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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동 May 20. 2021

모르겠다

 전화를 했다. 2년 전에 만났던 목수 반장에게 전화를 해 일자리를 부탁했다. 딱히 인테리어 목수를 다시 하려는 생각은 없었지만 그쪽 일을 조금 더 경험하면 뭔가 도움이 될 것 같다는 생각은 있었다. 충동적이고 공상 같은 생각이었다. 앞날에 대한 계획이 없으니 그때그때 닥치는 상황에 따라 반응한다. 그러다 보니 사는 꼴이 나아지질 않는다. 바닥에 머리를 박고 제자리를 뱅글뱅글 도는 것 같다. 내 기질이 문제다. 한 가지 일을 진득하게 이어가질 못한다. 조금 건드리다가 이내 질리고 떠난다. 목조주택 목수, 벼룩시장 셀러, 어시스턴트, 인테리어 목수, 조경, 현장 새끼 관리자, 하자보수 조공. 이런 일들을 돈 번다고 옮겨 다녔다. 길게는 3년을 했지만 짧은 일은 두 달을 넘기지 못하고 그만두었다. 젊은 시절부터 생각해도 학원 강사 일과 일러스트레이터 일을 제외하고는 모두 쉽게 질려서 그만두었다. 이건 기질의 문제겠지.  


그리고 조경 일은 실패한 것 같다.  지난겨울에 일주일 경험하고 일이 없어서 다른 일을 잠깐 했었다. 현장 관리자로 한 달을 일하고 아닌 것 같아서 그만두었다. 자존심 상하고 남 밑에서 꾹 참고 견디는 내구성이 강하지 못하다. 그냥 입 닫고 귀 막고 일했으면 한 달 생활비는 모자라지 않게 벌었을 건데. 그렇게 놓친 기회들이 여러 번이다. 


봄이 되자 조경 쪽에서 다시 연락이 왔다. 거의 80을 바라보는 노인이 이 일은 진득하니 하면 일 년 내내 일이 이어진다고 했었다. 나무를 심으며 시간을 보내는 것도 좋겠다 싶었다. 두 달이 지나자 깨달은 것은 노인의 입장에서는 이 일이 그렇게 보일 것 같다는 것이다. 60 중반 하나, 70을 바라보는 사람 하나, 80이 내일 모레인 말라깽이 하나, 이렇게 셋이 한가하게 한 달에 보름 정도 일하면 아쉽지 않은 수입을 가져간다. 자식들 다 키웠고 시간은 많고 어디 취직을 할 것도 아니고 노는 셈 치고 나오면 일당을 받는다. 각자의 사정은 모르지만 그 정도면 노년에 나쁘지 않다. 그러나 나는 돌봐야 할 새끼와 아내가 있다. 한 달에 보름을 채우지 못하는 일 양으로는 먹고 살기 어렵다. 매달 적자를 보고 있다. 이미 짊어지고 있는 빚도 있다. 답이 보이지 않는다. 다시 불안해지고 어떻게 이 상황을 벗어날지 궁리했다. 전화를 걸어 자존심을 조아리며 일이 있으면 연락 달라고 부탁을 했다. 입안이 마르고 혀가 어색했다. 


크게 쓸모가 없는 사람이다. 나는. 뚜렷한 기술도 없고 능력도 없다. 그런데도 어찌해서 살아왔다. 순전히 우연의 힘으로 살아온 것 같다. 그런 행운도 점점 바닥을 드러내고 있는 것 같다. 나이가 들고 몸은 둔해지고 감각은 무뎌졌다. 이제 설레는 일도 웃을 일도 없고 농담도 못한다. 불안은 늘어났다. 불안에 짓눌리는 섬뜩함에 혼자 놀라는 때도 있다. 어떻게 하나, 어떻게 하나, 어떻게 해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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