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방인> 2019, 김현정 감독
* 영화를 슬로 모션으로 보는 듯 자세히 묘사했으므로 스포가 될 수 있습니다.
대구 독립영화관 오오 극장 4주년 특별전에서 김현정 감독의 신작 <이방인>을 보았다. 다를 이 나라 방 사람 인. 다른 나라에서 온 사람이라는 뜻이다. 사적인 상상에서는 긴 중절모로 얼굴을 가리고 깃 세운 트렌치코트를 입은 사람의 형상이 떠오른다. 계절이 흐르면 이방인 대부분은 겉옷과 모자를 벗는다. 시간은 오래될수록 크고 작은 익숙함으로 경계를 풀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느 집단에 속한 지 꽤 되었는데도 스스로 낯선 존재인 것 같은 기분이 들 때가 있다. 모두를 챙기려 노력하는 집단에서 이상하게 한 사람만 겉돌 때도 있다. 사람 사이에는 숨겨진 일이 많다. 은근한 배척과 묘한 소외감이 어디에서 오는지 알기 어렵다. 알지 않는 편이 좋은 경우도 있다. 이 글은 영화 속 관계들을 자세히 들여다보고 있으므로 모르는 것을 알고 싶은 사람들이 읽으면 더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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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방인>은 이방인이 생기는 것인지 만들어지는 것인지에 대한 이야기로 보인다. 주인공 가영은 사회에서 다수로부터 소외된 사람들을 주제로 시나리오를 쓴다. 잘 쓰기 위해 의성에서 서울까지 왔다 갔다 하며 아카데미를 다닌다. 사투리가 돋보이고 화장이나 옷차림에 크게 신경 쓰지 않아 외모에 관심 많은 또래들의 대화에서 할 말이 없다. 친해질 기회가 많다는 회식 자리에서 눈칫밥을 먹더라도 의성 가는 막차를 타러 일찍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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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가영 캐릭터가 사회성이 부족하거나 없다는 말이 관객과의 대화 시간에 여러 번 나왔다. 또 평범한 사람의 소외감에 대하여 이야기하려면 소외될 만하도록 설정된 가영 보다 좀 더 보통의 인물을 두는 것이 낫지 않냐는 의견도 있었다. 가영이 아주 평범한 사람의 모습이라고 생각하던 나는 조금 놀랐다. 소외감을 느낄 만할 사람은 어떤 사람인지, 사회성 있는 캐릭터는 무엇인지 궁금했다. 사교를 위해 자신이 편안히 여기는 생활권을 벗어나면서까지 술자리에 잔류했어야 할까? 재미없는 농담에 웃어야 했을까? 촌스러운 겉모습과 숫기 없는 성격은 특징이 아니라 문제로 여겨지는 것일까? 원래 느린 사람들은 어떡하지? 많은 의문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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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 먼저 다가온 덕분이긴 하지만 가영은 천천히 친구들과 어울렸다. 아카데미에 이방인으로 도착한 가영이 점점 현지인이 되어간다고 생각했다. 와중에 벌어진 일만 아니었으면 말이다. 사람들과 술 먹다 한 방에서 잠든 날, 어떤 손이 가영을 만졌다. 돌아보니 자신을 사람들과 어울릴 수 있게 도운 선배가 발개진 얼굴을 하고 있었다. 가영은 덮쳐오는 그를 피해 밖으로 도망 나온다. 그 뒤로 선배는 가영에게 어떠한 언급 없이 아카데미에서 평소대로 행동했다. 가영은 계속 가해자의 얼굴을 마주하면서 혼자 불편을 견뎌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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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영의 수치심과 분노는 영문을 모른 채 잠복하고 있을 것이었다. 오래 이방인이었던 사람은 폭로가 쉽지 않다. 힐끔거리는 시선이 모이는 일이 얼마나 즐겁지 않은지 알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 선배는, 가영이 운동 정신을 가지고 쓰는 시나리오 주제인 성소수자였다. 추행을 밝히면 그것까지 까발려지게 된다. 자신은 피해자이지만 가해자가 될지도 몰랐다. 내가 받기 싫은 그 시선을 선배가 받게 될 수도 있다. 가영은 또다시 혼자만 느끼는 무언가를 가지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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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료식 날 뒤풀이에서 가영은 교수와 학우들에게 인기 많은 그 선배를 보다가 참아왔던 감정을 터트린다. 사람들 앞에서 그를 비아냥대며 시비를 걸었고 왜 나만 참아야 되냐며 신경질을 내었다. 그러면서 문제의 사건은 말하지 않았다.(또는 말하지 못했다.) 관객은 사정을 알고 있지만 뒤풀이 자리에 있던 사람들은 가영을 곤란하고 지질하게 보았을 것이다. 가영은 의성으로 돌아가는 길 휴게소에서 혼자 어묵을 욱여넣는다. 그리고 사라진 버스에 당황한다. 갈 길 잃은 가영이 의성행 차를 찾는 어지러운 장면으로 영화는 끝이 난다. 마지막 가영의 모습은 누군가들로부터 만들어진 이방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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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가 끝나고 김현정 감독과 잠깐 대화를 나눴다. 너무 좋은 나머지 내가 무슨 말을 했는지 기억나질 않고 나의 말을 듣던 감독의 얼굴만 떠오른다. 선배 역과 가영 역을 맡은 두 배우의 소감을 듣고는 영화를 잘 보았던 마음에 확신이 찼다. 처음부터 제목이 가진 공허함이 믿음직스러웠다. 전작 <나만 없는 집>을 고시촌 지하 극장 작은 관에서 혼자 보았을 적 경험한 어떤 감정 때문에 감독을 흠모 중이기도 하고, 카뮈의 『이방인』도 여러 번 읽었으며, 내가 이방인이었던 적이 아니었던 적 보다 많아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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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기로는 스스로를 이방인이라 생각하는 사람이 적지 않다. <이방인>은 그들에게 더 잘 흡수될 것이다. 자연히 생긴 이방인들은 주변이 익숙해질 때까지 시간을 잘 이겨내었으면, 만들어지는 이방인들은 덜 생기다가 안 생기게 되기를 바란다. 그 과정에 이 영화가 함께 하였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