약까지 해지당하는 처지가 된건지...


   정말이지 아베가 너무도 싫어지는 요즘이다. 에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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