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에서는 무모한 일이라고 했지만
엄마를 집으로 모시는 그 과정은 기적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한 달 반이 넘었네)...
엄마는 매우 건강하시고 컨디션도 더 좋아지셨다는 거^^
엄마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이 지켜주시고 함께하셨다고 밖에 말할 수 없다.
그래서 난 무척이나 하나님께 감사하다.
하지만
중환자가 요양병원에서 집으로 오는 일은 굉장히 힘들고 어려운 일임은 분명했다.
첫 번째. 영양소가 골고루 들어간 삼시 세 끼를 준비
둘째. 간호사들이 체크해야 했던 당검사와 혈압검사
셋째. 하루에 30개도 넘는 약을 제때 드리는 것
넷째. 엄마가 필요한 소품과 비품 챙기기
다섯째. 엄마가 편하게 지내실 수 있는 환경 만들기
등등...
몸이 열 개라도 모자랄 판이었다.
가장 큰 문제는 새로 만난 여사님과의 호흡!
기존에 2년 반을 함께 했던 여사님과 헤어지고,
새로운 24시간 상주 요양보호사님을 만나니
엄마도 매우 긴장하셨고
나 또한 큰 스트레스였다.
그럼에도 그 많던 걱정들이 술술술 잘 풀린 것은,,,
내가 모든 일을 계획했지만. 그 뒤에서 모든 것을 도와주신 하나님이 계셨다는 것이다.
엄마의 첫마디는
엄마의 시선으로 보이는 아빠의 웃고 있는 영정사진을 보고 아빠를 그리워하시는 말이었다.
사실...
엄마는 2021년 1월 25일 이후 아빠를 보지 못하셨다.
엄마 쓰러지시고 한 달 만에 심근경색으로 천국에 가셨기 때문이다.
내가 누누이 아빠는 천국에 가셨다고 했지만, 엄마는 그 말이 피부에 닿지 않으셨던 것.
아빠가 있어야 할 그 자리에는 영정사진이 있고,
아빠의 옷과 책들과 모든 물건은 내가 "굿윌스토어"라는 곳에 기부를 했기 때문에
남편이 없는 이 집이 매우 낯설었을 것이다.
엄마가 웃으면서 내 손을 잡아주시는데...
안 울기로 맘먹었지만. 또다시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엄마 눈에는 아직도 내가 어린아이로 보이시기 때문에... "아가"라는 말을 늘 쓰신다.
예전엔 그렇게 듣기 싫었던 "아가..."라는 말을 다시 듣게 되니... 이 상황이 너무 감사했다.
침대에 누워서,,, 오른손으로 나를 쓰다듬어 주시면서... 계속 고맙다고 고마다고 고맙다고 하시는데...
조금 더 집으로 모실걸...이라는 후회
그러나 지금부터라도 잘해드리고 싶은 마음이 더 많이 생겼다.
내가 바라고 바랬던 엄마와의 첫날은...
눈물 콧물 그리고 웃픈 웃음으로
이렇게 시작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