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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펜릴 Aug 04. 2022

현실주의자의 직장이야기 # MBA

쉽지는 않지만 얻는 건 많은

나는 올해 2년 간의 MBA를 수료하고 졸업한다. 직장생활을 하면서 다닐 수 있는 대학원은 많지 않지만, MBA는 입학 조건 자체가 직장 경력을 필요로 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현업에 종사하다가 공부를 시작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래서 한 순간의 잘못된 선택(...)으로 대학원에 입학했고, 다행스럽게도 무사히 2년 만에 4학기를 마치고 8월에 졸업하게 되었다. 직장인에게 대학원은 정말 매력적인 독약이다.


회사를 다니다보면, 어느 날 갑자기 굉장히 유혹적이고 사악하며 인생을 잠시 구렁텅이에 빠트리는데 또 아주 손해를 보는거 같지도 않은 느낌이 드는 '대학원'이라는 존재에 관심이 끌릴 때가 있다. 이건 회사생활이 잘 풀리는 사람에게도, 드럽게 안풀리는 사람에게도 갑자기 찾아온다.


어떤 사례를 들어보자.


직장인 A는 어렵게 들어온 회사에서 자기가 맡은 업무가 잘 맞고, 스트레스를 받을 수 있으나 어떻게든 견뎌내면서 해결 가능한 업무를 달성하면서, 나름 능력을 인정받고, 적당한 때에 승진도 하면서 연봉도 어느정도 오르는 재미도 보면서 한 해 한 해를 보내고 있다. 그렇게 몇 년을 보낸 어느 날, 자신의 삶이 조금 정체되고 있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면서 이대로 살면 정말 무미건조하게 인생이 흘러갈거 같다는 기분이 든다. 뭔가 삶의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고 싶은 기분이 새록새록 들 무렵, 가늘게 이어가고 있던 취미를 진지하게 몰입해볼까 말까 하다가 오랜만에 만난 대학 동기와 저녁을 먹으면서, 대학원에 대한 이야기를 듣는다. 이 녀석이 한동안 연락이 뜸하다 했더니 대학원을 다녔기 때문이었다. 대학원에서의 고된 조별과제와 벼락치기 시험이야기, 흥미로운 강의 내용을 들으면서 갑자기 학부시절 추억들이 새록새록 떠오른다. 뭔가 이 친구가 박식해진거 같다는 생각이 든다. 자기는 이제 석사라면서 학사인 너와 급이 다르다며 살짝 어그로를 시전한다. 이런 놈도 하는데 나라고 못하겠냐 하는 생각이 든다. 호기롭게 외친다.


"야! 어떻게 신청하면 돼?"


....한 가지 사례를 더 들어보고 싶다.


직장인 B는 지금 회사에서 입사 3년 차다. 첫 직장은 아니지만 많은 시행착오 끝에 마음에 쏙 드는 회사에 이직했다. 기대에 부푼 꿈과 희망을 갖고 입사했던 첫 해와 달리, 지금 좀 뭔가 잘못되어가고 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그 어떤 회사도 장단점이 존재하지만, 지금 회사의 단점은 하필 나에게 굉장히 치명적이다. 맡은 업무도 노력은 하고 있으나 운이 따라주지 않는지 성과가 별로 없다. 자연스럽게 승진도 몇 번이고 실패로 돌아갔다. 주변 사람들이 하는 조언을 잘 수용하고 절치부심 노력한다고 스스로 생각하는데도 항상 납득할 수 없는 이유로 승진에 실패한다. 어떻게든 방법이 없나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던 나날을 보내던 중, 간만에 대학 동문들을 만난 자리에서 최근에 이직했다던 친구를 만났다. 아니 저 친구 몇 년 전만 해도 뒤늦게 취업하느라 애를 먹었던 친구였는데 그 동안 많이 노력했나보다. 근황을 들어보니 대학원을 졸업했다고 한다. 일하면서 다니는게 쉽지 않았다며 너스레를 떨지만 자기에게 정말 큰 도움이 되었다고 한다.  가만있자...대학원?

그러고 보니 예전부터 대학원에 가고싶은 생각이 있었다. 이건 어쩌면 나에게 큰 전환점이 될지도 모르겠다는 느낌이 든다. 아니 이건 운명이다. 이 시점에서 나에게 대학원에 대한 고민이 생긴다는 거 자체가 우주의 의지다. 이건 바로 진행 해야한다. 좋았어!!


음. 뭐 대충 이런 식으로, 이 외에도 직장인이 대학원이라는 함정에 빠지는 루트는 수도 없이 많다. 내 경우는 후자의 케이스에 가까웠다. 현 직장에 입사한 뒤 몇 년간 여러가지 실패를 겪다보니, 내 삶 자체가 제자리인 것 같은 기분을 지울 수가 없었다. 그 와중에 대학 후배가 들려준 MBA 이야기에 혹해서 갑자기 의욕에 불타올라 하루아침에 학업계획서를 제출해버렸다. MBA가 멈춰버린 나의 시계를 돌려줄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지금의 나에게 자극은 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에서였다. 후배는 회사와 학업을 병행하는 것이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고생각보다 힘들다면서 나를 말렸지만, 예전부터 대학원생이 멋있어보인다는 잘못된 인식(?)을 갖고 있던 나는 언젠가 대학원에 갈 거라는 계획이 있었다. 마침 Covid-19 때문에 회사 출근이 주 3일밖에 되지 않았기 때문에, 좋은 타이밍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학업에 대한 무한한 의욕을 분출하는 나는 단숨에 면접을 통과했고, 어렵지 않게 MBA를 합격했다. 합격 통지를 받고 다시 만난 후배의 건투를 빈다는 말과 그늘진 얼굴을 보며 대체 왜 공부하러 가는데 건투를 빌어야 하는 건가 하는 생각을 하면서 잠시 내가 경솔한 행동을 한 건가 하는 의구심이 들었지만, 당시 눈 먼 의욕에 찬 나에게는 전혀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나는 2년 간 나의 경솔한 선택에 대한 댓가를 뼈저리게 치러야 했다.


일과 학업을 병행한다니 꿈도 야무지구나


내가 다닌 MBA는 성균관대학교의 IMBA라는 직장인에 맞는 커리큘럼이었는데, 사실 나는 이 커리큘럼을 조금 얕보고 있었다. 이 커리큘럼의 내용은 주 1회 토요일에만 학교에서 실제 수업을 진행하고, 학기 당 5회 정도의 교수님과의 화상 강의, 나머지는 녹화된 화상 강의를 한 학기동안 수강하면 되는 것이었다. 굉장히 할만하다는 계산이 들었다. 게다가 현재는 코로나로 인한 단축근무. 1주일에 하루 정도 빡세게 공부하면 충분히 되는 것 아닌가?


는 나의 굉장히 잘못된 계산이었다.


예상치 못한 몇 가지의 변수와 잘못된 계산으로 나는 2년 간 나와의 싸움에 시달렸다. 첫 번째로 단축근무가 예상보다 훨씬 일찍 끝나버렸다. 그래, 이 회사가 어떤 회사인데 그렇게 속 편하게 업무시간을 마냥 줄여줄 리가 없었다. 4개월 만에 정상근무로 스케줄이 복귀되었고, 휴일에 쉬기도 바쁜데 학업까지 해야 하는 신세가 되었다.

두 번째로 나의 형편없는 체력이었다. 시험기간마다 1주일을 밤새며 벼락치기 공부하던 학부 시절의 나는 이미 10년 전 이야기고... 10년 후의 펜릴 씨는 흔한 직장인 아저씨의 형편없는 체력을 보유한 상태였다. 1일만 밤을 새도 2일은 몸져 눕는 신세였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몸뚱이는 10년이 지났는데 정신상태는 10년 전과 다를 바 없이 썩어빠져서, 여전히 벼락치기 시험공부가 필요했다. 이 게으른 놈...

그건 그렇고 분명 나는 항상 운동도 하고 열심히 관리하려 노력하는데  이렇게 체력이 떨어지는  모르겠다. 진짜 나이 때문인가?

세 번째로 학과의 특성을 간과한 점이었다. 내가 다니는 곳은 MBA다. 경영학과의 큰 특징이 무엇인가? 바로 '조별과제'가 아니겠는가? 세상에... 30대 후반인 내가 거의 막내에 가까운 MBA에서 누나 형님들과의 조별 모임은 분위기도 분위기지만, 다들 바쁘신 분들이라 시간을 내서 진행하기가 쉽지 않았다. 당연히 진행에 어려움이 있었고, 대학원 과제답게 호락호락한 과제도 아니었기 때문에 매 학기마다 나오지도 않는 아이디어를 쥐어짜기 위해 머리를 쥐어 뜯어야 했다. 다행스럽게도 간혹 나타나는 능력자 분들 덕분에 가까스로 과제 제출을 성공하고는 했다.


 시간과의 싸움


"MBA를 다니며 가장 어려웠던 점은 무엇인가요?" 라는 질문에 나는 자신있게 말할 수 있다. 바로 "시간이 없다"는 것이 가장 힘들었다. 학생 시절의 나는 공부하는 것이 나의 역할인 시기였다. 공부를 하는게 당연한 것이고, 공부를 하는 것 자체로 모든 것이 존중되었고, 공부를 하지 않으면 직무유기인 때였다. 하지만 MBA는 달랐다.

나는 엄연히 맡은 역할이 있는 직장인이었고, 그 역할에 대한 의무와 책임을 다해야하는 것이 우선이었다. 자연스럽게 업무가 많아지면 공부할 시간이 줄어들었고, 학업에 집중할 여력이 떨어졌다. 토요일에 갑자기 일이 생기면 학교에 가지도 못했고, 모두의 시간과 노력이 모아져야 하는 조별과제에도 피해를 줄 때도 있었다. 이 경우 조원들에게 너무나도 미안해서 고개를 들지 못했다. 다행히도 다들 같은 처지라 서로 이해는 해줄 수 있었지만.

학업에 온전히 집중하지 못하게 되면서 체득하는 지식의 농도가 옅어졌고, 자연스럽게 '내가 이 큰 돈을 쓰면서 대학원에 다니는 것이 잘하는 일인가? 내가 시간과 돈을 낭비하고 있는 거 아닌가?' 하는 의심이 마음 속에서 피어나기도 했다.


어른들이 괜히 공부에 때가 있다고 하는게 아니었다. 다 늦어서 하는 공부가 이렇게 힘들 줄이야.


여기까지 보면 대학원 회의론자 같은 느낌이 들지만, 난 오히려 반대다. 나는 대학원에 온 것을 잘했다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나는 잘했다고 생각한다


위에 써놓은 나의 고충은 내가 그대로 겪은 것들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MBA를 다닌 것이 굉장히 만족스럽다. 얻은 것들이 정말 많고 큰 덕분이다.


먼저 '성취에 대한 경험'을 얻게 되었다. 누구나 학생이었던 적이 있지만, 대학원은 조금 다르다. 내가 선택해서 학생으로 돌아간 것이다. 그리고 학생으로서 무사히 졸업을 할게 됨으로써 큰 성취를 얻게 되었다. 목표 달성과 성취에 대한 경험은 습관이기때문에, 앞으로의 내가 살아가는 것에 큰 힘이 될 것이다.


지식 습득에 대한 만족감도 있다. 길지 않지만 스타트업을 창업하여 3년 가까이 운영했던 나는(비록 망했지만) 그 때 항상 전문적인 지식에 대한 갈증이 있었다. 회사 운영을 몸으로 부딪쳐가며 해결해보겠다고 생각했던 그 때 겪었던 많은 문제들과 막연하게 보였던 해결 방법이 MBA를 다니면서 유형화 된 지식으로서 정리할 수 있었다. 만약 지금 똑같이 창업했더라면 다른 결과가 있었을까..하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


또 많은 사람들을 만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MBA는 인맥을 쌓기 위해 간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많은 산업군의 다양한 전문성을 가진 사람들을 만날 수 있다. 한 회사의 대표도 있고, 업계에 손 꼽히는 전문가도 있었다. 아쉽게도 나는 네트워킹에 시간을 많이 할애하지 못해서 충분히 그들과 이야기해보지 못했지만, 가끔 조별 과제를 할 때 알게되는 동기들의 엄청난 커리어와 역량에 놀라기 바빴다. 그들의 능력과 이야기는 나에게 항상 큰 영감을 주었다.


이 외에도 MBA에는 여러가지 좋은 점들이 있었다. 결과적으로 나는 MBA에서 쌓은 지식과 많은 유능한 사람들로부터의 조언들 덕분인지 모르겠지만, 회사의 업무에 상당한 플러스 요인이 되었고, 회사에서도 “이녀석 꽤나 열심히 사는데?”라는 이미지를 가져가면서 고속 승진을 하게 되어 지금은 마음의 평화를 얻게 되었다.


그렇게 많은 우여곡절 끝에 졸업까지 오게 되었고, 가끔 주변 사람들이 대학원에 대해 물어볼 때가 있다. 그 때마다 내 얼굴에는 몇 년 전 내 후배처럼 얼굴에 그늘이 슬쩍 지어지며, "진짜 힘들어요"라고 하지만, 그럼에도 나는 추천하고 싶다. 분명 잃는 것보다 얻는 것이 더 많기 때문이다.(도망쳐 어서)


무엇보다도 내가 선택한 길이다. 당연히 도전해 볼만한 가치가 있지 않은가?


...근데 두 번은 못할 거 같다. 푸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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