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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피오 Feb 12. 2017

35th_크리스마스날 산타마을에 갈 수 있을까?

흔한 북유럽의 빨간 날 풍경

2016년 크리스마스는 일요일이었다.

나는 이날 로바니에미에서 밤 9시에 출발하는 헬싱키행 열차를 타야 했다.

나의 계획은 아침에 킬로파에서 나와 점심때쯤 로바니에미에 도착, 산타마을에서 시간을 보내고 로바니에미에서 저녁식사 후 야간열차를 타고 헬싱키 공항으로 가는 것이었다. 한 달간의 여행 간 즉흥적으로 스케줄을 바꾼 적은 있었지만 하고 싶었던 것, 보고 싶었던 것을 못 본 적은 없었다. 그러나 크리스마스는 달랐다.

순록, 아니 루돌프

일단, 지난밤인 크리스마스에 루돌프가 끄는 썰매를 타고 온 산타 할아버지를 만났던 것까지는 아주 성공적이었다. 집에 가기 아쉬울 정도?

그나마 밝을때 찍어둔 킬로파 숙소 내 도로 옆 인도

핀란드는 평일(월-금)과 토요일, 일요일이 식당이든 마트든 심지어 버스까지 스케줄이 완전 다르다. 잘 확인해야 한다.

12월 25일 일요일. 킬로파에서 로바니에미로 가는 버스가 없었다. 다행히 킬로파에 거치지는 않지만 사리셀카에서 로바니에미로 가는 버스는 있었다. 아침 일찍 택시를 타고 사리셀카로 가서 버스를 탈까 했는데 숙소 리셉션 직원이 택시비 많이 나오니깐 사리셀카까지 가지 말고 칵슬라우타넨 호텔에서 타라고 알려줬다.

사리셀카 - 칵슬라우타넨 - 킬로파의 위치

일요일인 데다가 크리스마스여서 버스도 몇 대 없고 집에는 갈 수 있을까, 콜택시를 부르긴 했는데 제시간에 올까 등 엄청 걱정이 많았다.

다행히 택시는 제시간에 왔고 칵슬라우타넨 앞 버스정거장에서 조금 오래 기다리기는 했지만 무사히 로바니에미행 버스에도 탈 수 있었다. 다만 버스의 95%를 이미 중국인들이 채우고 있었다는 점.


버스는 로바니에미 시내에 들어가기 직전에 산타마을에서 한 번 멈춘다. 그리고 로바니에미 시내 곳곳에 사람들을 내려주고 로바니에미 역으로 간다.

나의 계획은 산타마을에는 이미 사람들이 가득하고 짐을 맡길 곳은 여유가 없고, 산타마을에서 로바니에미 시내로 나오는 8번 버스. 이 8번 버스가 굉장히 혼잡할 것으로 예상되어 짐을 로바니에미 역에 두고 8번 버스 왕복권을 사서 산타마을에 들어오는 것이다.

산타마을 (고속)버스 정거장

역시나 산타마을에 도착하자 버스에 타 있던 중국인들 대부분이 내렸다. 이 버스에서만 이만큼 내렸는데 이미 와 있는 사람들이며 앞으로 올 사람들을 얼마나 많을까 싶었다. 로바니에미 역에 있는 코인라커를 미리 경험해보길 잘한 것 같다. 후훗.

정말 오래간만에 보는 밝은 하늘

로바니에미 역에서는 일본인 2명과 나, 그리고 중국인 5~6명 정도가 내렸다. 여유롭게 짐을 챙겨 코인라커로 갔다. 나는 4유로짜리 라커 하나면 충분하다. 지난번에 옆에서 보니깐 4유로짜리 라커에는 25리터 정도 되는 캐리어가 2개가 들어갔다. 4유로짜리 라커를 찾는데 빈 라커가 없다. 어라?

그럼 5유로짜리에 넣을까 했는데 딱 1개 남아있던 5유로짜리 라커를 중국인 한 명이 선점했다. 다른 거 뭐 없나 하고 찾아보는데 어디서 버스가 왔는데 중국인들이 또다시 밀려 들어오기 시작했다. 마음이 급해졌다. 3유로짜리 라커가 하나 보였다. 캐리어가 들어갈 사이즈는 아니었다. 아쉬운 대로 캐리어 대신 백팩과 잔짐들을 밀어 넣고 나왔다.

이 캐리어를 가지고 산타마을로 가는 건 힘들 것 같았다. 여기도 이 정도면 그 안은 얼마나 복잡할까.


지난번에 왔을 때 봤던 로바니에미 시내의 인포메이션이 생각났다. 혹시라도 거기 가서 짐 보관이 가능하거나 라커가 있으면 짐을 보관해야겠다는 생각으로 눈밭에 캐리어를 끌고 로바니에미 시내까지 왔다.

로바니에미 시내 인포메이션 센터

이런 복지국가. 젠장할 북유럽.

산타가 사는 동네 인포메이션이 빨간 날이라고 문을 닫았다. 멘붕이 왔다.

일단 점심을 좀 먹고 생각해봐야겠다.

지난번에 발견한 중국식당을 찾아갔다.

상기 이미지는 구글지도에서 퍼왔음

* 상호 : Xiang LongRestaurant
* 주소 : Koskikatu 21, 96200 Rovaniemi, 핀란드
* 영업시간 : 연중무휴에 11시 오픈 22시 마감인 듯
* 특징
 - 단품 메뉴 주문은 1층
 - 점심 뷔페는 지하 1층
 - 음식 가짓수 다양, 티꿀리라역 중식 뷔페보다 퀄리티 좋았음
 - 탄산음료 자판기 있어서 무한 리필 가능
 - 와이파이가 있기는 한데... 좀 껐다켜줬으면 하는 바람이 있음. 안 잡힘


지난번에 킬로파에 들어가기 전 평일에 왔을 때 상당히 고퀄리티의 음식에다가 무제한 탄산음료까지 뷔페로 먹은 기억을 떠올려 찾아갔다.

그런데 오늘은 뷔페가 없단다. 단품만 주문받는데 지금 자리도 없는데 자리에 앉아서 주문을 하더라도 1시간 이상 걸린다고 한다. 와... 크리스마스가 대단하긴 대단한가 보다. 하는 수없이 식당을 나왔는데 문 연 식당 찾기도 힘들다. 울며 겨자먹기로 다시 맥도널드를 찾았다. 여기도 만원이다. 자리를 겨우 잡고 주문을 했다. 역시나 주문하고 햄버거 하나 받는 데까지 엄청나게 오래 걸린다. 오늘은 오로라 엽서도 다 떨어져서 없다고 한다. 새삼 크리스마스의 위력을 실감했다. 단 2시간여 만에 완전 지쳐버렸다. 산타마을에 캐리어 가지고 들어가면 얼마나 더 심할까 싶었다. 괜히 나오지 못할까봐 겁도 났다.


크리스마스에 사람 많은 건 둘째치고 이 대목에 장사를 안 하는 핀란드 사람들도 대단했다. 돈보다는 자신과 가족의 행복, 즐길 권리가 우선인 것 같았다. 어느 책에선가 본 것 같다. 한국 사람들은 가족들과 행복해지기 위해 돈을 버는데 핀란드 사람들은 가족들과 함께하는 시간 자체가 행복이라고 생각한다고.

내가 돈을 쓰겠다는데 너네는 왜 문을 안 열어? 일을 안 해? 가 아니고, 이들이 지금 문을 닫고 쉬고 있는 것처럼 내가 엉덩이를 붙이고 추위를 피할 수 있는 공간이 있다는 것, 그 작은 공간에서 이들을 이해하고 생각하고 있다는 것이 오늘 나의 행복한 여행인 것 같다.


오후 내내 맥도널드에서 혼자만의 여행을 마무리하는 시간을 가졌다. 저녁 6시쯤 다시 중국 식당으로 갔다. 앉을자리는 있었는데 역시나 한 시간을 기다리란다. 메뉴를 주문하고 시내로 나왔다. 구경이나 좀 해야겠다.

우리나라에서는 트리 장식을 하기 위해 트리를 세우고 만드는데, 여기는 그냥 길거리에 있는 가로수에 장식을 한다. 역시 북유럽인가.

이 얼음벽돌로 이글루를 만드나보다. 깨알같이 온도계도 있다. 누가 매일 눈을 채워서 바꿔주는 것 같다.

인스타그램 사진 프린터기

실컷 동네 구경을 하고 식당에서 볶음밥을 먹고 마트에서 선물이 될만한 것들을 구매해서 다시 역으로 돌아왔다.

우와... 사람들이 이렇게 많은 것 오랜만에 봤다. 아니 중국 사람이 엄청 많은 것을 오래간만에 봤다. 오늘 나랑 같이 기차를 타고 헬싱키로 가는 사람들이 이 정도다. 로바니에미 시내에도 엄청 많을 것이다. 산타마을에 안 가길 잘한 것 같다. 전에 다녀왔으니 아쉬움은 없다. 단지 크리스마스날 산타마을에서 크리스마스 분위기를 느껴보고자 했었는데 괜찮다. 다이죠부.

나만 공짜 와이파이 쓴다. 나빼고 중국인들 다 로밍했나보다 

다들 부자들인가 보다. 느낌에 중국 본토에서 온 사람들이기보다는 유럽 내에 거주하거나 유학 중인 중국인들 같았다. 짐도 생각보다 많지 않았으며 영어들도 제법 잘했다.

시간이 되었고 기차가 왔다. 이제 헬싱키로 가서 환승을 잘하고 헬싱키 공항으로 가면 된다.

안녕, 라플란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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