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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TYGRM Apr 23. 2019

아뜰리에 레리치

Lerici Atelier

기술과 예술은 그리 멀지 않은 단어입니다. 숙련공artisan과 예술가artist의 어원인 art는 원래 기예와 그 솜씨를 이르는 말로, 르네상스 이전까지는 같은 단어였죠. 현대 예술은 지적 창작물로서의 예술을 기술보다 높게 보고 구분하지만, 숙련된 기술은 여전히 경탄스럽고, 그 집요함은 예술과의 구분을 어렵게 합니다.  

취재 김준기 (Untrend)







어떤 이들에게 의식주는 단지 입고 먹고 거하기 위한 수단입니다. 언젠가부터 편한 옷, 똑같은 옷만 입는 우리의 아버지들도 아마 대개는 비슷한 관점을 유지하고 있을지 모릅니다. 생활에 필요한 최소한만 있으면 충분하며, 일정 가격 이상은 모두 사치이고 낭비이니 지양해야 한다고요. 

하지만 우리는 생각보다 낭만적으로 살아왔습니다. 생존이 절실했던 때부터 동굴에 웅크리고 앉아 공예를 발전시켜 왔으니까요. 도구를 만들고 그림을 그리는, 그 의미 없는 기술들이 우리를 생존으로부터 한 걸음, 나아가게 했습니다. 오늘의 풍요와 안전은 그 의미 없는 기술들 덕분이죠. 

물론 인간다운 삶을 만드는 것은 물질만이 아닙니다. 그러나 오로지 관념론적 태도만이 우리 삶을 지배하도록 두어서도 안됩니다. 유물론적 한계를 인지하되, 좀 더 균형 잡힌 태도로 세상을 바라보는 태도 또한 필요합니다. 아름답고 풍요로운 삶은 죄가 아닙니다, 그 본질이 순수한 행복에 있다면 말이죠.

처음 접근은 단순했습니다. 금욕적인 우리 아버지들에게, 새삼스럽게 옷입기의 가치를 환기하고 또 다른 삶의 즐거움을 알려드릴 수는 없을까. 그런데, 서울의 최고급 테일러 숍을 꼽을 때 항상 언급되는 비스포크 브랜드, 레리치에 이 질문을 했을 때 뜻하지 않은 크기의 답변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멋내기는 개인의 역량이고 내면의 표현입니다. 그건 누가 가르쳐 줄 수 있는 문제가 아닙니다. 패션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이른바 '옷 입는 법' 같은 콘텐츠를 원한다면, 죄송하지만 인터뷰가 어렵습니다." 



메이커들은 만들기를 숙명처럼 받아들인 사람들입니다. 그들의 자존심은 천금을 가지고도 살 수 없지만, 때로 가만히 진심을 듣는 것만으로도 충분하죠. 사진제공 레리치



옷의 본질

장인이란, 경력이 많고 실력이 뛰어난 기술자를 이릅니다. 언어는 애써 아티스트와 아티산을 구분해 내죠. 하지만 사람은 경험을 통해 정신적 성장을 거듭하는 동물입니다. 오랜 시간 한 분야에 몰두하다 보면, 어떤 사람들은 본질을 꿰뚫어 보는 깨달음 같은 것을 발견하기도 합니다. 이런 이들은 정련된 기예를 바탕으로 새로운 것을 창조하고, 복잡한 생각을 일관된 철학으로 다듬어 냅니다. 아티산과 아티스트의 경계는 그렇게 무너집니다. 

레리치가 단순히 맞춤 정장을 잘 만드는 테일러라면, 이들의 옷 한 벌 가격은 납득하기 어려울지도 모릅니다. 가격에 대한 기준은 서로 다르니까요. 하지만 이들의 옷은 그저 숙련된 기예와 정성을 투입한 생산품으로만 보이진 않습니다. 차라리, 디자인에 대한 오랜 고민의 결과물이자 철학을 표현하는 수단으로 보는 것이 좀 더 가까울 것 같습니다. 굳이 스스로 예술이라 치장하지 않을 뿐, 이미 이들은 단순한 생산 공예의 수준이 아닙니다.


"멋은 비싼 옷이나 장신구, 이런저런 표현법이나 기교로 표현하는 것이 아닙니다. 어디까지나 내면적인 존재감이 자연스럽게 배어 나와 형성되는 거죠. 그러니 내가 옷을 한다고 누군가에게 멋 내는 법을 가르친다는 건 어불성설이에요. 옷입기는 구매나 유행, 소재감, 색깔의 매칭 같은 단순한 이야기가 아닙니다. 어떤 가치를 선택하느냐의 문제이고, 결국 당신이 어떤 사람인가에 대한 질문이에요." 


보통 우리는 옷을 통해 '멋'을 내려고 합니다. 더 세련되고 더 트렌디하게, 더 부유하게 보이려 하죠. 그래서 브랜드의 가격과 유명세, 색채나 화려함 등 본질적이지 않은 것에 집중하게 되고, 점점 나를 실제보다 더 중요하게 나타내는 '과시'에 몰두합니다. 하지만 내 모습과 나에 대한 고민이 없는 멋내기는, 머잖아 '멋을 낼수록 멋이 안 나는' 모순에 빠지게 됩니다.  

레리치에 의하면, 그런 옷입기란 허세입니다. 나를 실제보다 더 중요하게 보이려는 건, 나를 있는 그대로 드러내지 못한다는 뜻이고, 바꿔 말하면 나를 존중하지 않는 셈입니다. 우리의 옷입기가 꾸밈과 허세에 치중할수록, 남에게 어떻게 보이느냐가 더 중요해지고, 나보다 옷이 더 중요해집니다. 그때부터 옷입기의 주체와 객체가 뒤바뀌고, 나만의 분위기와 존재감은 사라지게 되죠. 그러니 제대로 된 옷입기란 먼저 나를 알고 이해하는 것에서부터 시작됩니다. 

이런 모순점에 대해 고민하던 대철 씨는 오랜 서양 격언에서 힌트를 얻습니다. 서구인들은 오랫동안 "The perfection of art is to conceal art(완벽한 예술은 예술을 숨기는 것)"이라고 말해왔습니다. 다수의 문헌이 로마의 웅변가 마쿠스 퀸틸리아누스Quintilian의 말로 여기고 있으니, 꽤 오랜 시간 서구의 공예와 디자인에 영향을 준 생각입니다. 어쩌면 우리가 동경하는 이탈리아 특유의 스프레짜투라sprezzatura 같은 태도도 이런 생각의 한 갈래일지 모르죠. 

예를 들어, 타이포그래피를 생각해 봅시다. 인쇄용 글자의 존재 목적은 읽히는 것입니다. 사람의 눈이 오랜 시간 쉽고 빠르게 읽을 수 있도록 도와주는 디자인이 타이포그래피의 본질이죠. 편집에 따라 장식성이나 힘, 유려함 등 다른 요소가 부각될 때도 있겠으나, 이런 요소가 본질을 해쳐서는 안 됩니다. 그러니 좋은 타이포그래피란, 읽기라는 주체에 온전히 봉사하는 디자인입니다. 

그렇다면 이제 자연스럽게 이런 궁금증이 생길 차례입니다. 옷이 사람에게 온전히 봉사하려면, 테일러는 어떤 옷을 어떻게 만들어야 하는 걸까요? 수많은 테일러 사이에서 레리치가 돋보이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허명욱 작가가 본 레리치의 작업. 실제 옷을 뜯어서 안쪽을 보면, 무수히 많은 바느질이 복잡하게 얽혀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사진제공 레리치




레리치가 옷을 만드는 방법

"우리 몸은 복잡한 곡선과 곡면으로만 이루어진 입체예요. 옷의 본질은 우리 몸을 감싸는 것인데, 테일러가 옷을 생각 없이 만들면 그 옷은 사람에게 제대로 봉사하지 못해요. 저희가 생각하는 맞춤옷이란, 몸의 입체감을 살리는 옷입니다. 문제는, 직물이 반듯한 평면이라는 거예요. 평평한 직물을 가지고 우리 몸의 곡면을 어떻게 표현할 것인가, 상업적인 옷 만들기에 사용되는 어떤 기술을 사용해도 이 명제는 완벽하게 달성할 수가 없어요."


만약 대철 씨가 그저 '무수히 많은 손바느질 때문에 비싼 옷'을 말하고자 한다면, 이런 글은 불필요합니다. 글 또한 내용에 봉사하는 수단이니까요. 하지만 대철 씨는 레리치를 통해 본질에 온전히 봉사하는 기술을 말하고자 합니다. 기실, 많은 양장 메이커와 테일러들이 손바느질을 위해 손바느질하는 현실입니다. 어느새 '한 땀 한 땀'이란 표현은 누구나 부담 없이 가져다 쓰는 당연한 과장이 되었고, 이제 아무도 이런 표현에서 감동을 받지 않습니다. 




"손바느질을 한다면 반드시 이유가 있어야 합니다. 레리치가 손바느질로 옷을 만드는 이유는, 단지 그래야 했기 때문이에요. 그렇게까지 하지 않아도 목적을 달성할 수 있다면 이건 불필요한 고생이죠. 대부분의 테일러들이 보이는 부분만 손으로 꿰매서 손바느질을 보여주고 마는 게 현실이에요. 하지만 입체적인 옷을 만들려면, 사실 보이지 않는 부분이 중요합니다. 일정한 방향으로 일일이 손으로 당겨 꿰매면서 바느질의 그물망을 만들어야 비로소 입체적인 옷을 완성할 수 있습니다."


레리치가 만든 옷의 진가를 제대로 보려면, 옷을 뜯어서 속을 들여다봐야 합니다. 그걸 잘 보여주는 것이 허명욱 작가의 작품입니다. 복잡하게 쪼개진 본과 그물처럼 얽힌 바느질은 결코 장식이나 연출이 아닙니다. 무수히 많은 바느질의 각도와 그것이 정렬된 방식, 여러 갈래로 잘려 붙은 본의 절개 등, 이 모든 것이 신중하게 연구하고 계산한 것입니다. 손으로 실을 당기면서 팽팽한 장력을 만들고, 이 힘들을 면에 조밀하게 쌓아, 얇은 옷감들이 비로소 피부와 가장 유사한 면을 만들도록 말이죠. 

우리는 이런 사진을 보며 막연하게 그 작업의 노고와 가치를 짐작할 뿐이지만, 이런 생각을 실물로 구현하기까지 감히 상상할 수 없는 노력과 의지가 필요했을 겁니다. 이게 단순히 바늘을 수천수만 번 꽂다 보면 우연히 달성되는 일은 아닐 테니까요. 바늘을 넣는 각도와 감는 방법도, 일정하게 힘을 유지하며 당기는 손끝의 움직임도, 필요한 곡면의 넓이와 곡률을 구현하기 위한 최적의 침 간격도, 모두 직접 해보고 알아내야 합니다. 그 흔한 돈을 벌기 위해서, 대체 누가 이렇게까지 공부를 한단 말입니까. 

때로 우리는 너무 무심하고, 경박합니다. 뭐든 쉽게 이해하려 하고, 간편하게 가지려고 하죠. 그런데 정말, 돈이면 뭐든 가능한가요? 그 한 땀 한 땀, 충분히 비싸기만 하면 문제없는 걸까요? 누구나 자기만의 가격을 가지고 있으니까? 욕심이 부끄러워지는 건 이런 순간입니다. 어느새 손바느질은 그저 비싼 가격을 합리화하는 수단이 됐고, 우리는 그 목적을 잊어버린 지 오래입니다. 누군가는 거기에 꿈을 걸고, 온 힘을 다해 살아내는 중인데 말이에요. 

순수하게 아름다움을 느껴봅시다. 레리치를 방문하면, 김대철 대표가 매니저로써 마주 앉아 직접 상담을 합니다. 그가 입고 있는 옷이 레리치가 그려낸 대철 씨의 몸입니다. 시선이 떨어지는 어디에도, 그의 이야기에 거슬리는 디테일은 발견되지 않습니다. 옷감 전체가 부드러운 양감을 만들어 내고, 자유롭게 그려진 선들이 일정한 곡면을 따라 통일감 있게 움직입니다. 대철 씨가 움직일 때마다, 옷 전체가 동시에 자연스럽게 따라갑니다. 그는 정말로 우아해 보입니다. 






진심의 힘, 레리치의 가족들

우리는 의심하는 동물입니다. 부끄러워할 필요는 없습니다. 의심하고 회의하는 우리의 습관이 때로 불신과 반목을 만들기도 했지만, 한편으로 혁신과 진보를 만들어 온 원동력이기도 하니까요. 인류가 이룩한 저 의심의 탑을 보세요, 그것은 과학이라는 얼굴을 하고 있습니다.

레리치의 이야기는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비현실적입니다. 충분히 설명을 듣고, 그 작업물을 찬찬히 살펴보면, 그 가치에 대해 납득하지 않을 수 없긴 합니다. 하지만 대체 어떻게 이런 작업이 가능하단 말인가요. 이 대목에서 대철 씨는 복잡한 표정을 보여 줍니다. 그렇습니다. 현실은 누구에게나 고단한 법입니다. 


"세계 최고의 테일러라 해도, 이런 방식(아뜰리에 공정)으로 만들 수 있는 옷은 결코 많지 않습니다. 숙련공 한 분이 아침 8시부터 저녁 8시까지 꼬박 작업해도, 한 달에 세 벌 이상 만드는 건 무리예요. 제작품의 품질을 유지하는 문제, 직업으로써 현실적인 노동 강도까지 고려하면, 월평균 두 벌 반 정도가 최대 생산량일 겁니다."





레리치는 벌써 14년 차입니다. 소속된 장인들도 하나같이 소공동에서 한때 내로라하던 옷쟁이들입니다. 한국에 실력 있는 양장점들이 아주 없었던 건 아닙니다. 다만 맞춤양복이 공장화를 통해 대중화되면서, 이런 옷 만들기 방식을 유지하는 것이 어려워진 것뿐이죠. 저가 맞춤복들이 시장을 점령했을 때, 레리치의 운명은 자연스럽게 정해졌습니다.


"그냥 손으로 만들면 좋은 거 아닌가, 정도로 생각하는 한, 우리 럭셔리 시장은 제자리걸음일 겁니다. 유럽에서는 이런 아틀리에 공정을 따로 구분해요. 그들은 예술적인 옷에 충분한 가치를 지불할 준비가 되어 있죠. 레리치가 유럽 본토를 목표로, 아니, 적어도 일본 최고만큼은 하겠다 큰소리를 치고 있지만, 사실 적정 가격에 대한 고민은 많아요."


선뜻 말하기 힘들 정도로 고가인데, 공방을 운영하기에도 빠듯해 보입니다. 적정 가격의 절반도 못 받는 것이 우리 시장의 현실이거든요. 그러고 보니 정작 신기한 건, 레리치의 방향에 공감하고 함께하는 수많은 경력 장인들입니다. 자칫 현실을 이유로 고된 노동과 자랑스러운 경력의 가치를 깎는다고 여길 수도 있으니까요. 레리치의 힘은 여기서 나옵니다. 


"저희 공방에 70대 장인 한 분이 일하고 계세요. 벌써 경력만 40년이 넘으신 분인데, 이 분이 얼마 전에 이탈리아 유명 공방을 자비로 다녀오고 싶다고 하시더라고요. 여전히 갈증이 있으신 거예요! 다른 걸 다 떠나서, 그런 열정은 그 자체로도 멋지다고 생각해요.

사실 레리치의 옷 만들기는 경력자분들께도 쉽지 않아요. 많은 분들이 저희 공방에 오셨다가, 현실적인 고민 때문에 떠나기도 해요. 재미있는 건, 다시 오시는 분들이에요. 레리치에서의 짧은 경험이 안에 있던 열정에 불을 댕겨버리는 거죠. 다른 곳에서 이렇게 작업했다간, '너 혼자 예술하냐'는 핀잔을 듣기 십상이거든요." 


우리는 으레 열정을 찬미하지만, 정작 현실에서 만난 열정가에게는 어림없는 소리라며 잔인하게 찬물을 끼얹곤 합니다. 정신 차리라는 훈계 없이, 막연하게 꿈을 말할 수 있는 것만으로도 감사한 지경이죠. 그러다 보니 자존심이란 것도 귀해져서, 이제는 억만금을 주고도 찾기 힘들게 되어 버렸습니다. 사람들 속에 있으면서도 외롭다는 느낌을 떨칠 수 없는 건, 이해받지 못한 고통 때문일 테죠. 

그런 면에서 레리치는 진짜 가족보다 더 가족 같아 보입니다. 함께 공명하며 꿈과 열정을 함께하는 사이, 오랜 시간 한결같이 쌓아 올린 신뢰라면, 피보다 진할 수 있지 않을까요. 처음 본 레리치의 지붕이 참 든든해 보입니다. 




Lerici Atelier, 청담동 10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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