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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밍밍 Jun 15. 2019

제주도 게스트하우스 운영해보기 -2-

게스트하우스 운영에 대한 환상과 현실, 그 모든 것

https://brunch.co.kr/@iknowabby/4


제주도 게스트하우스를 지인들과 함께 알아보고, 으쌰으쌰 계약한 이후 내 삶은 어딘가 생기가 넘치기 시작했다. 남들이 모르는 나만의 별장이 생긴 느낌이랄까. 예쁜 인테리어 소품을 보면 그 공간을 채우고 싶고, 다른 게스트하우스들의 인스타그램을 구경하며 좋은 점은 배워왔다.


1층 공용공간에 반짝반짝 코튼 조명 달아놓기


왕복 제주행 비행기 티켓값을 아끼기 위해 [일요일 새벽 출발, 월요일 새벽 도착]으로 바로 출근을 빈번하게 감수하기도 했다. 제주도 애월에서 새벽 5시 기상 후 택시와 비행기를 타고나서 바로 출근해야 했지만, 피곤함보다는 오히려 하루를 일찍 시작했다는 뿌듯함과 스스로 열심히 살고 있다는 자부심이 더 컸다.


역시 사람은 본인이 하고 싶은 일을 재밌게 하면서 살아야 한다는 사실을 크게 깨달았던 시기였다.


우리가 운영했던 게스트하우스의 운영비는 사실 적지 않은 금액이었다. 제주도는 보통 월세가 아닌, 년세로 지불해야 했고, 우리가 빌린 건물은 보증금 3,000만 원에 권리금 2,000만 원 년세는 4,800만 원이었으니까.


열심히 일해서 벌어온 금액의 상당 부분은 임대인에게 바쳐야 하는 현실이 어딘가 허탈하긴 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 세상이란 그런 거니까.


총 3층짜리 단독 건물인 우리의 게스트하우스의 방은 총 7개로 이루어져 있었다.


- 도미토리 6인실(남)

- 도미토리 6인실(남)

- 트윈룸 A

- 트윈룸 B

- 디럭스룸

- 특실(건식 사우나와 전용 테라스)


낯선 사람들과 2층 침대에서 자야 하는 도미토리는 1인당 25,000원이고, 그 외의 방은 6만 원부터 10만 원까지 다양했다. 하지만 이 숙박비로 월 400만 원의 임대료와 스탭들의 인건비(통상 여행 지원비라고 한다), 가스비, 전기료, 유류세 등의 관리비까지 모두 감당하려면 이 비용만으로는 부족한 것이 사실이다.


다행히 오픈 후 몇 개월이 지나 TV에서 '효리네 민박'이 방영되었고 제주의 아름다운 모습이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졌다. 그리고 이들은 제주로 향했다.


제주도 게스트하우스는 1천 개가 넘는다.

그러나 관심이 집중된 제주도에는 새로운 게스트하우스들이 우후죽순 오픈되었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예맨 난민, 제주 게스트하우스 살인사건 등이 연이어 터지며 우리 게스트하우스에는 하루에 1명도 묵지 않는 날도 생기기도 했다. 작은 섬에 게스트하우스만 1,000개가 넘으며 경쟁은 치열해지고, 이 곳으로 놀러 오는 사람들은 적어지니 자연스럽게 경쟁이 치열해진 것은 사실이다.


그리고 외국과는 달리 우리나라 게스트하우스에는 외국인들이 생각보다 많이 머물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중국인들이 많다 해도 게스트하우스로는 오지 않았으니까.


보통 게스트하우스 도미토리는 3만 원 정도이기 때문에, 사실 여행자가 2명 이상이라면 모텔 가격이 더 저렴하다.그럼에도 불구하고 게스트하우스를 찾는 사람들의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다.


게스트하우스에는 각기 다른  인테리어와 뷰, 주인의 감성, 그리고 전국 각지에서 온 여행자들을 쉽게 만날 수 있다는 매력이 있다. 여행지에서 만난 사람들은 어딘가 벽이 없다. 낯선 곳에서 처음 만난 사람이라도 같은 '여행자'라는 사실이 서로에 대한 경계를 낮출 수 있게 된다. 이 사람이 무엇을 하던 사람이건 여행에서는 아무런 상관이 없기 때문이다.


전국의 게스트하우스들은 보통 매일 저녁에 '파티'를 진행한다. 참여하는 게스트들에게는 간단한 안주와 술이 제공되는데, 이 시간에 남녀 간의 로맨스가 피어나기도 하고 마음속 깊은 이야기를 나누기도 한다. 사람을 무척이나 좋아하는 나 역시 그 대화에 자주 참여했다.


실제로 단 몇 시간만 이야기를 나누었지만 그다음 날 전체 여행 일정을 함께 한 적이 많았다. 그리고 마음이 잘 맞았던 여행자들과는 서울에서도 따로 보기도 하고, 여수에 사는 여행자와 친해져 다른 사람들과 함께 여수 여행을 떠난 적도 있었다.

게스트하우스에서 처음 만나 다음 날 다 함께 우도로 떠났다



제주도 게스트하우스의 스탭들은 보통 한 달 살이를 위해 이 섬으로 온다. 휴학생이나 직장을 그만두고 온 사람들이 많았는데, 보통 서울에서의 삶이 지치고 힘들어 휴식을 취하고 싶은 사람들이다. 그래서 스탭들은 절대 바쁘게 일하거나 여행하지 않는다. 통상적으로 게스트하우스는 이들에게 숙식과 소정의 여행 지원금을 제공하고, 스탭은 주 3~4일 정도를 청소와 조식/파티 준비를 맡게 된다. 나머지 시간은 모두 자유시간이다.


그래서 스탭들은 성산일출봉이 가고 싶다고 해도 여느 여행자처럼 꼭 '오늘'가야 할 필요가 없다. 오늘 비가 오면 여행 가방을 내려놓고 빗소리를 들으며 낮잠 자는 편을 택한다. 그리고 날씨 좋은 어느 날에 성산일출봉에 훌쩍 다녀오면 되는 것이다. 굳이 제주에서까지 바뻐야 할 이유는 전혀 없으니까. 잠시 쉬어가도 되니까.


내가 서울에서 회사를 다니면서 제주도에 지인들과 게스트하우스를 함께 운영하는 것은 어렵다는 사실을 깨닫는 건 6개월이 걸리지 않았다. 비록 지금은 다른 분이 운영하고 계시지만, 나에게 제주도를 열심히 오갔던 기억은 정말 좋았던 추억이고 젊은 날의 도전이다. 직업만이 내 삶을 규정하는 것은 아니고, 세상에는 참 많은 사람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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