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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utumnlim Mar 25. 2024

[알쓸미잡: 알아두면 쓸데 있으려나 미얀마 잡학사전]



최근 어떤 기회가 있어서 그동안 미얀마에서 얼마나 살았나 세어보았다.

2015년 처음 미얀마에 와서 지금까지 왔다갔다한 시간들을 하나하나 세어보니 3년 하고 7개월이 조금 넘었다. 만달레이에 6개월, 몰라먀잉에서 16개월, 양곤에서 21개월을 살았고 지금도 살고 있으니 쌓여가겠지. 만달레이, 몰라먀잉에서는 미얀마 사람들과 함께 지내며 생존 언어와 문화를 익혔고, 지금 양곤에서는 미얀마 곳곳을 다니며 사람들을 만나고 이야기를 듣는 일을 하고 있다.


나는 한국에 사는 것보다 미얀마에 사는 것을 더 좋아한다. 물론 우리나라가 아닌 외국에 살기 때문에 힘들고 어려운 부분, 답답한 것들도 많지만 그럼에도 나는 미얀마가 좋다. 미얀마에서 나는 좀 더 자유롭고 여유롭다. 이 땅이 내게 선물처럼 쥐어주는 평안함이 있다. 자유, 평화는 지금 미얀마의 상황에서 뚱딴지같은 소리 같지만 평안은 다른 문제다. 나는 한국보다 미얀마에서 내 안의 평안을 더 자주, 잘 찾아 누리고 있다.


여행이 아닌 거주를 목적으로 해외에 나온 것은 미얀마가 처음이었다. 문화차이라는 것은 보통 책에서 보거나 여행 중 한 두 번 '이건 뭘까?' 하며 갸우뚱하며 접하던 정도였는데, 거주를 시작하면서 내 눈이 닿는 대부분의 것들이 문화차이가 되었다. 사실 지금은 최대 도시 양곤 한복판에서 한인들과 어울려 살다보니 문화차이랄 것을 크게 느끼며 살고 있진 않다. 어느 정도 익숙해지고 뉴비의 신선한 마음이 점점 사라지면서 이젠 별로 놀랍지 않고 그런가 보다 하며 넘어가는 그런 경우도 많다. 이렇게 나도 고인 물이 되어 가는 건가...


하던 차에!

최근 가족과 지인이 미얀마에 놀러 와서 가이드를 해줬다. 미얀마에 오기로 결정한 순간부터 미얀마에 와서 한국으로 돌아가는 날까지 그들은 '와 신기하다!'를 외쳐댔다. 그리고 이제 나는 당연하다 생각해서 언급조차 하지 않았던 것들을 묻는 그들을 보며 내가 든 감정은 '오 부러운데?'였다.

새로운 경험을 하는 것을 좋아하는 내게 그런 미지의 세계를 탐색하는 듯한 뉴비의 신선한 마음이 새삼스럽게 다가왔다. 그들의 시선으로 보니 미얀마는 정말 흥미롭고 신기한 것들이 많았다. 으레 그런 거겠지 싶었던 것들도 뉴비들의 질문에 다시 알아보다 보니 나도 새롭게 알게 되는 것들이 많았다.


2018년에 처음 양곤 순환 열차를 탔었다. 몰라먀잉으로 가기 전 양곤에 두 달 정도 지내며 언어를 배울 때였다. 미얀마어 선생님과 다른 학생들과 체험차 탄 거라 어떻게 탔었는지, 어디에서 내려서 어떻게 갔었는지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아마 불편한 것들은 다 선생님이 준비하고 처리했을 테고, 우리는 이미 구입한 티켓을 받아 타라는데서 타고 내리라는 데서 내려 준비된 차량을 타고 돌아왔을 것이다.

얼마 전 양곤 순환 열차를 다시 탔다. 엄밀히 말하면 그 열차는 아니다. 좀 더 깨끗해진 것을 보니 열차를 교체했다는 말이 진짜였나 보다. 이번에는 모든 과정을 직접 알아보고 결정해서 다녔다. 기차역을 알아보고 티켓을 구입하고 기차를 타서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고, 친구를 사귀고 원하는 곳에 내려서 길을 걸으며 마음에 드는 골목길에 들어가 사람들의 일상을 구경하고 물건을 사며 상인 아저씨 옆에 앉아 이야기를 나누었다.

놀랍게도 처음 기차를 탔을 때보다 월등히 즐거웠고 유익했다. 내가 기차 타고 양곤 여행을 하겠다고 했을 때 대부분의 사람들의 반응은 '왜?'였다. ㅋㅋㅋ '그걸 굳이?...' 하는 그들의 마음도 충분히 이해가 된다.

'덥고 지저분하고 사람 많은 미얀마 기차를, 심지어 타봤으면서 또?'

하지만 뉴비의 마음가짐과 호기심을 빌어온 고인 물의 일상 재조명 여행은 꽤나 짜릿했다. 그전에는 보지 못했던 것들을 보게 되고, 그때는 언어가 안 돼 묻지 못했던 것을 물으며 대화를 이어갈 수 있다.


그리고 이번 여행을 통해 느낀 것 또 한 가지는, 우리가 생각보다 현지에 살고 있지 못하다는 것이다. 미얀마에서(다른 나라는 안 살아봐서 모른다.) 살다 보면 개인차량(또는 택시 정도)으로 기사 외에는 미얀마 사람 만날 일 없이 다니던 곳들만 다니고, 외국인들이나 몇 퍼센트의 미얀마 사람들이나 다닐 수 있는 깔끔하고 가격대 있는 식당이나 골프장, 샵 등 정도만 주로 가게 된다. 나도 미얀마의 전부를 안다거나 내가 가장 많이 다녔다고 절대 이야기할 수 없지만 조금 다녀보니 양곤에서 사는 외국인의 삶은 미얀마의 정말 작은, 상위 몇 프로의 삶일 뿐, 보통의 미얀마의 삶을 엿보기도 쉽지 않다.

참 안타까운 것은, 생각보다 현지와 섞여 사는 것이 어렵다는 것이다. 언어와 문화가 다른 사람들과 깊게 어울리고 시야를 확장한다는 것은 개인이 할 수 있는 노력의 여부와 상관없이 어려움이 많다. 나는 하루종일 미얀마어로밖에 듣고 말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도 좀 살아봤지만 그런 완벽한 현지 속 상황에서도 그들과 나 사이에 있는 얇은 듯 질긴 막 같은 것을 결국 찢고 나오지 못했다.(지금도 동일)



즉, 지금 내가 미얀마 어디 어디에 살아봤고 무슨 일을 하고 있으며 미얀마에 몇 년 살아봤다!라고 할지라도 그것이 내가 미얀마를 정말 잘 알고 완전히 이곳에 녹아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심지어 미얀마에서 몇 십 년을 살았다 하는 분들 중에서도 대화를 나누다 보면 갸우뚱하게 되는 분들도 꽤 있었다. 나를 미얀마 고인 물이라 표현한 것은 내가 뭘 대단히 많이, 잘 알아서가 아닌 그저 그 다름과 불편함에 익숙해져서 더 궁금해하지 않고 그런거겠지 지레 짐작하며 판단하는 것들이 많아졌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런 매너리즘을 깨고 내가 살고 있는 이 미얀마를 다시 흠뻑 즐기며 조금이라도 더 이 나라에 녹아보고자 [알쓸미잡: 알아두면 쓸데 있으려나 미얀마 잡학사전]을 기록한다. 몰라도 생존은 가능하지만 알면 보이고 들리고 재밌는 그런 것들을 모으고 있다. 솔직히 이걸 누가 볼지, 나만 재밌는 거 아닌지 ㅋㅋ 뻘쭘함이 앞서지만 그럼 뭐 어떠리, 앞으로도 여행과 일상을 동시에 사는 뉴비와 고인 물 그 사이 어딘가에서 오래오래 지내고 싶은 나를 위해 일단 기록을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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