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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언트렌드 Jan 30. 2020

어스와이즈 휴먼으로서의
Geo Sapiens

지속가능한 경제를 만드는 것에 대하여

Geo sapiens : “EarthWise” Humans

전 지구적 지혜, 지리적 인간

지속가능한 경제를 만드는 것에 대하여

Martin Ogle (2019.7.24) https://www.ases.org/geo-sapiens-earth-wise-humans/

번역 언트렌드



1758년, 우리가 스스로 "지혜로운 사람"이라고 부르기 시작한 이후로, 우리는 인간에 대해, 또 지구와 인간의 관계에 대해 많은 것을 발견하고 또 배워가는 중이다. 최근 수십 년 동안, 과학계는 이 행성을 단일한 생태계로 묘사하고 있다. 암석과 대기, 물, 그리고 인간을 포함한 유기체들이 공진화한다는 의미다. 이것은 영국의 과학자 제임스 러브록(James Lovelock)의 독창적인 생각으로, 이른바 '가이아 가설'의 핵심이다. 


이후 러브록에게 영감을 받은 과학자들의 수많은 '가이아적' 발견들이 통합되면서, 20세기 후반 '지구과학'은 이제 '지구계 과학(Earth Sytem Science)'으로 진화하게 된다. 현재 지구과학과 기후과학 분야에서 연구된 모델들은, 이렇게 지구를 단일 생태로 보는 개념에 근거하고 있다. 


그러나 이 새로운 이해는 아직 다른 분야에 제대로 연결되지 못하고 있다. 특히 일반 대중의 인식 속에 단일한 맥락으로 정제되지 못한 것 같다. 우리는 이 새로운 도전과제 앞에 단단히 무장해야 한다. 우리의 세계가 어떻게 작동하고 있으며, 또 우리는 어떻게 적응해야 하는지에 대해, 남아 있는 모든 구시대적인 관점들을 타파해야 한다. 


"문제를 만들어낸 때와 같은 사고방식으로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We cannot solve our problems with the same thinking we used when we created them)." 아인슈타인의 유명한 말이다. 현재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이 위태로운 추세에 효과적으로 대응하려면, 우리 스스로를 '살아있는 행성'의 한 부분으로 인식하는 새로운 관점이 필요하다. 그래야 지속가능한 방향으로 움직일 수 있게 된다. 


이러한 관점은 물론 우리의 최첨단 과학과 일치되어야 하겠지만, 무엇보다 적절한 은유로 우리의 인간적 본성에 견고하게 뿌리내릴 필요가 있다. 그 은유 중 하나가 바로 Geo Sapiens다. 이것은 전 지구적 지혜(EarthWise)를 요구하는 우리 종의 새로운 호칭이 될 것이다. 




완전히 새로운 과학의 탄생


지구를 하나의 거대한 상호작용 고리로 이해하는 일은, 학문 사이의 경계를 초월하는 것이다. 여기에는 생물학, 지리학, 수문학, 기상학 외에도 많은 학습과 수양이 필요하다. 우리는 이미 대기성분이나 해수의 염분 같은 지구적 특성이 마치 살아있는 유기체처럼 자동적으로 조절된다는 것을 이해하고 있다. 예를 들어, 구름, 눈 덮인 극지방과 숲, 사막은 지구의 반사율에 영향을 주고, 이것이 지구의 기후에 영향을 주면서 각 요소의 면적을 다시 조정하게 된다. 





우리의 태양은 수십억 년에 걸쳐 조금씩 뜨거워져 왔지만, 그에 따라 지구 표면에 있는 모든 요소들은 그에 따라 조정되었고, 심지어 지각의 깊은 곳까지 공진화하면서, 오늘날 훨씬 서늘한 기후를 유지하고 있다. 지구의 자기조절 능력 덕분이다. 지구 상에 존재하는 대부분의 광물은 오로지 지구 상에만 존재한다. 이는 생물학적 순환이나 지질학적 순환이 너무나 복잡다단하기 때문이다. 이제 과학자들은 판구조론의 아이디어인 대륙의 이동이, 사실은 생명의 시작에 반드시 필요한 것은 아니었을까 생각하고 있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이렇게 모든 것을 아우르는 통합적 관점에는 반드시 우리의 인간성이 고려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의 정신, 우리가 생각하는 방식부터 생활 습관까지, 인간에 관한 모든 것이 포함되어야 한다. 비록 '인류학'이라는 용어가 지금껏 '인간의 모든 행위가 기후와 환경에 지배적인 영향을 끼친다'는 사실을 강조하기 위해 사용되어 왔지만, 행위의 근간에는 인간의 사고와 습성이 자리하고 있으므로, 결국 오늘날 지구 생리학의 원동력은 우리의 사고와 습성이라고 할 수 있다. 


이렇게 자연의 일부로서 우리의 사고와 습성의 역할을 바라보는 관점은, 우리 스스로 하여금 행동에 책임을 지도록 만든다. 예를 들어, 성장 그 자체가 성공인 것처럼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은 한편으로는 아주 '자연스러운' 일이지만, 또한 '자연스럽게' 우리를 소멸의 길로 이끌 수 있다. 대신, 성공이라는 것을 우리 생태계와의 관계를 기초로 재정의한다면, 보다 지속가능한 길을 찾을 수 있다. 




어스와이즈는 왜 중요한가?


제임스 러브록이 처음 이 아이디어를 발전시킨 것은 1960년대 NASA에서 일하던 무렵이었다. 당시 이들의 프로젝트는 화성에 생명체가 있는지를 밝히는 것이었다. 그는 화성에 생명체가 없다고 결론 내렸지만, 그 과정에서 '전체 생태계가 하나로 유기적으로 연결되지 못한다면 그 어떤 행성에도 생명이 존재할 수 없다'는 생각에 도달하게 된다. 그때부터 그는 지구의 대기와 물, 암석, 그리고 유기체가 일종의 '살아있는 체계'를 형성하고 있는 것으로 보기 시작한다.  


러브록이 영국으로 돌아올 무렵, 그의 이웃 중에는 <파리대왕>의 저자인 윌리엄 골딩이 있었다. 골딩은 러브록의 아이디어가 어마어마한 힘을 가지고 있음을 직감하고, '살아있는 행성에 관한 가설'의 이름으로 그리스의 땅의 여신인 가이아(Gaia)를 제안한다. 그는 이것이 수천 년 동안 서양 신화로 이어져 내려온 생각을 과학이 재발견하는 것이라 생각했고, 이를 기릴 수 있는 이름을 붙이려 했던 것이다. 


'가이아'라는 이름과 그 은유는 순식간에 유명해졌다. 특히 종교적이거나 환경에 관심이 많은 사람들에게 빠르게 받아들여진다. 이 용어는 당시 '뉴에이지'적 의미를 일부 함축하고 있었기 때문에, 많은 과학자들이 이 가설을 거부하거나 관심을 갖지 않은 것은 사실이다. 지금은 대부분 과학적으로 증명되어, 가이아 가설은 '지구계 과학(Earth Sytem Science)'의 일부가 되었지만, 가이아의 은유만큼은 여전히 과학과 거리를 두고 있다.  


이는 대단히 안타까운 일이다. 지구를 살아있는 생명계로 바라보는 과학은 학문적으로 고립되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이런 관점은 다른 학문들과 연결되어야 할 뿐 아니라, 우리의 인간성과도 밀접하게 연결되어야 하고, 우리의 생각과 습성을 바꿀 수 있어야 한다. 메타포는 대중적 관심을 모으고, 전통적인 세계관과 과학을 통합할 수 있다. 우리의 욕망이 곧 지속가능성을 만들어내도록 할 수 있다. 


'가이아'는 앞으로 수십 년 동안 우리 사회를 이끌 중요한 은유적 개념으로서 다시 발견되어야 한다. 가이아를 뜻하는 또 다른 단어는 'Geo'로, 두 단어 모두 땅의 여신을 의미한다. 지리학(Geology)이 처음 명명되던 18세기는 다름 아닌 그리스 문화의 재발견이 한창이던 '신고전주의' 시대였다. 지리학의 아버지인 제임스 휴튼(James Hutton) 또한 지구 생리학을 나름의 방식으로 이해하고 있었던 또 다른 과학자였던 셈이다. 




재생에너지와 가이아의 특별한 관계


가이아 메타포를 되살리는 일은 신재생 에너지와도 관계가 있다. 우리 모두에게 이 은유를 현대적으로 진전시킬 의무가 어느 정도 있다는 뜻이다. 가이아의 은유를 적절하게 사용할 수만 있다면, 대중의 마음과 정신을 움직여 재생에너지를 일상화할 수 있을 것이며, 이를 통해 지속가능한 사회로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과학적으로 태양은 지구 생명체의 중심이다. 물론 기본적으로는 광합성 덕분이지만, 이 이야기는 단순히 우리의 에너지 섭식 의존성보다 조금 더 들어가야 한다. 러브록은 광합성 진화를 "가이아의 탄생" 즉, 살아있는 시스템의 탄생으로 묘사했다. 광합성이 개발되기 전, 지구의 생명은 박테리아 형태로 존재했다. 태양 에너지를 저장하는 고에너지 분자 덕분에 복잡한 진화가 시작된 것이다. 


지구 탄생 초기에 생명을 잉태했던 '원시수프(primordial soup)'는 곧 소모되었다. 박테리아 조차 광합성이 아니었다면 사라질 운명이었다. 광합성은 우리 행성의 생명과 태양 에너지를 연결하는 고리였으며, 생명을 지속해준 유일한 고리였다. 한 행성에서 생명이 장기간 지속하기 위해서는, 이 재생에너지(태양빛)와 본질적으로 매끄럽게 연결되는 시스템이 필요한 것이다. 


우리의 지속적인 에너지원이 되어주었던 태양은, 사실 원시지구를 얼마든지 파괴할 수도 있었다. 태양에 의한 끝없는 가열을 막은 것은, 공진화를 통해 온도 변화에 대응한 우리 행성의 가이아 시스템이다. 가이아의 공진화는 지구의 알베도(반사율)에 변화를 가져왔고, 대기 중에 가득하던 탄소를 암석과 물, 토양, 수많은 유기체에 고립시켜 온난화를 막았다. 만약 그렇지 못했다 하더라도, 또 다른 생리적인 변화를 일으켜 지구의 기후를 낮은 온도로 일정하게 유지했을 것이다. 


또한 광합성에 의해 생성된 자유산소가 수소를 '긁어 모아', 습기의 형태로 대기 중에 묶어둔다. 그렇지 않았다면, 세상에서 가장 가벼운 수소 원소는 모두 우주로 빠져나갔을 것이고, 지금과 같은 바다는 존재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즉, 태양은 그저 인간이 이용하는 대체에너지이거나, 기후활동을 일으키는 에너지의 원천 정도가 아니다. 바로, 우리 행성의 오랜 생명활동의 중심인 셈이다. 재생에너지와 별 관련이 없을 것 같은 다른 지속가능성 또한 마찬가지로 깊은 연관이 있다.


건강하고 비옥한 토양을 유지하고, 숲과 습지를 보존하고, 지구 상에 존재하는 모든 '살아있는 조직'을 보존하는 일은, 단순히 생물의 다양성을 유지한다거나, 우리 생활의 터전을 지키는 것 이상의 중대한 의미가 있다. 그것은 인류를 지속시켜 줄, '생명으로서의 지구'를 지속하는 유일한 방법이다. 태양 에너지는 이 모든 시스템을 움직이고 있다. 지속가능하고 실천 가능한 농경과 식수 시스템, 자원의 사용, 그 밖에 많은 생명 활동의 중심이다.   


현재 우리의 과학적 현실은, 우리의 살아있는 행성과 너무 괴리되어 있다. 요컨대, 우리는 이 모든 내용을 바탕으로 체계적으로 소통하고 또 계획할 필요가 있다. 그 과정에서 가이아 메타포는 우리의 인간성을 연결해 줄 것이고, 태양이 우리 존재의 중심이라는 사실을 드러낼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나는 'Geo Sapiens'라는 용어를 제안하는 바이다. 이 용어는 우리로 하여금 전 지구적 지혜를 추구하도록 만들어 줄 것이다. 






전 지구적 사고방식을 어떻게 발전시킬 것인가?


처음 직면하게 되는 과제는, 통합적 사고의 필요성을 느끼는 일이다. 과학적이고 은유적인 생각을 동시에 할 수 있어야 한다. 예를 들어, 과학적/기술적인 사람들에게, 이것은 '살아있는 행성'이라는 개념의 과학적 타당성을 인정하는 의미일 수 있다. 이미 이에 대한 식견이 있고 또 확신하는 사람들에게는, 다름 아닌 '가이안' 사상이 지금의 지구 시스템 과학과 그 모델을 발전시키는 데 크게 기여했음을 아는 것이 도움이 될지도 모른다. 


일단 지구 행성을 살아있는 체계로 보는 관점의 과학적 타당성이 각자에게 받아들여진다면, 그 자체로 변화에 동참하는 광범위한 노력의 일원이 될 수 있다. 이를 위해 가이아 메타포의 역할은 결정적이며, 바로 이 지점이 'Geo Sapiens'로 진화하는 좋은 시작이 될 것이다. 호모 사피엔스의 유희인 '지오 사피엔스' 문구를 사용하는 것만으로도, 우리가 누구인지, 우리와 지구의 관계는 과연 무엇인지 재평가하도록 할 수 있다. 


1985년 출간된 만화 <The Far Side>에는, 한 공룡이 연단에 서서 다른 공룡들을 향해 연설하는 장면이 나온다. "전망은 매우 어둡다, 제군들이여. 세계의 기후는 변하고 있고, 포유류들이 점점 득세하고 있으며, 우리 모두는 겨우 호두만 한 크기의 뇌를 가지고 있다." 이것은 다름 아닌 우리가 마주한 진실일지도 모른다. 기후변화와 그 밖에 다른 수많은 문제들을 해결하는 데 있어, 우리 스스로 우리의 능력을 제한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단지 우리가 생각하는 방식 때문에 말이다. 


어쩌면 우리는 '지오 사피엔스' 같은 작고 간단한 은유만으로도, 현재 우리가 부딪히고 있는 생각의 한계를 부수고 <어스와이즈 휴먼>이 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재생에너지와 태양은 특히, 지구와 인류 간 관계의 핵심이다. 그러니 재생에너지 옹호론자들에게는 특별한 책임이 있다. 바로, 이 새로운 사고방식을 발전시킴으로써, 특별한 기회를 깨닫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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