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근길마다 제발 내게 사고가 나기를 기원할 때가 있었다. 숨 막히도록 경직적인 위계서열, 틈만 나면 나에게 폭언을 쏟아놓던 한 선배, 나를 불쌍히 여기면서도 그 상황을 모른 척하던 팀원들, 무엇보다도 밑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새까맣게 모르던 상사.
회사 속 작은 큐비클 안에 앉아 있노라면 속이 울렁거리고 욕지기가 치솟았다. 한없이 뿌예지는 머리에 간단한 일에도 실수가 늘었고, 그럴 때마다 고스란히 돌아오는 선배의 경멸 어린 시선과 날카로운 말에 내 마음속에는 자기 자책감이 부채처럼 쌓여갔다. 왜 나는 남들 다 하는 직장생활 하나조차 벅차하는가. 너는 조직에 적응하지 못하는 실패자야. 보이지 않는 검은손들이 나를 손가락질해 댔다.
그때 나를 살린 건 “그렇게 힘들다면 그만둬도 돼.” 하는 한마디 말이었다. 남자친구와 양꼬치집에 마주앉아 벌겋게 빛나는 숯불 위 빙글빙글 돌아가는 양꼬치를 응시하다가 툭 하고 자조 섞인 말이 튀어나왔다. 그러자 억울함과 슬픔, 자괴감과 낙망이 형체 없이 뒤섞인 마음이 앞다투어 쏟아져나왔다. 그렇게 식사를 마치고 집에 돌아가는 지하철 역사 앞, 머쓱해하는 나를 힘껏 껴안아주며 남자친구는 내게 말해 줬다. 어려운 상황 속 잘 해내고 있다고, 힘들면 쉬어가도 된다고, 나 하나 먹여 살리지 못하겠냐고. 그는 한참을 그렇게 서서 나를 다독였다. 그의 까만 패딩에 허옇게 내 이마 자국이 나 있었다. 픽 하니 웃음이 나왔다.
“패딩에 선크림 묻었다. 괜찮아?”
“괜찮아.”
몇 시간 전만 해도 이제는 무리라고, 난 더 이상 이 세상에 다정할 힘이 없다고 생각했는데, 그 짧은 포옹과 위로가 나를 다시 일으켜 세웠다. 마음속 사랑의 잔고가 두둑이 충전되었다. 내가 내일 하루를 또다시 살아갈 수 있도록. 나를 괴롭히는 그 사람의 뾰족뾰족 미운 마음마저도 내가 친절함의 파도로 덮어버릴 수 있도록.
최근 한국인의 최상위 가치가 돈으로 꼽혔다는 기사를 읽었다. 사랑이나 꿈같은 단어들이 멋모르는 시대착오적 낭만으로 치부되는 세상을 살고 있나 싶어 서글퍼진다. 물론 박태원 소설 속 구보씨처럼 나도 때때로 생각한다. 나는, 대체, 얼마를, 가져야, 행복할 수 있을지, 하고. 그렇지만 짧은생을 되돌아보면 항상 결정적인 순간에 나를 살린 건 돈이 아니었다. 오히려 사람의 따뜻한 온기와 사랑 실린 한마디였다. 그래서 오늘도 속으로 주억거린다.
사람이 사랑을 살린다. 사랑이 사람을 살린다. 사람이 사람을 살린다. 사랑이 사랑을 살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