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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utumnlim Apr 02. 2024

[알쓸미잡]#02_ 님아, 신호등을 찾지 마오

알아두면 쓸데 있으려나 미얀마 잡학사전

"신호가 초록색으로 바뀌면 왼쪽 오른쪽 좌우를 살피고 손을 들고 건너요"

초등학교 때까지 하루에 한 번은 들었던 교통안전의 기본 한 문장이다. 하지만 미얀마에서는 이 문장에서 앞의 세 단어는 지워야 한다.

"왼쪽 오른쪽 좌우를 살피고 빨리 건너요!"


미얀마에서 횡단보도를 보기란 하늘의 별따기다. 그나마 대도시인 양곤에는 도로에 횡단보도 흰 줄이 그어져 있는 곳들이 몇 있지만, 신호등을 보기는 역시나 어렵다. 길을 건널 신호등을 찾겠다고 주위를 둘러보지 않아도 된다. 다운타운 쪽에서 한 두 개 빼곤 본 적이 없다. 신호등 색의 표지판은 종종 볼 수 있는데, 차를 위한 신호등에 이런 의미가 있으니 보행자는 알아서 잘 생각해서 다니라는 뜻인가 싶다.



빨간색은 멈추세요, 노란색은 보세요, 초록색은 가세요.


그럼 어떻게 길을 건너야 하느냐 하면, 그냥 건넌다. 보통 무단횡단이 일상이고 유일하다. 무단횡단을 못하면 미얀마에서 걸어 다니기 어렵다. 두려워하지 말고 담대하게, 길을 가로질러 뛰면서도 차가 어디에서 어떤 속도로 오는지 빨리 살피며 내 속도도 조절을 해야 한다.


여기서 꿀팁은, 주위 미얀마 사람들이 건널 때 붙어서 같이 건너면 좋다. 무단횡단에 익숙하지 않은(?) 외국인에게 그 타이밍 잡기란 꽤 쉽지 않은데, 미얀마 사람들에겐 이 것이 일상이므로 요리조리 잘 건너는 것은 물론이요, 여유까지 있다. 두근두근 쫓기는 마음을 부여잡고 어딘가 능숙해 보이는 미얀마 분 옆에 슬그머니 붙어서 같이 건너면 꽤 안심이 된다. 그리고 스님과 함께 건너면 더 안전하다. 물론 그것도 상황마다 다르겠지만 보통 미얀마는 스님들을 존중하기 때문에 좀 더 조심해 준다.



여긴 만달레이 궁 앞 6차선 도로인데, 파란색 표지판에 "길을 건너는 분들, 오른쪽을 보고 왼쪽을 보고 오른쪽을 다시 보고 길을 건너세요."라고 쓰여 있다. 6차선이든 10차선이든 좌우를 잘 살피고 타이밍을 보다가 뛰어서 건너가야 한다.


그래서 아찔한 상황들도 많다. 운전을 하다 보면 좌우 어디에서 사람이 갑자기 튀어나올지 알 수가 없고, 반대편 차를 보며 걷는 보행자 때문에 속도를 늦춰야 할 때도 한두 번이 아니다. 사거리에서 꺾다가 중간에 서 있는 사람들을 칠 것 같아 무서웠던 적도 많다. 사람 중심이 아닌 차 중심으로 돌아가는 도로다.


미얀마에 살다 보면 이런 무단횡단이 아주 익숙해지고 대범해지는데, 이 것의 문제는 다시 한국에 갔을 때 나타난다. 횡단보도 신호가 어찌나 긴지... 기다릴 수가 없다. 도로가 좁으면 나도 모르게 무단횡단을 하고 있는 나의 모습을 발견한다. 이러면 안 되는데, 유법에서 무법이 되긴 쉽지만 무법에서 유법이 되긴 꽤나 불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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