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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동하다 Jan 22. 2020

스토브리그 뜰 줄 알았다

내가 야알못인 건 상관없을 정도로


어느 날 송년 모임을 다녀오니 남편이 모처럼 드라마를 보고 있었다. 

드라마광인 나와 달리 남편은 보자, 보자 열 번쯤 말해야 성화에 못 이겨 같이 앉곤 할뿐 미니시리즈 대장정을 시작하기를 버거워한다. 그래서 크리스마스 선물처럼 한 해 동안 기다렸던 넷플릭스 '너의 모든 것' 시즌2를 간신히 크리스마스 연휴 때 옆에 앉혀놓고 다 봤다. 


- 어 뭐야? 

= 박은빈 나오는데 재밌어


- 응 sbs네? (우리 요새 지상파 안 보잖아)

= 응 근데 야구 얘기인데 박은빈 캐릭터가 너무 재밌어


- 허 그래? 야구..... (야구장 직관을 몇번이나 했지만 야얄못)

= 재밌어 함 봐봐


처음으로 반대의 상황이 벌어져 남편 옆에 앉았지만 계속 딴청을 했다. 인스타그램 피드만 이것저것 기웃기웃했다. 


그리고 다음날. 

10시부터 2화 본방 사수를 했다. 아니 조한선, 김정화가 나오는 것 아닌가. 이것부터 말해주지 남편...

무려 16년 전 조한선과 김정화 /사진제공=MBC 

뉴논스톱 시절 김정화와 조한선의 러브라인에 심쿵했던 중딩이었다. 조한선이 '금지된 사랑'을 김정화에게 불러줬을 때 가사까지 외우며 노래방에서 얼마나 비극적인 창법으로 따라 불렀던가. 무엇보다 내가 너무 좋아하는 이들이 브라운관에 나온 건 정말 오랜만이었다. 반가웠다. 



그리고 기획의도를 봤는데 이거 올해의 드라마로 꼽았던 '동백꽃 필무렵' 만큼이나 너무 멋들어진 거 아닌가 




팬들의 눈물마저 마른 꼴찌팀에 새로 부임한 단장이

남다른 시즌을 준비하는 뜨거운 겨울 이야기


일단 꼴찌팀이다. 게다가 비호감이다. 이 팀을 아이언맨급으로 변화시킨단다. 그런데 심지어 시즌 준비 이야기다. 


여기서 단장은 극단적인 세이버 매트리션(물론 야알못이라 이 용어는 나중에 알게 됐다)이다. 하지만 조직이나 현실에서는 숫자 같은 정확성, 객관성 외에도 사람의 실수, 사람의 감정 등이 많이 개입하지 않는가. 그래서 단장과 다른 이들이 부딪히는 이야기가 기대되기 시작했다. 게다가 시트콤처럼? 시츄에이션 드라마란다. 배경 상황은 그대로지만 해결해야 하는 문제가 매회 달라진다나. 


내스타일 '겉바촉촉'처럼
야구로 코팅했지만 먹어보면 리더와 사람들의 이야기라는 거 아닌가
맞다. 조한선은 선출이었다 

그리고 나니 계속 임동규(조한선) 이야기가 나왔는데 왜 이 사람을 트레이드시켜야 하는지를 직접 백승수(남궁민) 단장이 PT를 하기 시작했다.  발표 내용을 그대로 다룬다고 드라마에서? 엥 늘어질텐데... 


남궁민이 하드캐리한 이 씬은 이 드라마를 시작해야 할 결정적인 장면이 됐다. 


스티브 잡스 스타일로 한 화면에는 제목 정도의 최대한 간략한 정보로 임동규를 트레이드 해야볂 하는 이유를 직원들에게 설명했다. 


1. 새가슴이다

2. 스탯 관리의 결정판

3. 변화하는 구장

4. 인성 


스티브 잡스 스타일에 발표는 더 잘한다 /사진제공=SBS

일단 통계에 대해 아무것도 몰라도 듣고 나면 고개를 끄덕끄덕하게 하는 피티였다. 발표적으로도 문제점을 지적한 다음에 대안 제시와 쐐기 박기가 빠짐없이 들어가 어떤 이유로도 반박을 할 수 없게 하는 전술이었다. 

여기서 스탯 관리의 결정판이라며 그동안 더위에 약한 게 아니라 순위가 결정되는 시기에 약했던 거라고 확언함으로써 그동안 '잘 때리는 타자로서의 이미지'에 가려진 진짜 실력을 드러나게 했다. 이때 냉무글처럼 잘 하고 성실한 이미지로 몇년씩을 버티는 몇몇 직장 동료의 얼굴이 떠오르기까지 했다. 


그리고 궁금해졌다. 저 스탯이라는 게 무엇일까. 그간 아무리 시아버지가 구장에 데려가도 옆에서 남편이 수도 없이 설명해줘도 생기지 않던 야구에 대한 관심이 생긴 거였다. 그리고 과연 프런트들은 어떤 일을 하는 어떤 사람들일까. 드라마는 보통 인물들을 극화시키는데 실제 업무나 성격에서 싱크로율은 얼마나 되는 걸까. 


'이 드라마 정말 뜰 것 같은데' 촉이 왔고

내 주변의 유일한 업계 사람들에게 연락을 시작했다.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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