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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동 Jun 04. 2023

쪽방촌

그날 인천에는 왜 갔지?


 기억이 안 나는데 아무튼 인천에 갔다. 혼자였을 것이다. 역 근처를 걷다가 이상한 골목을 발견하고 따라 들어갔다. 대낮에도 어둑한 골목의 맞은편이 불안해 보였지만 호기심이 더 강했다. 골목의 끝을 빠져나오자 거짓말처럼 넓은 동네가 나왔는데 그 구조가 일반적인 동네와는 달랐다. 좁은 동굴을 통과하자 널찍한 분지가 나오고 더러운 세상을 등진 선량한 사람들이 모여 살고 있더라는 옛이야기의 풍경과 비슷했다.


넓은 공터를 중앙에 두고 가난하기 짝이 없는 집들이 다닥다닥 원을 그리며 붙어 있었다. 집과 집 사이의 골목은 넓었고 골목의 귀퉁이에 대파, 배추, 상추 같은 채소들이 자라고 있었다. 가난한 집들의 외곽에는 번듯한 빌라가 있었고 빌라 너머로 아파트들이 보였다. 담장은 없었지만 허름한 집과 번듯한 집들의 경계가 뚜렷이 보였다. 쪽방촌이라고 짐작했다.








그런데 예뻤다. 옆집을 허물고 미처 뜯어내지 못한 욕실이나 부엌의 벽에 붙어 있던 타일이 드러난 벽이 있는 집, 그 집에 딱 붙어 지은 파란색 페인트칠을 한 집, 대문과 현관의 구분이 없는 집, 문짝, 어떻게든 비집고 들어가 한 층을 더 얹었지만 여전히 낮은 집들, 그 사이를 뛰어다니는 아이들, 문 앞에 내놓은 의자에서 시간을 죽이는 노인들, 길가의 삼천리 자전거... 마치 영화의 한 장면 같은 풍경에 빠져 두어 시간을 그곳에 서 있었다. 처음엔 사진을 찍는 것이 미안해 조심스러웠지만 아무도 나를 신경 쓰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는 편해졌었다.


그림은 집에 돌아와서 그렸다. 낮에 본 인천의 집들을 아파트처럼 높이 쌓았다. 어쩐지 가로보다는 세로로 높이 쌓아야 할 것 같았다. 욕망을 생각했던 것 같은데 욕심이 적은 사람들이 수평을 선호한다면 욕망은 세로로 쌓이니까.


2007년에 그린 것으로 기억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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