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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일 Mar 13. 2022

9월 어느 날의 대화

기록

9월 어느 날의 대화

“왜 무슨 일인데.”

“그냥 네가 쓴 글 읽다가 슬퍼져서.”


“왜 뭐가 슬퍼. 슬픈 구석 없다고 생각해. 즐겁다. 우울하지 않다. 알지?”


“알지 알지. 아주 오래 그렇게 보내고 있는걸. 그냥, 들추면 안 될 걸 들춘 것 같기도 하고, 근데 이걸 어떻게 까맣게 잊고 있었나 싶기도 하고. 다시 현실에 치여 살면 나아질까 했는데 그것도 아닌가 봐. 여태 피하려고 애쓴 내가 참 모질었다 싶어서 그게 좀 아프더라고. 지워지지 않을 거란 걸 뻔히 알면서도 참 애썼구나, 생각하니까 그게 좀 아프더라고. 한동안 잊고 살았으니 부질없다고 할 순 없는 건지, 그러면서도 그게 다 무슨 소용이었나 싶기도 해서, 그냥.”


“그래도 가끔 생각하고 떠올리는 건 좋은 것 같아.”


“그렇지. 그리고 또, 어떻게 외면해, 결국 나인데. 가끔은 타인에게 느끼는 동정이나 슬픔, 공감이 사실은 스스로에게 토해내지 못하니까 나를 빗대면서 느꼈던 슬픔이진 않았을까 싶더라."


“내가 저번에 뭘 보고 울컥하냐고 물었잖아. 사실 난 타인을 통해 동정심이나 슬픔을 느끼지 않으려고 하거든. 오히려 행복하고 아름다운 것, 온전한 사랑 같은 걸 보면 눈물이 쏟아지더라. 온전한 사랑은 스스로에 대한 평온에서 오는 것 같더라고. 난 평온하지 못하니까 그렇겠지?”


“...널 알게 되어서 참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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