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다림의 첫날
여덟 살의 나, 여섯 살의 동생.
엄마가 떠난 그날 이후, 우리는 ‘기다림’이라는 단어를 배웠다.
계란프라이 두 개와 콩나물무침
그날의 식사는 두 끼를 채울 만큼의 양이었다.
내 나이 여덟 살, 여동생은 여섯 살이었다.
서둘러 외출하던 엄마의 얼굴은 이제 희미하다.
다만, 우리를 남겨둔 채 문밖으로 사라지던 그 뒷모습만이
마음 한구석 깊이 각인되어 있다.
그날 이후로 나는 ‘기다림’이라는 단어를 처음 배웠다.
문틈 사이로 스며드는 햇살을 바라보며,
언제쯤 엄마가 돌아올까 수없이 되뇌었다.
시간이 흐를수록 그 기다림은 두려움으로 바뀌었고,
두려움은 어느새 ‘익숙한 고요’가 되었다.
엄마가 떠난 이유를 알지 못했다.
그저 어딘가로 잠시 다녀올 거라 믿었고,
그 믿음 하나로 어린 나와 동생은 하루를 버텼다.
그러나 그 하루가 이틀이 되고, 일주일이 되고,
결국 영영 돌아오지 않을 날들이 되어버렸다.
집 안에는 엄마의 흔적이 여전히 남아 있었다.
밥상 위에 놓인 젓가락 두 벌,
장롱 위에 덩그러니 올려진 손가방,
그리고 식탁 옆 의자에 걸려 있던 검은색 외투.
시간이 지나며 모든 것이 먼지로 덮여갔지만
그것들을 치우지 못했다.
마치 엄마가 돌아와 다시 사용할 것만 같았다.
그 무렵, 우체통에는 가끔 두꺼운 편지봉투가 꽂혀 있었다.
1980년대, 아버지는 사우디아라비아의 건설 현장에서 일하고 계셨다.
그곳에서 보내온 편지였다.
봉투에는 사막의 먼지 냄새가 배어 있는 듯했고,
우표 위에는 낯선 아랍 문자가 찍혀 있었다.
그러나 그 편지들은 대부분 뜯기지 않은 채 쌓여만 갔다.
엄마가 떠난 뒤로, 편지를 열어볼 사람이 없었기 때문이다.
나는 그 편지들을 가끔 꺼내 손끝으로 쓰다듬었다.
아버지의 글씨를 따라가며 생각했다.
그 안에 엄마의 이름이 적혀 있을까,
혹은 우리 형제의 안부가 담겨 있을까.
하지만 봉투를 열지 않았다.
차마 그 안의 진실을 마주할 용기가 없었다.
그 시절의 나는 울지 않았다.
울면 엄마가 더 멀어질 것만 같았다.
대신 아무 말 없이 문밖을 바라보았다.
밤이 오면 동생이 내 손을 꼭 잡았고,
나는 그 작은 손을 꼭 쥔 채 잠이 들었다.
그렇게 시간이 흘렀다.
하지만 엄마는 돌아오지 않았다.
그리고 세상은, 아무 일도 없었던 듯 흘러갔다.
⸻
어린 어른
국민학생이 된 나를 돌봐줄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아침마다 학교에 가야 했지만,
집에 혼자 남겨질 동생을 생각하면 문밖으로 발이 떨어지지 않았다.
여섯 살짜리 동생을 두고 교실에 앉아 있는 일이
도무지 마음이 놓이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종종 학교에 가지 않았다.
출석부에는 결석 표시가 늘어갔고,
담임선생님은 이유를 물었지만
어린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저 고개를 숙이고,
“집에 사람이 없어요.”
그 한마디만 겨우 내뱉었다.
집은 조용했다.
햇살이 벽을 타고 천천히 이동했고,
시간이 흘러도 아무 소리도 나지 않았다.
동생은 내 옆에서 인형을 안고 있었다.
그 인형은 엄마가 떠나기 전날 밤,
잠들기 전 동생 품에 꼭 쥐어준 것이었다.
그 작은 인형은,
어쩌면 그때부터 엄마의 자리를 대신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점심시간이 되면 냉장고를 열었다.
그 안에는 달걀 몇 개, 콩나물,
그리고 반쯤 남은 고추장이 전부였다.
나는 프라이팬을 꺼내 달걀을 하나 깨고,
콩나물을 데쳐 밥 위에 올려놓았다.
그렇게 두 아이의 하루 식사가 완성됐다.
동생은 말없이 먹었고,
나는 그런 동생을 바라봤다.
그때의 나는 형이 아니라,
어른이 되어가고 있었다.
⸻
조용한 손길들
가끔은 동네 아주머니들이 문을 두드렸다.
“밥은 먹었니?”
“아빠한테는 연락이 되니?”
그때 나는 어른들의 시선이
따뜻하면서도 낯설게 느껴졌다.
우리 같은 작고 불쌍한 아이들을 세상이 바라보는 눈빛이라는 걸,
그제야 알았다.
그 도움 덕분에 우리는 하루를 견딜 수 있었다.
두려움 속에서도, 조금씩 마음이 놓이는 순간들이 있었다.
동생은 내 옆에서 잠들었고,
나는 그 작은 손을 꼭 잡은 채 밤하늘을 바라보았다.
세상은 여전히 큰 곳이었지만,
그 작은 손길들 덕분에
우리에게도 살아갈 숨구멍이 있다는 걸 알았다.
⸻
익숙한 고요의 이름
한 달쯤 지나자,
학교에 나가지 않던 나를 찾아오는 친구들이 하나둘 생겼다.
하지만 교실에 앉은 나는 여전히 겁 많고 작디작은 아이였다.
엄마도, 아버지도 없이 남겨진 우리 둘은
동네에서 가장 불쌍한 아이들처럼 보였을지도 모른다.
학교에 있어도 마음은 늘 집에 있었다.
칠판 위의 글자는 눈에 들어오지 않았고,
쉬는 시간마다 창가에 서서 하늘만 올려다봤다.
혹시 동생이 울고 있진 않을까,
불을 끄지 않고 잠들진 않았을까.
그런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똑같은 옷을 한 달 가까이 입었고,
빨지도 못한 채 다녔으니
냄새는 나지 않았을까 조마조마했다.
머리카락은 뒤엉켜 뾰족뾰족,
눈은 초롱하지만 늘 피곤해 보였다.
그런 우리가 겁나게 불쌍하다는 걸,
세상 사람들은 몰랐다.
그럼에도 친구들이 말을 걸어오면,
우리 작은 마음은 조금씩 흔들렸다.
그 따뜻한 목소리에 눈물이 날 것 같기도 했지만,
그마저도 어색했다.
우리 둘은 세상에서 제일 작은 아이들이었다.
그리고 그 작고 외로운 마음을
아직은 아무에게도 내어줄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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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겨진 집의 온기
그렇게 우리 둘이 작고 겁 많고 불쌍하다는 사실은
동네 사람들의 눈에도 금세 들어왔다.
말하지 않아도 소문은 퍼졌고,
조용히 우리를 돌봐주는 손길들이 하나둘 나타났다.
문 앞에는 따뜻한 밥그릇이 놓이기도 했고,
냉장고에는 반쯤 식은 반찬이 덩그러니 들어 있었다.
누가 두고 갔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그 작은 손길들은 말하지 않아도 위로가 되었다.
동생은 그 음식을 조심스레 받아 안았고,
나는 마음속으로 고마움을 느끼면서도
말 한마디 제대로 하지 못했다.
말을 하면 어른들이 우리를 더 측은하게 볼까 봐,
그저 눈만 깜빡이며 고개를 끄덕였다.
가끔은 아주머니들이 집 앞에 앉아
“밥은 먹었니?”
“오늘은 학교 갔니?”
하고 물어보았다.
그때 나는 어른들의 시선이
따뜻하면서도 낯설게 느껴졌다.
우리 같은 작고 불쌍한 아이들을 세상이 바라보는 눈빛이라는 걸,
또다시 알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