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알 오리지널 사우나 그리고 오로라
핀란드 사람들은 사우나를 참 좋아한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목욕탕에 가는 것과 일본 사람들이 온천에 가는 것 이상으로 좋아한다.
개인 집 안에도 사우나가 있고 공용 주택이나 아파트에도 있을 정도라고 한다.
우리나라 사우나에 가면 있는 건식 혹은 습식 사우나 스타일이 물론 흔하게 있는데, 핀란드를 방문하면 수소문을 해서라도 가야 하는 곳이 스모키 사우나이다.
숯에 달궈진 돌이 야외 나무집 같은 곳에 있다. 사람들이 수영복을 입고 쪼르륵 앉아있다. 한 명이 양동이에 물을 받아 국자로 돌에 뿌린다.
그럼 특유의 숯 향이 스모키 하게 올라오면서 증기도 함께 촤악- 올라온다.
건식 사우나가 습식 사우나로 바뀌는 순간이다.
숨이 턱 막힌다. 땀이 쫙 난다.
그럼 사람들이 밖으로 나간다.
보통은 얼음 냉탕(얼지 않는 호수 물)에 몸을 담근다.
내가 본 사람들 중 최고는 옆에 눈밭에서 뒹구는 중년 부부였다.
땀을 잔뜩 흘린 후 저 물에는 들어가겠는데 눈밭에서는 못 뒹구르겠더라.
땀을 흘린 후 얼음 냉탕까지 가는 길에 들어갈지 말지에 대해 엄청 고민을 한다.
머뭇 거리면 땀이 식어 물에 들어갈 엄두가 나지 않는다. 그냥 가야 한다. 여행 가듯이.
자주 가다가 생긴 노하우도 하나 있다.
물이나 음료를 사우나 근처 눈밭에 묻어두는 것이다.
미리 묻어뒀다가 땀 흘리고 찬물에 풍덩하고 나와서 시원하게 한잔 들이켜면 이보다 더 좋을 수가 없다.
해보면 안다.
핀란드 사우나 예절
- 보통 보면 씻고 들어와요.
- 문을 오래 열지 마세요.
- 나무 깔판이나 종이가 주변에 있을 거예요. 위생을 위해 사용해요.
- 나무 깔판은 사용 후 물로 닦고 제자리에 두세요.
- 종이 깔판은 버리면 돼요.
- 돌에 물을 적당히 뿌리세요. 숨 막힐 수도 있어요.
사우나 안에서 같이 땀을 흘리다 보면 수많은 외국인들과 교류도 자연스럽게 하게 된다.
한 번은 핀란드인 가족과 이야기할 기회가 있었다.
헬싱키에 산다는 이들은 큰 아들이 한 20대 중후반 정도 되어 보였다. 어머니께서 먼저 말을 거셨다.
한국에서 왔다고 하니깐 역시나 고정 질문.
사우나 있어? 해봤어? 뭐가 달라?
막 설명을 했다. 한국에도 있는데 이것처럼 야외에 있는 찬물에 들어가거나 사우나 안에 있는 돌에 물을 뿌리진 않는다. 우린 그저 건식 사우나와 습식 사우나로 나뉘어 있다. 모양은 리셉션 건물 1층에 있는 사우나와 비슷하다 등등 막 말하는데 큰 아들이 대화에 참여했다.
한국에서 인턴을 3개월 했다고 한다. 그래서 사우나에 가봤다고. 때 미는 게 신기했다고 한다. 같이 땀을 빼고 얼음 호수에 다녀왔다. 역시 남자는 같이 목욕을 해야 친해진다.
한 번은 스위스 가족이랑 이야기할 기회가 있었는데,
스위스에서 왔다는 어머니와 어린 아들(중학생 정도), 딸(초등학생 정도)이었다.
역시나 고정 질문이 들어온다.
어디서 왔냐, 한국에도 사우나가 있냐, 찬물도 있냐, 들어갈 수 있냐,
날 뭘로 보고.
follow me.
중학교 1~2학년쯤으로 보이는 아들내미가 얼음 냉탕에 머리까지 담그는 날 보고 기겁을 한다.
후훗. 하고 우쭐해져 있는데 초등학교 1~2학년쯤으로 보이는 스위스 소녀가 혼자 쪼르르 얼음 냉탕에 가더니 몸은 담근다.
역시 알프스의 소녀인가? 역시는 역신가.
혼자 가더니 목 밑까지 저 찬물에 담그고 나온다. 솔직히 저 나이 때 나는 목욕탕 찬물에서 못 들어갔던 것 같다.
스모키 사우나는 야외에 있어서 문만 열어도 그림이다.
밝을 때는 문을 열면 새하얀 겨울 왕국이 펼쳐지고 어두울 때 문을 열면... 오로라가 보인다.
진짜 말도 안 되는 곳이다.
사우나를 하다가 문을 열고 나왔는데 머리 위에 오로라가 떠 있는 곳. 여기가 바로 킬로파이다.
이렇게 밝은데 오로라가 보인다.
아이폰6s로 찍어봤는데 나온다.
대박.
이건 사기다.
거짓말.
말도 안 돼 진짜.
아니 어떻게 스모키 사우나에서 땀을 쫙 빼고 눈 속에 넣어둔 얼음 동동 콜라를 마시면서 영하 13도에 웨이크 바지만 입고 오로라를 볼 수가 있지?
처음에 숙박비 결제할 때만 해도 내가 괜한 짓을 하고 있나 싶었는데 오늘은 진짜 숙박비가 전혀 비싸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세상에 이런 말도 안 되는 숙소가 어디 있어.
내가 칵슬라우타넨 호텔 유리 이글루에 누워보지는 않았는데 가만히 따뜻한 곳에 누워서 보는 오로라보다 스모키 사우나에서 땀 흘리면서보는 오로라가 아마 더 멋지고 근사하지 않을까 싶다.
실컷 사우나하고 밤 9시 43분에 방에 들어와서 오로라 앱을 켰을 때 49%의 가능성이었는데, 샤워하고 오니깐 66%다. 오늘 파티하는 날인가 보다.
좋아, 파티를 즐기러 나가보자.
사진을 열심히 찍고 있는데, 갑자기 방전이 되면서 꺼졌다.
일보후퇴. 오늘을 대비해 준비를 해왔지 내가 또.
카메라에 랩이나 뽁뽁이만 붙여놔도 카메라 자체에서 발생하는 열이 밖으로 쉽게 빠져나가지 않아서 배터리 보존이 바로 찬 기운에 노출되었을 때보다는 잘 된다고 들었다. 나는 거기에 핫팩까지 붙여놨다. 오늘 오로라가 마지막 오로라다 생각하고 추위에 대비를 단단히 하고 나갔다. 그리고 인생 사진을 건졌다.
30분 정도 보다가 추워지면 들어와서 쉬다가 또 나가서 보았다.
오로라 헌팅은 온듯한 중국 단체와 한국인 커플이 연신 감탄사를 냈다.
훗, 어서 와. 킬로파는 처음이지?
차 타고 오느라 고생했어. 나는 여기가 숙소야.
방에서 창문을 열어도 보이고,
사우나에서 땀 빼고 냉탕에 들어가다가도 보이고
오두막 카페에서 팬케익 만들다가 나오면 보여.
5박 하면서 오로라를 3일 봤다. 실컷 봤다. 여한이 없이 봤다. 지금도 머리 속에 그려진다.
너의 이름은 오로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