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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utumnlim Aug 04. 2023

함께 울지만 울고만 있을 순 없다.


미얀마 양곤은 미얀마에서 가장 도시화된 곳 중 하나다. 행정수도로써 대부분의 편의시설과 인프라가 모여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양곤에서 한인으로, 외국인으로 살다 보면 좋은 집에 살고 좋은 차를 타고 좋은 식당을 주로 다니게 된다. 물론 "좋은"의 기준을 어디에 두냐에 따라 누군가에겐 '그지 같은' 일 수 있겠지만, 미얀마의 평균을 기준으로 보면, 보통 외국인이 말하는 "기본" 생활 수준은 꽤 높은 수준이기 때문에 누군가는 인정하지 않는다 할지라도 "좋은"이 맞다.


나는 직업상 어렵고 힘든 사람들을 자주 만난다. 물론 직업이 뭐든 간에 미얀마에 사는 사람이라면 어렵고 힘든 사람들을 자주 만난다. 그냥 길거리를 걸어 다니기만 해도 아니, 차를 타고 큰 길만 다녀도 신호등이 있는 곳이라면 신생아를 들쳐 엎고 구걸하는 젊은 여자, 비에 홀딱 젖은 꽃을 파는 아이, 다리 한쪽이 없어 절뚝거리며 물과 담배를 파는 아저씨가 창문을 두드린다. 애써 못 본 척, 바쁜 척 해도 한 두 번이지, 이제는 얼굴이 익을 정도로 매일 그들을 만나는 것은 보통 곤혹스러운 일이 아니다.


사회복지사들 중에 우울증 환자, 알코올 중독자들이 그렇게 많다고 한다. 사회복지학을 공부하던 때 사회복지사의 자살률을 다룬 논문을 본 적도 있다. 사회복지사는 타인의 고통과 아픔을 매일매일 보고 책임감을 가져야 하는 사람이기 때문이지 않을까 생각한다. 매일 힘들고 슬프고 괴롭고 소망이 없다 이야기하는, 도움을 청하는 사람들을 만나서 그들의 삶의 이야기를 깊게 듣고 공감하면 공감할수록, 거기에 잠식되고 소진된다.

처음 미얀마에서 '정말' 소망이 단 하나도 없어 보이는 사람들을 만나고 양곤으로 돌아왔을 때, 내 마음이 그랬다. 모든 것이 부질없게 느껴졌고, 쓰러지고 냄새나는 집에 10분도 채 앉아 있기 힘들어하면서 이 사람들을 위해 일을 한다고 말을 하고, 간신히 버티다 나와 '오늘 하루 정말 고됐다!' 하며 퇴근 후 호텔 또는 번듯한 양곤 우리 집으로 돌아와 포근하고 뽀송한 침대에 누우며 안정감을 느끼는 내가 참 가증스러웠다.


함께 일하시는 분이 우리가 하는 일이 '암 환자에게 대일밴드 붙여주는 것 같은 느낌'이라고 표현하셨다. 내가 아무리 노력하고 애쓴다 한들, 이들을 전부 도울 수 없고 어디에 도움이 되는지도 확실히 알 수 없고, 이렇게 하는 게 맞는지 확신조차 없을 때도 있다. 이런 나의 무기력함. 쓰나미가 몰려오는데 그걸 막겠다고 장난감 방패를 들고 이리저리 부질없이 뛰어다니기만 하는, 정신 차리고 보면 이미 홀딱 젖어 축축하고 무거운 그런 느낌. 물에 빠져 죽어가는 사람들을 눈앞에 보고도 뒤돌면 내 옷이 젖은 게 찝찝한 나의 부끄러운 모습, 이런 것들을 어찌할 방도가 없어 한도 끝도 없이 자괴감에 빠지고 우울해질 때도 있다.


요즘 유행어(?) 중에 "야, 너 T야?"라는 말이 너무 웃긴다. 감정적으로 공감하지 못하고, 모두가 울 때 눈 동그랗게 눈을 뜨고 엥? 하고 있는 사람을 유별나고 못된 사람 취급하며 "너 T야!?" 하며 면박 주는 게 너무 웃기달까.

그런데 이걸 어쩌나,.. 나는 T다. 하지만 F성향도 굉장히 강하다. 그래서 멜로드라마, 소설책, 슬픈 가사가 있는 노래, 힘든 이야기 듣기를 그리 좋아하지 않는다. 어렸을 적부터 그랬다. 그런 것을 한 번 접하면 헤어 나오기가 힘들고 소진이 커서 애초에 접하지 않고 거리를 두는 것으로 방어 기제가 생겼다. 그런 내 선택의 패턴들이 굳어져 눈에 띄는 T 성향으로 흘러갔을지도 모르겠다.


일을 할 때에는 더 T가 되려 애쓴다. 사람을 돕는 일을 하면서 T가 되려고 애쓴다니? 싶을 수 있지만, 만약 내가 만나는 모든 사람들의 삶과 모든 프로젝트의 사연에 감정적으로 빠져든다면, 나는 오래 일을 못할 거다. 아니, 시작하자마자 그만뒀을지도 모른다. 적당한 거리를 두고 내 마음을 지키는 것이 나는 나이기 때문에 가장 중요하다. 나를 상처 입히면서 까지 타인에게 나를 내어주는 것은, 결국 순간 뜨겁지만 빠르게 사그라드는 불이 될 수밖에 없다. 내가 건강해야 타인을 오래, 건강하게 도울 수 있다. 그리고 감정적인 도움은 당장은 도움이 되는 것 같아 보여도 장기적으로 더 안 좋은 영향을 줄 수 있기 때문에 도움에도 전략이 필요하고 이성이 매우 중요하다. 이걸 몰라서 코로나 이전에 미얀마에 살면서 몸과 마음이 많이 다치기도 했고, 건강을 잃기도 했다. 자극이 끊임없는 이 미얀마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나를 보호하는 방어벽이 반드시 필요하다.


어제 양곤 외각에 사는 아이들을 만났다. 한국에서 온 손님들이 짧은 시간 동안 아이들에게 선물도 주고 많이 놀아주며 사랑을 줬는데, 이제 떠난다고 하니 아이들이 무척 울었다. 우는 아이들을 보며 '뭘 알고 우는 걸까?' 하며 시니컬하게 생각했다. 그렇게 시니컬하게, 한 발자국 멀리 떨어져 있고 싶었다. 그런데 몇몇 아이들의 가정 상황을 듣게 됐다. 정말 기가 막힌 다는 표현으로는 충분하지 않은 사연들을 들으며 내 T방어벽에 금이 갔다.


가엾어라,.. 늘 해맑게 뛰어다녀도 그 마음은 썩어 문드러져 있을 거라는 말이 비수처럼 박혔다. 머리로는 뭘 몰라도, 마음은 헐떡이며 울고 있던 것이 저렇게 기침처럼 튀어나와 눈물을 쏟아내는구나 싶었다.

나도 같이 울었다. 우는 순간 그 힘듦과 어려움이 내게 밀려 들어와 한동안 마음이 힘들어질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별도리가 없었다. 딱하고 딱해라. 원래 인생은 고해라지만, 너무 가혹하다.

부모를 탓하자니 그 부모도 이런 딱하고 가엾은 어린아이로 시작했겠지. 아들이 자라 아버지가 되고 딸이 자라 어머니가 될 뿐이니, 탓도 가혹하다.


이런 상황에서 (금이 갔더라도) T방어벽을 다시 세워본다. 그래서 나는 이들을 위해 무엇을 하고 있는가, 돌아본다. 함께 울지만 울고만 있을 순 없다. 나는 오래 곁에 있어줘야 하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롱런하려면 체력분배가 중요하다. 나의 항상성을 유지하고, 나에게 맡겨진 일들을 잘 해내야 한다. 그것이 함께 울어주는 것만큼이나 중요한 현실이기 때문이다.


지금 나는 에어컨 바람 아래 시원하고 뽀송하게 앉아 제너레이터가 제공해 주는 전기로 노트북을 충전하며 고상하게 타자를 두드리고 있다. 개인적으로는 더 잘 살고 싶고, 더 나은 삶을 살고 싶은 것도 사실이다. 동시에 미얀마의 민낯 속에서 부담과 책임감에 허우적 대는 것도 진심이다. 나는 이 두 세계에 양다리를 걸치며 오가고 있다. 내 삶과 그들의 삶의 괴리 속에서 고통스럽지만, 최선을 다 해 살며 더 많은 시간과 에너지와 재정을 만들어 내고, 필요한 곳에 흘려보내는 것이 이 고통에 대한 대답이라 여긴다. 그리고 참 아이러니하게도 내가 더 고통스럽기를 바란다. 방어벽은 더 단단하게 지키되, 그들을 향한 아픈 마음은 무뎌지지 않기를 바란다. 이게 뭔지 나도 완전히 이해되진 않지만 그게 내 삶의 소명이고 지금 내가 미얀마에서 살아가는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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