능력 있는 중간관리자란

'나는 능력 있는 팀장인가'

by 에스더

직장생활 16년 차.

이제 나는 '팀장 2년 차'가 됐다.


직장생활을 막 시작했을 무렵, 내 꿈은 '고액연봉자, 즉 고급 노예가 되어 정년퇴직을 하는 것'이었다.


그때는 지금처럼 직업 선택의 폭이 넓지 않았다. 지금은 흥미가 직업으로 연결되기도 하는 유연한 세상이지만, 내가 막 취업시장에 뛰어든 때만 하더라도 으레 '회사원' or '전문직'을 선택하는 게 일반적이었다. 창업도 희소했다.


돈은 많이 벌고 싶었지만, 창업을 하기에는 특별한 아이디어도, 추진력도, 용기도 물론 자본금도 없었다. 그렇다고 전문직을 할 정도로 공부에 특별난 재주가 있지도, 엉덩이 힘이 강하지도 않았다. 남은 선택지는 단 하나, '회사원'이었다. 어차피 너도나도 취업이 목표였기에 내 선택이 별스러운 것도 아니었다.


나는 비교적 다른 사람들에 비해 전공을 잘 살려 취직했다. 게다가 전공과 직무, 재능의 교집합이 어느 정도 일치해 업무 만족도도 높고 성과도 괜찮았다. 높은 인정욕구 탓에 '잘한다'는 칭찬이 나를 계속 춤추게 했지만, 무엇보다 능력 있는 중간관리자가 되고 싶었다.


이유는 두 가지였다.



첫째, 내가 조직에서 올라갈 수 있는 최종목표를 '팀장'으로 설정했다.

임원을 달 정도의 역량도 배포도 없었으며, 무엇보다 그만한 책임감을 지고 싶지 않았다. 그리고 사회적으로 보이는 여자 임원의 수가 너무 적었고, 그 풀에 낄 자신이 없었다.


둘째, 능력이 없으면 팀장을 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아랫 연차 시절, 내 눈에 비치는 팀장은 전지전능해 보였다. 어떤 질문에도 답이 있었고, 어떤 상황에도 해결책이 있었다. 그랬다. 그때는 그렇게 보였다. 그래서 팀장이 되려면 유능함은 필수조건이라고 생각했다.



그렇다면, 누군가 팀장이 된 나에게 "너는 팀장을 할 만한 능력을 갖추었는가"라고 묻는다면, "Yes or No"로 답할 수 있을 것 같다.


무슨 뚱딴지같은 대답이냐 하겠지만, 어린 시절 내가 정의한 능력은 지극히 '실무능력'에 국한돼 있었다. 그런데, 실제 '장(長)'을 달아보니 팀장이 갖춰야 할 능력 중에 실무는 일부분이었다. 그것은 절대 전체가 될 수 없었다. 사실 발휘할 시간도, 기회도 별로 없다.


그렇다면, 팀장에게 요구되는 주요한 능력은 무엇인가? 바로 '정치력'이다. 이 능력에 따라 조직에서 중간관리자 이상으로 치고 나가느냐 마느냐가 결정되는 것이다.



자고로 능력이란 방향성을 어디로 설정하느냐에 따라 선하게도, 악하게도 발휘되는 법이다. 조직의 모습은 대부분 리더를 따라가기 마련이다. 그래서 리더가 능력 대비 지나치게 욕심이 많다면, 조직은 활기를 잃어가고 군데군데 균열이 간다. 그리고, 이런 리더가 군림해 있는 조직일수록 '정치력'은 더욱 돋보인다. 그리고 내가 아는 한, 아주 많은 기업들이 규모에 상관없이 이런 양상을 띠고 있다. 덩치가 클수록 실체에 접근하기까지 시간이 더 걸린다는 차이만 있을 뿐이다. 그렇다면, 다시 이 문단의 처음으로 되돌아간다면 선한 정치력으로는 조직에서 생존하기 어렵다는 결론이 도출된다.


아랫 연차 시절 가졌던 의구심 중에 하나는 "왜 권력의 정점에 가까워질수록 탐욕스러운 사람들밖에 없을까"였다. 도대체 풀리지 않는 의문이었다. 그나마 탐욕과 실무능력이 비례하다면 양호한 편이었다. 그러나 실무능력은 바닥을 기는 데 반해 탐욕스러움은 하늘을 향해 치솟은 경우도 왕왕 있었다.


정년퇴직을 꿈꿨던 나로서는 도대체 누구를 롤모델로 삼아야 할지 혼란스러웠다. 그들처럼 살고 싶지는 않았다. 아직 먼 일이라고 생각하며 덮어두고 그저 코 앞에 닥친 업무들을 처리하며 지냈는데 어느덧 목적지에 도달해 버렸다. 그리고 팀장에게 이토록 밀도 높은 정치력이 요구될지 몰랐다. 엄밀히 말한다면 정치의 주체로서 참여를 요구한다기보다 주요 장기 말로써 이리저리 휘둘린다는 표현이 더 정확하겠다. 그리고 그들의 혈투에서 나와 내 팀을 지키기 위해 자발적으로 정치력을 행사하기도 했다. 이래저래 내가 생각한 팀장의 능력과 실제 중간관리자에게 필요한 능력은 전혀 연관성이 없었다.



그렇다면, 앞으로 돌아가서 누군가 팀장이 된 나에게 "너는 팀장을 할 만한 능력을 갖추었는가"라고 다시 묻는다면 나는 이렇게 대답하겠다.


- "N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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